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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김치’만큼 위험한 전자레인지

2016.09.28(Wed) 10:09: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구약성서 창세기 1장 3절과 4절의 일부다. 기독교 신앙에 따르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이 세상을 빛으로 채운 것이다. 이 빛을 조금 더 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전자기파(電磁氣波)라고 한다. 우주는 전자기파로 시작되었다. 그 순간을 과학에서는 빅뱅이라고 한다. 우주란 전자기파의 공간이다. 전자기파가 없는 곳은 우주에 없다. 만약 그런 곳이 있다면 거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가 아니다.

 

이 전자기파를 우리는 보통 전자파라는 잘못된 용어로 부른다. 전자파는 마치 무서운 전자(電子)를 마구 발사하는 어떤 파동처럼 들린다. 그런데 과학에는 전자파라는 용어가 없다. 전자기파가 옳은 말이다. 이해 못 할 일이 아니다. 전자기파에 들어 있는 자기(磁氣)가 원래 좀 이해하기 어렵다. 나도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 자기 때문에 고생깨나 했다. 그래서인지 다들 전자기파라는 말을 꺼리고 전자파라고 하지만 전자기파가 맞는 말이다. 정 어려우면 차라리 쉽게 빛 또는 전파라고 부르는 게 옳다.

 

전자기파 또는 전파는 말 그대로 파동이다. 파동이란 파도처럼 출렁이면서 이동하는 움직임을 말한다. 그래도 그 범위가 아주 넓다. 전자기파는 진동수가 낮으면 파장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진동수란 1초에 떠는 회수다. 진동수가 높은 전자기파는 에너지가 크며 파장은 짧다. 무작정 에너지가 크다고 좋은 게 아니다. 모든 전자기파는 각각의 쓸모가 있다.

 

우리가 듣는 라디오 전파는 진동수가 아주 작은 전자기파다.


 

우리가 듣는 라디오 전파는 진동수가 아주 작은 전자기파다. 진동수가 낮으니 파장은 길다. 파장이 긴 전자기파는 멀리 잘 나간다. 그래서 라디오 방송에 사용하는 것이다. 라디오 전파에는 FM과 AM이 있다. AM 라디오의 주파수를 보면 킬로헤르츠(KHz) 단위로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FM 주파수는 메가헤르츠(MHz) 단위다. 여기서 말하는 주파수가 바로 진동수이다. AM 라디오는 FM 라디오보다 진동수가 1000배 작다. 따라서 파장은 1000배 길다. 그만큼 멀리 간다. FM은 진동수가 높아서 파장이 짧기 때문에 멀리까지 보내지는 못하지만 담을 수 있는 정보가 많다. 덕분에 스테레오 음악방송이 가능하다.​

 

전자기파를 굳이 전자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대개 전자파를 두려워한다. 전자파가 영양소를 파괴하고 건강을 해치며 심지어 암을 유발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전자파를 두려워하시는 분들이라고 해서 설마 라디오를 들으면 건강이 나빠지고 음식 할 때 라디오를 켜놓으면 영양소가 파괴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전자레인지다.

 

휴대폰과 전자레인지가 사용하는 전자기파를 마이크로웨이브라고 한다. 그래서 전자레인지를 서구에서는 그냥 마이크로웨이브라고 흔히 부른다. 마이크로웨이브는 라디오파보다는 에너지가 조금 더 세다. 그 위로는 정형외과 치료에 쓰는 적외선이 있고, 더 위에는 가시광선이 있다. 가시광선은 빨-주-노-초-파-남-보라는 무지갯빛을 이루는 전자기파로 우리가 볼 수 있는 파장 범위에 있다. 

 

무지갯빛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그것보다 두 단계 아래에 있는 마이크로웨이브를 두려워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전자기파는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처럼 가시광선보다 진동수가 높고 파장이 짧은 것들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전자제품에서는 전자기파가 나오지만, 전자레인지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사진=www.personal.psu.edu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전자제품에서는 전자기파가 나온다. 전자레인지를 두려워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헤어드라이어는 거침없이 사용한다. 헤어드라이어에서 나오는 전자기파는 전자레인지에 코를 대고 들여다볼 때 쬐는 전자기파보다 10배가량 에너지가 높다. 전기장판은 말할 것도 없다. 전기장판에 3센티미터 두께의 요를 깔고서 온도를 미지근한 정도로 맞추면 전자레인지에서 30센티미터 떨어져 있을 때보다 10배 정도 높은 전자기파가 측정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가습기에서는 전자레인지보다 14배나 많은 전자기파가 나온다. 더 놀라운 것도 있다. 화장실에서 쓰는 비데다. 비데를 사용할 때 나오는 전자기파는 헤어드라이어보다 두 배가 많다. 그러니까 비데에서는 전자레인지보다 20배가 많은 전자기파가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소용없다. 그들은 국제보건기구(WHO)가 휴대전화를 발암등급표에 올려놓은 것을 지적한다. 사실이다. WHO는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전자기파와 암의 발생 사이에 아주 제한적이며 약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설명한다. WHO 발암등급표에 올라 있는 휴대전화의 위험도는 2B다. 커피와 김치도 마찬가지로 2B다. 결국 WHO에 따르면 휴대전화는 커피나 김치 정도로 위험한 장치라는 뜻이다. 휴대전화가 위험하다고 생각된다면 커피와 김치도 먹지 말아야 한다. 커피와 김치 정도의 위험성은 감수할 수 있다면 휴대전화도 감수할 수 있는 것이다.

 

휴대전화, 전자레인지의 전자기파마저 두렵다면 김치도 먹기 어렵다.


나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산다. 직장은 서울시 노원구 하계동이다. 자동차로 이동하면 외곽순환고속도로로 1시간 이내 거리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시간 30분 이상 걸린다.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후딱 지나간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휴대전화 통화 소리 때문이다. 

 

전자제품은 30센티미터만 떨어트려도 전자기파의 세기가 6∼7분의 1로 줄어든다는 사실을 아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다들 휴대전화를 멀리 하고 쓰신다. 덕분에 통화소리는 커지고 책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고 출퇴근시간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다.

 

전자레인지는 단순하게 물을 데우는 장치다. 그 과정에 음식이 익는다. 이때는 영양소의 손실도 없고 암을 유발하는 물질을 만들지도 않는다. 휴대전화도 마찬가지다. 위험하다고 해도 김치 정도다. 제발 휴대전화는 귀에 대고 조용히 통화하자. 그게 주변에 있는 시민들의 정신건강에 좋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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