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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알앵알] 7시간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관람기

‘누가 볼까’ 싶었지만, 객석은 만석이었다

2017.03.14(Tue) 16:48:01

[비즈한국] 7시간. 비행기를 탄다면 인도까지 갈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펼쳐지는 연극이 있다.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유작을 각색해 선보이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1, 2부 7시간 분량을 연이어 공연하는 날은 3월 11일, 18일뿐이다.


7시간의 도전은 1, 2부로 나뉜다. 매일 번갈아가면서 절반 분량을 공연한다. 하지만 딱 이틀, 3월 11일과 18일에만 오후 2시부터 시작해 10시 30분까지 하루에 쏟아낸다. 

 

지난 3월 11일 토요일 대학로를 찾았다. 7시간 동안 본다는 생각에 물을 세 병 샀다. 화장실도 다녀왔다. 공연장에 입장하면서 한 직원은 ‘생리현상 등으로 한 번 퇴장하면 재입장 절대 불가’라는 안내를 했다.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객석은 빈자리 없이 들어차 있었다. 1부만 보더라도 3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그럼에도 매진이다. 나진환 연출은 “좋은 연극을 만들면 관객은 찾아주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큰 도전으로 화제를 모아서인지 공연장을 찾은 유명 인사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배우 이순재 씨, 김한길 전 의원, 배우 최명길 씨가 극장을 찾았다. 이순재 씨는 2부가 끝날 때까지 7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공연이 시작됐다. 화제가 됐던 52년차 배우 정동환 씨가 등장했다. 그는 이날 네 개의 배역을 소화해냈다. 첫 번째 배역은 극을 열고 끝내는 도스토예프스키였다. 연극은 대학로에서 흥행하는 로맨틱 코미디처럼 즐겁고 재미난 내용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때로는 지칠 정도로 고집스럽게 인간 내면으로 파고든다.

 

1부 막판에 모두가 감탄하는 정동환 씨의 대심문관 장면이 등장한다. 25분여간 격정적으로 철학적이고 난해한 말을 쉬지 않고 말한다. 엄청난 암기력, 그보다 더 뛰어난 연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나 연출은 “이 25분여의 장면을 만드는데 약 3개월이 걸렸다. 장동환 씨와 함께 조금씩 수정해가면서 지금의 대사가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1부가 끝났다. 옆자리 관객은 ‘내일 2부 보러 와야겠다’며 일어섰다. 약간의 부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화창한 봄날 2시에 들어간 극장을 나올 때는 6시에 가까운 시간. 1시간 정도 후인 7시에 다시 입장해야 한다. 1부가 끝나고 어스름해지는 해를 바라보며 길거리에서 파는 소시지를 사먹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현수막.


마침 옆에서 두 명의 남성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이야기해 귀를 기울이게 됐다. 한 남성이 현수막을 보며 “친구가 저 연극의 배우로 공연하고 있는데 7시간 동안 연극을 한다”고 했다. 친구는 “​7시간 연극이라니 어떻게 보러 가냐. 내 인내심으로는 도저히 못 본다. 누가 보겠느냐”​고 말하며 웃었다. 손에 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프로그램북을 슬그머니 감췄다. 

 

2부가 시작됐다. 역시 객석은 만석이었다. 배우들은 지친 기색 없이 열연을 펼쳤다. 1부보다 더 긴장감이 넘쳤다. 땀이 흘렀고 피가 쏟아졌다. 다양한 장치도 활용됐다. 그럼에도 지휘자인 나 연출은 ‘예산이 부족해 생각했던 장치를 쓰지 못하고 줄인 것도 많다’고 말했다.

 

공연 시간이 워낙 길기에 휴대전화 벨소리도 꽤 들렸다. 입구에서 휴대전화 전원을 끄라는 당부를 했어도 울렸다. 중간에 떠나는 사람의 모습도 보였다. 어두컴컴한 배경이 오래 지속되는 연극 특성상 조는 사람도 많았으리라. 그럼에도 연극은 끝없이, 끝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쉬는 시간을 포함해 연극은 8시간 30분 만에 끝이 났다.


2번의 15분간 쉬는 시간, 1, 2부 사이의 1시간여의 시간까지 포함해 총 8시간 30분여가 지나고 나서야 연극이 끝났다. 2시부터 보기 시작한 공연은 10시 반에서야 객석을 완전히 떠날 수 있었다. 극장을 나서는데 밤은 깊어 있고 날씨는 쌀쌀할 정도로 추워져 있었다.

 

7시간이나 앉아 있어 엉덩이는 뻐근했다. 난해한 대사에 정신은 피곤해져 있었다. 일종의 고통이었다. 그래서인지 집으로 향하는데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는데, 삶 속에서 고통을 제거하면 행복할까’라는 연극 속 대사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 

김태현 기자 toyo@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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