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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가정주부에서 대기업 CEO로: 컬럼비아 거트 보일의 성공 스토리2

2016.06.28(Tue) 10:57:23

1980년대 들어 광고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사실 컬럼비아는 70년이 넘는 역사가 깊은 브랜드다. 1938년 미 오레건주 포틀랜드에서 탄생한 컬럼비아의 전신은 작은 모자 회사였다. 보일 회장의 부모가 운영하던 ‘컬럼비아 해트 컴퍼니’가 그 시작이었던 것. ‘컬럼비아’라는 사명은 포틀랜드를 가로질러 흐르는 컬럼비아강에서 따온 것이었다.

   
▲ 보일 회장의 자서전.

외동딸이던 보일 여사는 당시만 해도 부모의 사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대학 시절 아일랜드 출신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그 후에는 평범한 가정주부이자 세 아이의 엄마로 지냈다. 아버지 옆에서 사업을 도운 것도 남편이었으며, 1964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회사 경영권을 물려받은 것도 남편이었다.

포틀랜드는 산, 숲, 바다 등 다양한 아웃도어 스포츠를 즐기기에 제격인 곳이고, 때문에 낚시, 등산, 스키, 사냥 등 아웃도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또한 비가 많이 오는 변덕스러운 날씨는 아웃도어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능성 의류를 절실히 필요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던 남편은 모자 외에도 아웃도어 의류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1960년 ‘컬럼비아 스포츠웨어 컴퍼니’로 사명을 바꾼 것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하지만 남편은 1970년 47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인은 급성 심장마비. 평범한 가정주부로만 살아온 보일 여사는 하루아침에 회사일을 떠맡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게다가 회사는 파산 위기에 처해 있어, 밀린 대출금을 갚기는커녕 집도 넘어갈 처지였다.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당시만 해도 여자 경영인은 전무하다시피했기 때문에 거래업체는 못 믿겠다며 더 이상 거래하길 꺼렸고, 은행도 신용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보일 여사는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다.

그러던 차 한 사업가가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가 제시한 금액은 1400달러(약 165만 원). 터무니없는 액수에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보일 여사는 그 자리에서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죽기 살기로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죽치고 앉아서 하루종일 운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보일 여사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보일 여사의 선천적으로 호탕하고 낙천적인 성격은 회사를 일으켜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곧 보일 여사는 아웃도어 의류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사업을 전환하기로 했다. 보일 여사가 가장 주력한 것은 경험을 통한 제품 개발이었다.

직접 낚시꾼들에게 조언을 구해 개발한 낚시 조끼는 오늘날 흔하게 볼 수 있는 주머니가 많이 달린 낚시 조끼의 표본이 됐다. 그리고 1975년에는 업계 최초로 ‘고어텍스’로 만든 아웃도어용 재킷을 개발했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 고어텍스는 생소한 소재였고, 이로써 컬럼비아는 고어텍스를 이용해 재킷을 생산한 첫 번째 회사로 기록되었다.

   
▲ 보일 여사는 ‘터프한’ 이미지로 떴지만 실은 훨씬 다정하다고. 출처=컬럼비아

컬럼비아가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부가부 재킷’을 선보이면서부터. 1982년 론칭한 ‘부가부 재킷’은 이너재킷 위에 재킷을 덧입는 형태로,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부가부 재킷의 성공으로 컬럼비아의 매출액은 1880만 달러(약 220억 원)에서 10년 후인 1997년에는 3억 5350달러(약 4200억 원)로 급증했다. 최근에는 방수 및 투습 기능이 뛰어난 옴니테크 소재를 이용한 옴니테크놀로지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1980년대 들어 이른바 ‘보일 엄마’ 광고 시리즈가 대박을 치면서 급성장한 컬럼비아는 1998년 기업공개를 통해 나스닥에 상장됐다. 2014년을 기준으로 총수익은 21억 달러(약 2조 5000억 원)를 기록하고 있다.

이제 60대 후반이 된 아들은 더 이상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 직접 나서서 제품을 테스트하지 않는다. 그 임무는 직원들이 대신하고 있다.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활기차고 정력적이며, 또 열정적인 보일 회장은 지금도 매일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으며, 모든 회계 내역을 점검하고, 직접 서명을 한다.

광고 속에서는 냉혹하고 무섭게 등장하지만 실제 보일 회장을 만난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보일 회장 역시 “나는 광고 속에 등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고약하진 않다. 나는 그보다는 훨씬 다정하고, 키도 크고, 금발이다. 그리고 더 날씬하다”라고 말한다. 보일 회장 특유의 익살과 재치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익살스럽고 재치 넘치는 광고가 탄생하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김민주 외신프리랜서

비즈한국 bizhk@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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