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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빈이 우리 마음에 불시착했던 그 드라마 '아일랜드'

서로에게 닿고 싶은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알랜폐인' 양산하며 DVD로도 출시

2020.02.19(Wed) 14:09:29

[비즈한국] 또 ‘현빈앓이’인가 보다. 2월 16일 종영한 ‘사랑의 불시착’이 tvN 드라마 역대 1위인 21.7%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막을 내렸고, 현빈은 ‘내 이름은 김삼순’ ‘시크릿 가든’에 이어 또 한 번 여심을 사로잡았다. 3연타석 홈런인 셈이다. 대체 현빈은 언제부터 그렇게 멋졌나? 언제 여성들의 마음에 불시착한 건가? 시트콤 ‘논스톱4’나 영화 ‘돌려차기’를 말하는 눈 빠른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작품은 ‘아일랜드’부터다.

 

2004년 방영한 ‘아일랜드’는 ‘네 멋대로 해라’로 보는 이의 가슴을 짜르르하게 만들었던 인정옥 작가의 작품. ‘네 멋대로 해라’에 이어 이나영이 다시 한 번 출연해 주목받았지만 내 눈길을 잡아챈 사람은 김민정과 현빈이었다. 특히 길 잃은 강아지 눈빛을 하곤 불쌍한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하고 도와주는 경호원 강국으로 등장한 현빈은 신선했다. 제법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는 신인이 미남이면서 로맨틱하고도 애틋한 분위기를 지녔거든.

 

김진만 PD가 연출하고 인정옥 작가가 대본을 맡은 ‘아일랜드’.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알랜폐인’이란 이름의 마니아 팬덤을 형성하며 방영 도중 DVD가 출시됐다. 사진=MBC 홈페이지

 

아일랜드에 입양되어 조지아 쇼라는 이름으로 살던 이중아(이나영)가 IRA(아일랜드공화국군)에 휘말려 비극적으로 가족을 잃고 1년간 정신병원에서 괴로워하다 한국에 온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낯선 고향에 되돌아와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었던 중아. 그녀와 비행기에서부터 마주친 경호원 강국(현빈)은 중아가 무척 신경 쓰이는데, 일찍 부모를 여의어서인지 국은 아픈 사람, 힘 있고 당당한 사람보다 힘없고 불쌍한 사람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 한편 아역배우로 잘나가다 부모의 사업 실패로 소녀가장이 된 한시연(김민정)은 에로영화 배우로 활동 중이다. 남 앞에서 눈물 대신 욕과 깡으로 버티는 시연 앞에, 뭐 하나 가진 것 없는 동네 백수지만 그녀 안의 슬픔을 누구보다 잘 보아주는 이재복(김민준)이 나타난다.

 

‘아일랜드’는 이중아와 강국, 한시연과 이재복이라는 네 남녀의 기묘한 사각관계를 들여다본다. 중아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머무는 호텔에서 국과 우연히 마주쳤던 것처럼, 중아와 재복도 사고가 날 뻔한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우연히 만난다. 방송국 경호를 서던 국과 방송국에서 오디션을 보던 시연이 만난 것도 우연이다. 하지만 그 몇 번의 우연에서 그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정확히는 서로의 상처와 슬픔을 알아본다. 입양 가족을 비극으로 잃은 중아와 어릴 적 여동생을 입양 보내고 어머니마저 재혼한 재복이 서로를 발견한 건 본능적인 끌림이었을 것이다. 불쌍한 사람을 좋아하는 국 또한 욕과 깡으로 무장한 시연의 내면을 보았을 것이다.

 

‘네 멋대로 해라’ 이전까지는 CF스타 이미지가 강했던 독특한 분위기의 이나영은 ‘아일랜드’에서 이나영만의 캐릭터를 완성하고, 신인이었던 현빈은 이 작품으로 단단히 시청자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고 이듬해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인생작을 만난다. 2003년 ‘다모’로 얼굴을 알린 김민준은 ‘아일랜드’​에서 카리스마를 쫙 빼고 능글능글하고도 진지한 양아치를 김민준식으로 소화했고, 아역배우 이미지가 강했던 김민정은 이 작품으로 한층 단단한 배우로 발돋움한다. 사진=MBC 홈페이지

 

어찌되었건 중아와 국은 결혼한 부부 사이이고, 시연과 재복은 남에게 밝히진 못하지만 동거하는 사이이니 각자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는 건 바람일 터다. 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바람이라고 명명하기엔 망설여진다. 서로의 깊은 상처를 알아봤기에 중아-국, 시연-재복 커플이 탄생한 거지만, 그들은 서로를 보듬고 사랑하는 방식이 맞지 않았으니까. 나한테 사랑은 함께 불행해도 좋을 사람이라고 말하는 중아와 영원히 함께 행복할 사람을 사랑이라 여기는 국이 어떻게 맞겠는가.

