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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과 러닝화, 전통과 혁신을 모두 잡다

일본 버선업체 기네야, 버선 활용한 신발 개발…버선은 전통방식으로

2016.08.23(Tue) 08:54:17

일본 사이타마현 교다시에 위치한 다비(일본식 버선) 업체는 창업한 지 10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러나 해마다 급격하게 버선의 수요가 감소해, 아무리 유명하고 전통 있는 업체라도 자금난을 피할 순 없었다. 종업원 27명의 영세 기업. 과연 이 위기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한자와 나오키>로 유명한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이케이도 준의 신작 <육왕>의 주요 줄거리다. 하루하루 자금조달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다비 업체 사장이 회사 존립을 위해 신규 사업을 궁리한다. 무기가 될 만한 것은 버선 제조 노하우뿐. 결국 “시대의 변화에 맞춰 버선을 신은 듯한 가벼운 느낌의 러닝화 개발에 성공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흥미로운 것은 실제 모델이 된 회사가 있다는 사실이다. 1932년 교다시에 창업한 이래 줄곧 버선을 만들어온 전통기업 ‘기네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기네야에서는 전통버선은 물론 스웨이드, 발수가공, 데님 버선 등 시대에 맞춰 새로운 버선을 개발하고 있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사진=기네야 홈페이지

원래 사이타마현 교다시는 버선을 만드는 고장으로 유명했다. 일본인에게 기모노가 일상복이었던 시절, 무려 200여 개의 버선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연간 8400만 켤레, 일본 전국에서 유통되는 버선의 약 80%가 교다시에서 생산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살아남은 업체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적다. 기네야는 그 가운데서 가장 성공한 전통버선 업체로 평가받는다.

수많은 버선업체가 폐업으로 내몰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네야가 잘나가는 비결은 무엇일까. 일본 위성TV인 <BS재팬>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한 상품 개발력”을 꼽았다. 기네야는 끊임없이 생존을 모색해왔다. 신고 벗기 편한 디자인은 물론 발수성, 미끄럼방지 기능 등이 추가된 다양한 버선을 선보였다. 또 소재를 목면에만 국한시키지도 않았다. 겨울에는 보온성을 지닌 스웨이드 버선을, 봄에는 산뜻한 데님을 가미한 버선을 내놓았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일본식 버선이 아이들 성장기에 뇌와 감성을 자극하는 데 좋다는 점을 적극 홍보, 어린이집 개척에도 성공했다. 그즈음 100여 명 규모의 주력 공장을 베트남에 건설한 덕분에 기네야는 일본 버선업체 중 선두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기네야의 상품 기획력은 2013년 출시한 ‘버선 러닝화’에서 돋보인다. 정식 상품명은 ‘무적’이란 뜻의 일본어인 ‘무테키(MUTEKI)’. 마치 버선처럼 발에 밀착돼 거의 맨발에 가까운 감각으로 달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버선처럼 발에 밀착돼 거의 맨발에 가까운 느낌은 주는 신발 ‘무테키’. 사진=기네야 홈페이지
   
전통 기법으로 만든 버선에 천연고무를 덧댄 무테키. 달리기동호회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기네야 홈페이지

한 땀 한 땀 전통적인 기법으로 만든 버선에 5mm 두께의 천연고무를 수작업으로 덧댔다. 따라서 “버선 특유의 부드러운 착용감을 지니면서도 내구성이 뛰어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기네야의 3대 사장인 나카자와 다카유키 씨는 “맨발로 달리는 듯 편안하며, 발 근육 본연의 힘을 강화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무테키는 일본 국내에서 ‘맨발로 달리기 동호회’ 등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무테키를 모티브로 한 이케이도 준의 소설 <육왕>이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뒤로는 판매량이 한층 늘었다. 나카자와 사장은 “지난해 말 피렌체에서 열린 일본 공예품전시회에서도 무테키가 극찬을 받았다”면서 “평판이 좋았던 프랑스 등 향후 해외 판매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형태의 버선을 속속 선보이는 기네야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통버선을 제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통버선에는 고집스러울 만큼 옛 방식을 고수한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기네야는 아직도 100년 전 재봉틀을 사용해 버선을 만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손이 덜 가는 최신식 기계보다는 사람의 손을 거치는 편이 정교해서다.

서른세 명의 직공이 일하는 기네야 본사에서는 전통버선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쪽은 고급화 전략이다. 숙련기술이 가장 요구되는 공정은 버선의 발끝 부분. 장인들은 손수 실의 당김을 조절하면서 한 땀 한 땀 정교하게 박음질을 한다. 왼손으로 천을 누르고, 도중에 몇 번이나 오른손으로 재봉틀의 톱니바퀴를 바꾸는 복잡한 작업을 반복한다. 발끝의 곡선이 입체감 있게 재봉돼야 발가락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이에 <도쿄신문>은 “예나 지금이나 착용감 좋은 버선을 제작하자는 것이 기네야의 변하지 않는 사훈”이라고 전했다.

“100년 넘은 재봉틀이 아직도 제조현장에서 ‘현역’으로 풀가동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기네야에서 사용되고 있는 재봉틀은 1910년대 말부터 수입된 독일제로 ‘팔방 미싱’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방팔방으로 꿰맬 수 있다”는 의미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본래는 가죽구두 장인용으로 개발된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버선제조용으로 개량했다.

   
기네야는 여전히 100년 넘은 재봉틀을 사용해 전통방식으로 버선을 만들고 있다. 사진=기네야 홈페이지

오랜 세월동안 재봉틀을 사용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인력 덕분이다. 기네야의 경우 야마시타 히토시(38)라는 장인이 재봉틀 수리·관리를 전담한다. 버선 제조 경력 40년차인 여성 직원은 “기모노문화가 있는 한 버선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이 전통적인 생산기술을 지켜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기네야는 버선 제조뿐만 아니라 버선의 매력을 알리는 데도 열심이다. 사용하지 않는 창고를 리모델링해 버선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체험관을 운영하는가 하면, 일상생활에 버선을 접목시키는 다양한 시도도 하고 있다. 나카자와 사장은 “진정한 승부는 지금부터다”고 각오를 다졌다.

강윤화 외신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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