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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입] 내 인생의 ‘해피엔딩’이란 어떤 결말일까

행복을 기획하는 여자, 영화 ‘매기스 플랜’을 보고

2017.02.01(Wed) 13:13:37

영화 시작 20분이 지나 버렸다. 상영관으로 도둑처럼 숨어들며 자책했다. 또 시간 약속을 못 지켰네. 작년도 그렇고 재작년도 그렇고 ‘올해의 결심’ 중 하나가 ‘시간 약속’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부터 잘 되지 않았다. 영화는 11시 50분 시작인데 12시 20분이 되어 D열 14번에 착석했다. 10분 광고 시간을 제외하면 20분 늦은 셈이다. 

 

영화 ‘매기스 플랜’ 포스터.


다행인 건 혼자만의 약속이라는 점. 누군가 기다리는 상황에서 영화가 20분 지나가면……. 상상만으로 현기증이 났다. 다행이었다. 그 순간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현기증 날 일도 없었다.

 

그렇게 앞부분을 날린 영화가 ‘매기스 플랜’이다. 에단 호크, 줄리안 무어, 그레타 거윅 출연. 에단 호크와 줄리안 무어보다 기대되는 배우가 그레타 거윅이었다. ‘프란시스 하’에서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매기스 플랜’을 보는 이유 중 팔 할이 그레타 거윅이었다. 운 좋게 자리에 앉자마자 그레타 거윅이 등장. 

 

지각생인 나에게 주어진 첫 장면은 이러했다. 무슨 사연인지 매기(그레타 거윅)가 가이(트램피스 핌멜)에게 정자를 받아오라고 플라스틱 통을 내민다. 그때 가이가 제안한다. “당신은 오늘 너무 예쁘고” 자신은 그런 것을 혼자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매기의 눈빛이 애처롭고 불안하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 매기는 제안을 거절한다. 가이의 정자는 필요하지만 가이와 연결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매기스 플랜’ 스틸 컷.


다음 순간 존(에단 호크)이 등장한다. 존은 매기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만을 낳고 싶던 뉴욕 여자 매기는 사랑에 빠져 존과 결혼한다. 말하자면 매기는 존과 연결되기를 바랐고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행복에 이르렀는가. 결코 아니다. 결혼 이후 매기는 행복을 느낄 겨를조차 없다. 존도 돌봐야 하고, 존과 자신의 아기도 돌봐야 하고, 존과 전부인의 아이들도 돌봐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돈벌이도 해야 한다. 

 

매기는 존에게 푸념한다. 그럼 존은 ‘당신은 괜찮잖아’하며 달콤한 목소리로 되받는다. “왜 나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매기가 백 번 말해도 알아들을 존이 아니다. 애당초 알아들을 사람이면 상대의 상황을 단정하지 않는다. ‘괜찮음’ 낙인을 찍기 전에 ‘괜찮지 않을 수도 있음’을 염려한다. 

 

시작은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는 의도지만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삶을 떠맡는 체제로 흘러가는 결혼 생활이 있다. 그러한 결혼은 성장하지 않는다. 신체와 영혼의 힘이 소진될 뿐이다. 매기는 지쳤다. 매기가 ‘황당한 해피엔딩’을 계획하고, 조젯(줄리안 무어)을 붙잡고 다시는 누군가의 운명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는 따져보면 하나다. 

 

영화 ‘매기스 플랜’ 스틸 컷.


자신의 행복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행복을 잡기 위해 깊이 연결된 누군가를 끊어내야 한다. 그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잘못된 관계를 지지부진 이어가는 것은 이해심이 깊은 게 아니라 용기가 없는 것에 가깝다. 

 

매기의 황당한 계획은 성공한다. 그러나 존이 떠나려 하자 매기는 모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눈물을 흘린다. 둘 사이에 더 이상 애정을 동반한 미래가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진다. 그렇다고 어긋난 관계를 되돌릴 수도 없다. 충분히 이별을 예견하면서도 이별의 순간에 밀려오는 먹먹함은 어쩔 수 없다. 

 

침대에 걸터앉아 매기와 존이 차분히 이별을 말하는 동안 나도 코끝이 찡했다.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마음 편히 울었을 텐데, 혼자인데다 휴지도 챙겨오지 않아서 울면 안 된다고 되뇌었다. 그럼에도 지난날 겪었던 이별이 떠올라 눈에 눈물이 찼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가오는 이별에 저항하지 못해 헤어졌구나, 문득 깨달았다.

 

끝은 처음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처음에 매기는 자신이 옆에 있다면, 존이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기대했다. 때로는 매력적인 상대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나’라는 생각에서 사랑이 싹트기도 하니까. 돌이켜보면 그러한 기대 없이 시작된 연애가 있었나. 

 

영화 ‘매기스 플랜’ 스틸 컷.


서로를 더 나아지게 하리라는 희망이 연애를 시작하는 원동력이 되곤 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잊은 채 우리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쉽게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깨지고,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예전 같지 않은 마음이 드는 이유를 모르겠고, 그렇게 마음이 바뀌어버린 자신을 모르겠고, 나이가 들수록 더 모르겠고, 아마도 내년이 되면 더욱 모를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불확실한 감각만이 확실해지리란 것만 잘 알겠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표를 꾸깃꾸깃 접어 지갑에 넣는데, 팔짱을 끼고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연인들을 보았다. 현기증이 나더라도, 20분이나 늦었다고 불평할지라도 영화가 끝나면 저렇게 팔짱 끼고 웃으며 나오면 되지 않을까. 

 

끝이 좋으면 좋은 것. 그러면 행복할까. 무엇이 행복일까. 영화에서 매기가 세 살 배기 딸을 볼 때마다 미소 짓는 걸 보면 하나는 알겠다. 나를 계속 미소 짓게 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매기는 새로운 행복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 가이가 스케이트장으로 다가오는 영화의 끝 장면. 모두가 예상하는 해피엔딩 쪽으로 매기는 지금 잘 가고 있을까.​ 

김나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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