 

재미난 건 네 사람의 기묘한 연대 방식이다. 중아의 머릿속에 재복이 집을 짓고 살지만, 중아의 남편 국이 재복을 미워하거나 재복이 국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한다. 중아와 시연 역시 마찬가지. ‘쿨병’ 걸려서가 아니라, 정말 인간적으로 연민을 느끼고 좋아하니까.

 

아역배우로 유명했던 김민정이 아역배우 출신 에로영화 배우 한시연을 연기한 건 여러모로 영리한 선택으로 보였다. 시연은 툭하면 ‘지랄’ ‘​구려’​ 같은 욕을 내뱉지만 속으로 눈물이 많은 캐릭터.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숏컷으로 등장한 김민정의 모습을 무척 사랑한다. 김민정은 ‘​아일랜드’​로 좋은 평을 얻은 뒤 이듬해 ‘​​패션 70s’​에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사진=MBC 홈페이지

 

‘아일랜드’를 좋아했던 건 그 작품이 사람들의 외로움을 바라봐줘서였다. 이중아, 강국, 한시연, 이재복뿐 아니라 등장인물 대다수가 그랬다. 오랫동안 입양 보낸 딸을 찾느라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내는 재복 엄마(이휘향)도, 재복 엄마를 사랑하기에 재복이도 마음속으로 사랑하지만 엇나가는 재복을 보며 가슴 아픈 재복의 새아버지(김인태)도, 재벌그룹 서자 출신으로 자라 가족에게 도외시 당하는 강국의 고용주인 박 사장(송승환)도, 국의 아빠를 좋아했지만 아무에게도 그 사랑을 밝힐 수 없어 고아가 된 국을 키운 목사님(김창완)도 모두 외롭다.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 섬처럼 존재하는 그 외로운 사람들이 가슴을 저몄다.

 

그 저밋한 외로움을 섣불리 달래지 않고 천천히 연민과 사랑으로 감싸 안는 방식이 좋았다. 그 외로움과 함께하는 인정옥표 명대사들, 그리고 OST가 좋았다. ‘아일랜드’는 안 봤어도 자주 흘러나왔던 그룹 ‘두번째 달’의 ‘서쪽 하늘에’나 장필순과 김장훈이 각각 부른 ‘그대로 있어주면 돼’는 들어본 사람이 있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지금 들어도 여전히 애달프다.

 

김민준과 현빈. 김민준은 ‘다모’에서 어릴 적 헤어진 여동생과 비극적인 사랑으로 얽힌 장성백을 연기했는데, 이듬해 ‘​아일랜드’​에서도 중아와 재복이 친남매인지 아닌지 알쏭달쏭한 여지를 남겨 눈길을 끌었다(인정옥 작가는 시청자의 판단에 맡긴다는 인터뷰를 남긴 바 있다). 현빈과 김민준은 이후 2009년 드라마 ‘친구’에서 재회해 연기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다시금 현빈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나도 시트콤 ‘논스톱4’의 현빈이 기억나고 심지어 데뷔작이던 드라마 ‘보디가드’에서 스토커 역으로 출연했던 현빈도 생각나지만, ‘아일랜드’의 강국이야말로 지금의 현빈을 있게 한 초석이 아닌가 싶다. 자신도 외롭고 슬프지만, 자신이 마음에 둔 사람을 어떻게든 지키려 하는 소년 같은 애틋함이 현빈에게 있었고, 그것을 캐릭터에 잘 부여했거든. ‘사랑의 불시착’으로 다시금 ‘현빈앓이’ 중이라면, 아직 ‘아일랜드’를 보지 않았다면 감상을 추천한다. 현빈 때문에 봤다가 인생 드라마로 각인될지 또 누가 알랴.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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