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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도정업 재추진 롯데, 갑질에 업체 도산

2016.02.18(Thu) 14:57:24

   
▲ 지난해 12월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서 시위중인 피해 농민들

롯데그룹이 최근 ‘라이스센터’라는 이름으로 도정업 재진출을 추진하며 관련업계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그런데 <비즈한국> 취재결과 롯데상사의 ‘갑질’로 인해 도정업 협력업체 ‘가나안 당진 알피씨(RPC·미곡종합처리장)’가 140억 원대에 달하는 손실을 보며 도산한 사실이 드러났다. 가나안은 롯데상사로부터 선진화 된 일본의 도정기술과 양곡유통을 벤치마킹하자는 제안을 받고 협업에 나섰지만 5년 만에 참담한 결과만 떠안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단독 추적했다.

가나안은 지난 2009년 2월 최종 도산했다. <비즈한국>이 가나안의 재무제표, 통관 기록, 납품 대장, 법원 경매 기록 등을 살펴 본 결과 피해액은 144억 원에 달했다. 구체적으로 도정기계 대금 41억 원, 기계 통관비와 공구 운반비 8억 3400만 원, 공장부지 매입과 건축비 40억 원, 쌀 미수금 4억 6700만 원, 은행과 이자비용 2억 8600만 원 등이 확인된다.
그밖에 공장 경매로 인해 27억 원, 주주 3명이 관련 부채 청산을 위한 재산 경매로 20억 원이 넘는 손실이 발생했다. 가나안 주주 5명 중 4명은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아직도 그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벼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20여 농부 중 5명이 고령과 화병으로 타계한 상태다.

   
▲ 가나안으로부터 월 2500톤 구매하겟다는 롯데상사 2004년 11월 공문

◆ 구매물량·역할분담 지켜지지 않아

가나안의 가장 큰 도산 원인은 롯데가 약속한 구매 물량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나안은 2002년부터 현대백화점, 뉴코아백화점 등에 ‘쌀 즉석방아 코너’를 운영하면서 명품 쌀을 판매하던 업체다. 이를 주목한 롯데상사는 가나안에게 한국 내 최첨단 라이스(양곡도정공장)센터를 건립해 명품 쌀을 유통시키자고 제안해왔다. 양사는 2004년 4월 협업을 결정했다. 그 해 11월 롯데상사는 가나안에 보낸 공문을 통해 가나안으로부터 월 2500톤(연간 3만 톤) 규모의 쌀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가나안은 롯데상사의 독점계약 요구로 기존 거래처와 계약도 종료했다.

두 달 앞선 9월 롯데상사 공문에는 가나안의 연 매출 규모를 연간 100억~150억 원에 달한다고 했다. 따라서 롯데상사는 독점 공급처인 가나안에게 약속한 물량을 구매했어야 했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롯데상사 측은 <비즈한국>에 2004~2006년 3년간 가나안으로부터 공급받은 쌀과 관련한 결제 대금이 4억 3900만여 원이라고 밝혔다. 연 1억 원대 납품만 받은 셈이다.

롯데상사가 역할 분담을 지키지 않은 이유도 가나안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양사는 협의에서 롯데상사가 공장부지 확보와 건립, 기계 구매 등 시설투자를 맡고 가나안은 보유한 도정기술을 적극 활용하기로 정했다. 하지만 롯데상사는 이 협의내용을 뒤집고 가나안에 “재벌그룹의 쌀 산업 진출에 대해 농민들의 반발이 심해 우선 가나안 부담으로 공장부지를 매입하고 기계수입과 공장을 건립하면 추후에 관련 비용을 보전해주겠다”고 했다. 롯데 측은 추후 안전보장 내용을 담은 공문까지 써줬다. 가나안은 이를 믿고 자체 비용으로 기계 설비 수입, 저장시설과 건조시설 등에 선 투자했고 사업난항을 우려한 나머지 공장부지와 건립도 떠안았다. 

설비 투자와 관련 당시 양사는 협의에서 원적외선 건조기와 최신 도정기기를 일본 구보다사와 가네코사로부터 들여오기로 했다. 롯데상사는 기계 수입을 위해 2004년 9월 가네코에 가나안과 ‘대량판매 및 롯데계열 유통라인 독점판매’에 의해 기계 값 결제를 보증하는 내용의 공문까지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 준공 직후 가나안 미곡종합처리장

◆ 밴더사 끼워 넣기 강요

또 다른 악재도 터졌다. 롯데상사 측 담당이었던 박 아무개 전 팀장이 2004년 실시된 내부감사에서 협력업체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행위가 적발돼 퇴사당한 것. 한동안 프로젝트가 표류상태에 빠지자 가나안은 롯데 측에 계약내용 대로 정상적인 업무진행을 요청했다. 그러자 롯데그룹 감사 파트에서 나서서 가나안에게 공장이 준공되면 롯데상사와 최초 협의대로 이행해주겠다고 밝혀 왔다. 가나안은 결국 2005년 9월 충청남도 당진에 ‘가나안 미곡 종합 처리장’을 준공했다.

