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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식 인생독서]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회사의 노예 ‘사축’으로 살지 않는 방법

2017.09.19(Tue) 09:24:52

[비즈한국] 신혼 초, 새신랑으로 명절을 맞아 처가에 인사를 갔어요. 일가친척 어른들이 술을 권하시며 고스톱 자리에 끼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난처해했더니, 아내가 나섰어요. “이 사람은 술, 담배, 커피, 고스톱, 포커, 골프, 아무것도 안 해요.” 그랬더니 어느 친척 어르신이, “그럼 자넨 여자를 좋아하겠군?” 하시는 바람에 진땀을 흘렸어요. 

 

사람들이 궁금해합니다.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시트콤을 만들고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 제게는 최고의 취미활동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지난 5년간, 노조 집행부로 일했다는 이유로 MBC에서 연출에 배제되었어요. 드라마를 만들지 못해 오래도록 괴로웠습니다. 그러다 다시 내 삶을 돌아봤어요. 내가 혹시 일의 보람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본에는 ‘사축’이라 하여 회사의 가축처럼 사는 사람이 많답니다. 회사를 다니며 성실하게 일만 해도 행복한 시대는 끝났어요. 기업이 종신고용을 보장해주던 시절에는 회사를 위해 필사적으로 일만 해도 먹고 살 수 있었지요. 이제는 불확실성의 시대입니다. 언제 어떤 회사가 망하고, 어떤 직종의 일이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의해 대체될지 알 수 없어요. 이런 시대에 직장과 개인의 삶 사이에 거리를 두고 사는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보람 따윈 개나 주라지! 출처=‘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


유배지로 발령 나 MBC 주조정실에서 송출 업무를 하며, 깨달은 게 있어요. 우리 시대에 일의 보람은 너무 과대평가되어 있다고요. 회사 업무 말고도 육아나 취미, 봉사활동 등 우리 인생에 중요한 것이 참 많아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보람 있고요. 직업 이외의 활동을 통해서도 자아실현을 할 수 있습니다. 직장을 위해 사생활까지 희생하면서 살 필요는 없습니다.​
 

왜 우리는 회사의 노예가 되어 사는 걸까요? 

 

첫째,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노동 중시 가치관을 기릅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실업률이 높아지는 시대, 이런 노동관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어요. 노동 이외에도 보람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을 늘려야 합니다. 

 

둘째,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오래도록 구직활동을 하던 이는 자신을 뽑아준 회사에 과도한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영혼 없는 ‘사축’이 될 수 있어요. 언론사 기자를 꿈꾸던 이가 사주에게 충성하고 권력에 굴종하는 ‘기레기’가 되는 것도 사측에 과도한 고마움을 갖는 탓이지요. 

 

마지막으로, 평생 고용이 보장되던 시절에 입사해 이미 회사형 인간이 되어버린 선배들이 세뇌 공작을 펼칩니다. “회사 바깥은 위험해, 사축으로 사는 게 좋아.” 이런 동조 압박은 이제 먹히지 않아요. 회사를 그만두는 신입 사원이 늘어난다는 것은 시대가 바뀌었음을 보여줍니다. 사축으로 살아야 할 당위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거지요.​​

 

불법적인 야근 종용에 맞서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라고 합니다. 노동자의 권리는 회사가 알아서 챙겨주지 않더군요. 직접 찾아야하고, 싸워야 합니다. 회사에 착취당하지 않으려면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켜야 합니다. 약한 개인을 지켜주는 최고의 수단은 역시 노동조합과 단결권이거든요.

 

‘사축’이 되지 않으려면 다니는 회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합니다. 회사에서 주는 급여에 초연한 삶을 살기 위해 빚은 절대로 지지 말아야 합니다. 사축이 되는 최단기 코스가 바로 주택마련대출이거든요. 나이 50에 저는 아직 집이 없습니다. 집이 없다는 건, 빚도 없다는 뜻이지요. 인생을 즐겁게 사는 비결은 자유로운 삶, 빚 없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빚이 없으므로, 회사에 목을 맬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 회사가 망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난다면, 저는 도서관에서 매일 매일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으면 되니까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회사는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잘리지도 않기를 희망합니다. MBC가 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2017 MBC 총파업’에 동참합니다. 지면을 빌어 다시 한 번 외쳐봅니다. ‘김장겸은 물러나라!’ 사장님, 아, 징계남발 따윈 됐으니 이제 제작 자율성이나 돌려주시죠?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민식 MBC 피디​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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