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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에서 '염산 테러'라니…아동도서 '혐오 표현' 논란

출판사 "전량 폐기 예정"에도 아직 판매 중…전문가 "아동 도서 검수 과정" 필요

2019.12.23(Mon) 16:49:49

[비즈한국] 유튜브 크리에이터 ‘태경TV’ 소속사 샌드박스와 대원키즈가 함께 출간한 아동용 만화책 ‘​태경TV, 학교 탈출’​ 일부 장면에 혐오 표현이 담겨 논란이 되고 있다.

 

혐오 표현 논란이 된 책은 여전히 시중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사진=김보현 기자


이 만화책은 143만 명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 ‘​태경TV’​​의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오며, 올해 12월 5일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책 뒷면에 사용연령 만 3세 이상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책을 출판한 대원아이씨 홈페이지에는 사용연령이 ‘​7세 이상’​으로 나와 있다.

 

책에서 문제가 되는 건 주인공이 구전으로 떠도는 이야기라며 소개한 사례다. 이별을 통보한 여성에게 남성이 염산 테러를 하고, 그 여성은 다른 여성들에게 커터칼을 휘두른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이는 이 장면은 아동용 도서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으며 12월 22일 트위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퍼졌다. 

 

#여전히 판매 중…​출판사 “전량 회수할 것”

 

23일 오전 11시, Y 문고 종로점에는 여전히 문제의 만화책이 판매되고 있었다. 온라인으로도 구매가 가능했다. 문제가 된 도서를 포함한 ‘샌드박스’ 캐릭터가 등장한 도서들을 모아놓은 가판대가 따로 설치돼 있었다. 

 

구매한 뒤 포장을 뜯고 내용을 점검했다. 책은 여성을 ‘연예인 뺨칠 정도로 예쁜 여자, 하지만 성격은 영 별로였어. 무척 도도하고 건방졌지’라고 설명하면서 염산 테러를 당한 여성을 자극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이는 테러를 당한 것이 마치 피해자의 잘못 때문인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이다.​ 

 

해당 서적에는 이별을 통보한 남자로부터 염산 테러를 당하는 모습과 피해자가 또 다른 여성을 커터칼로 테러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표현되었다. 사진=김보현 기자


아이와 함께 서점을 찾은 학부모 A 씨(42)는 “일부 아동용 만화책이 교훈적 내용 없이 자극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유튜브를 많이 보기 때문에 책도 관련 캐릭터가 나온 것 위주로 찾는다. 어른들이 신중하게 책을 만들고, 학부모도 잘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대원씨아이 측은 “책을 전량 회수 후 폐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원씨아이 관계자는 “태경TV 유튜브에 문제의 내용이 나오진 않는다. 작가가 각색하고 검수하는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거라 당황스럽고 죄송하다. 판매를 중단할 예정이며 구매한 소비자들이 환불 요청을 할 경우 구매한 곳에서 조치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라고 밝혔다.

 

#출판사 감수 과정 따로 없어…여성단체 “가이드라인 필요” 

 

아동서를 만드는 출판사가 철저한 감수를 거쳐 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현재 아동서가 출간되는 과정에 혐오표현이나 성인지 감수성을 점검하는 절차는 따로 없다. 출판사별로 부적절한 표현이나 잔인한 이미지를 거르는 수준에 그치다 보니 자극적인 혐오표현이나 장면이 담긴 도서가 출판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대원아이씨 관계자는 “학습지나 전문지는 전문가를 통해 감수하지만 이번 사례 같은 코믹만화나 일반도서는 딱히 검수하진 않는다. 자체적으로 부적절한 표현이나 잔혹한 내용을 거르는 정도”라고 말했다. 

 

아동도서의 혐오 표현이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6월 유명 어린이 학습만화 ‘Why? 사춘기와 성’​ 2018년 3판 증쇄 개정판은 성 소수자를 ‘예외적, 비정상적, 보편적이지 않은, 다행이지 않은’ 존재로 그려 논란이 됐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아동용 도서의 검수 작업이 제대로 되는지 의문이 든다. 아이들이 사회적 인식이 구성되는 과정에 출판물이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출판물이 성평등 인식 확산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출판의 자유와 부딪히는 지점이 있겠지만 편집자나 출판업계 종사자들이 자체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만 있어도 문제가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23일 오전 Y 문고의 샌드박스 가판대. 오른쪽 아래에 문제의 서적이 진열돼 판매 중이다. 사진=김보현 기자


한편 전국 국·공립 도서관에서도 어린이 도서의 선정성과 혐오 표현은 걱정거리다. 선정 제외 기준이 있어 ‘미풍양속을 저해하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자료나 판타지, 공포소설, 만화책 등 단순 유흥적 자료’를 거르지만, 교양만화는 아이들이 희망도서로 신청하면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는 B 씨는 “문제가 된 책은 도서관에 없다. 하지만 얼마 전 아동용 만화책 ‘그리스로마신화’를 보고 선정적이라고 판단해 타 출판사 책으로 대체했다. 교양만화로 나오지만 아이들 기준에 자극적일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간 경우가 보인다. 사서가 일일이 책의 실물을 보고 사지 못하기 때문에 유해도서가 백퍼센트 걸러지진 않는다. 출판사에서 아동서를 제작할 때 뚜렷한 기준을 갖고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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