김 아무개 전 가나안 사장은 “일본에서 수십 년 생활해 신용 우선의 일본 기업문화에 익숙했고 일본 내 롯데그룹 이미지도 좋아 초기엔 의심하지 않았다”며 “창업투자자금, 신용보증기금 보증과 함께 주주들의 보증과 대출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겨우 공장을 지었다. 공장은 연간 1000억 원어치 납품을 처리할 수 있는 규모였다. 하지만 롯데 측의 구매 물량과 투자 보전에 대한 약속은 전혀 이행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롯데상사는 또한 통상적 상행위를 벗어난 거래 방식과 불투명한 금전 처리도 강요했다. 롯데상사는 2008년 S 농산이라는 벤더사와 납품계약을 하게 됐다며 가나안에게 이 벤더사를 통해서만 대량 독점거래가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S 사 등장 전까지 가나안은 롯데상사에 직접 납품했다. 롯데상사 담당자 이 아무개 전 계장이 가나안에게 S 사에서 주문 발주서를 보낼 것이라고 알려왔고 가나안이 발주서를 받으면 물품을 배송하는 방식으로 업무가 진행됐다.

서울에 소재한 S 사는 창고 시설도 빈약해 굳이 벤더사가 낄 이유도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가나안에게 납품결제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가나안과 S 사 간 계약서를 보면 주 450톤(연 2만 3400톤)을 거래하기로 돼 있다. 또한 롯데상사에 납품하는 포장하지 않은 쌀값은 ㎏당 1870원으로 게재돼 있다. 가나안에 따르면 당시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납품대금은 ㎏당 2000원이었다고 한다. 즉 마이너스 납품이 이뤄졌고 가나안 측은 이로 인한 손실만 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가나안이 롯데상사에 결제를 문의하고 내용증명과 공문을 보내도 차일피일 미뤄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결제대금을 롯데상사 담당자와 S 사가 조직적으로 횡령한 사실도 경찰 수사과정에서 드러나 파문이 인다. 2010~2011년 전주 덕진경찰서 수사기록에는 롯데상사 담당자 이 계장과 S 사 임원 문 아무개 씨가 가나안 등 협력업체와 거래 후 지급해야 할 결제 금액에서 각각 1억 원, 2억 원을 썼다고 진술했다. 이 사건은 현재도 수사 중이다. S 사 실질 대표가 수배중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인지한 롯데상사는 2013년 이 계장을 퇴사시켰다. 가나안은 형사사건이 마무리되는 대로 롯데상사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다. 가나안과 S 사의 거래는 2008년 12월 종료됐다.

   
▲ 마이너스 납품 내용 담은 가나안과 숙이네 계약서

◆ 롯데 담당자와 밴더사 조직적 횡령

당시 가나안에겐 80여 농가로부터 벼 수매대금으로 미지급한 금액이 8억 원대에 달했다. 김 전 가나안 사장은 대금 지급을 위해 자택과 귀중품까지 처분했지만 아직도 20여 농가에 2억 원대 미지급금이 남아 있다. 그런데 롯데상사가 2013년까지 가나안에 벼를 납품한 농가에게 극히 일부를 결제했다는 점에서 논란을 배가시킨다. 롯데상사는 직접 농가에 지급하지 않고 협력사를 통해 입금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가나안은 그 증거로 납품 농민의 통장에 입급된 거래 명세서를 제시했다. 이 농민은 “당시 듣도 보도 못한 입금 내역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롯데상사 측은 “가나안과 거래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이뤄졌다. 그 이후 거래관계가 전혀 없다”며 “2008년 당시 당사는 S 사와 계약 상태였고 S 사에 지급할 대금 4억 원대 금액을 모두 지급했고 거래를 종료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해명과 달리 가나안 측이 <비즈한국>에 제시한 2008년 계량증명서와 물품 운송장을 보면 S 사를 통해 납품한 물품 대부분이 롯데로 흘러간 것으로 드러난다. 그 외에 가나안 측의 문제제기에 대해 롯데상사 측은 답변하지 않았다.

롯데그룹 감사 부서 관계자들은 가나안 부도 후 2013년 김 전 사장이 거주하던 전남 화순군을 방문했다. 김 전 사장은 당시 허 아무개 롯데 부장이 “가나안이 계속 항의하고 농민들까지 얽혀 있다. 관련 자료를 주면 확인해보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김 전 사장은 방대한 자료를 복사해 줬으나 해결기미는 전혀 없다. 심 아무개 가나안 전 주주는 “롯데상사는 사업 담당자인 박 팀장과 이 계장을 쫓아냈다”며 “당시 상황을 두 사람만큼 아는 사람이 없음에도 롯데는 꼬리 자르기를 통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 2008년 가나안 물품이 롯데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입증하는 계량증명서

◆ 도정업 재추진 롯데, 제2의 가나안?

롯데그룹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되면서 중단하는 것처럼 보였던 ‘라이스센터’ 사업을 롯데상사를 통해 재추진하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도정업 진출과 관련한 의원의 질의에 확인해 보겠다고 했지 중단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롯데는 이 사업이 농가 소득증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라이스센터 건립 부지를 확보한 상태다. RPC들과 지자체들과 함께 사업을 논의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많이 팔리는 경기도 명품 쌀의 경우 영남과 호남지역 내 명품 쌀과 품질 차이는 별로 없지만 가격 차이가 크다. 이러한 쌀들을 RPC들로부터 수매해 유통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나안과 피해 농가들은 지난해 12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에서 롯데그룹을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했고 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가나안 관계자들은 “롯데상사의 도정업 재추진 과정이 가나안 때와 매우 유사해 또 다른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나 우려스럽다”며 “기업문화가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명한 일본 현지에서 피해 농민들과 함께 구보다, 가네코, 일본롯데에서 우리 문제를 집중 거론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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