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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전쟁을 위한 과학, 평화를 위한 과학

과학으로 지뢰 없는 세상을 만든다

2017.04.21(Fri) 15:41:45

4월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전 세계에서 ‘과학을 위한 행진(March for Science)’이 열릴 예정이다. 이 행진의 피켓을 준비하는 모습. 사진=Science for Peace 페이스북


[비즈한국] 영국의 모험가 베어 그릴스가 조난 상황에서 여러 생존기술을 이용해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내용을 담은 TV 프로그램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생존기술과 관련된 내용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인터넷 동호회들을 찾아 가입하고 활동을 하며 수업자료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다.

 

동호회에 모여든 사람들은 제각각 여러 이유와 동기로 가입하고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한국의 베어 그릴스를 꿈꾸는 중학생 소년도 있었고, 등산·캠핑 등의 야외활동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취미의 연장선에서 또는 야외활동 도중의 조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 가입하기도 하고,  홍수나 화재, 지진 등의 재난을 대비하기 위해서 가입한 사람들도 있었다. 앞서 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존 기술을 익히거나 3일 정도를 버틸 수 있는 기본적인 생존 가방을 집에 준비해 두는 정도였다. 어지간한 재난 상황이라면 3일 정도면 정부나 구호단체의 도움을 받게 될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을 하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지만 전쟁이나 그 이상의 극한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를 하는 사람들(생존주의자라고 부른다)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몇 년을 버틸 수 있는 식량과 물자들을 준비하고 여러 대피처와 이동 수단들을 준비한다. 이 정도 되면 동호회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은 뭐 그리 호들갑이냐는 식이다. 별나거나 독특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 간혹 소개되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 외에도 앞서 말한 동호회에서는 여러 재난이나 안전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야외활동이 많아지는 시즌에 유행성출혈열 등을 조심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식인데, 장마철이 되면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바로 지뢰를 조심하라는 이야기이다. 묻어둔 지뢰들이 큰 비에 쓸려 내려와 민간인 피해가 생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김기호 한국지뢰제거 연구소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DMZ 지역에만 남북과 미군이 묻어놓은 지뢰가 200만 발 이상은 될 것이라고 한다. DMZ가 아닌 군사지역까지 고려하면 아마 그보다 훨씬 수가 늘어날 것이다. 남한의 지뢰만 따져도 매설지역이 여의도의 300배가 넘고, 모두 제거하는 데 489년이 걸린다는 것이 국방부의 예측이다(이 정도면 제거 못 하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남한에서 가장 많이 매설되어 있는 M14대인지뢰. 사진=위키미디어코먼스

 

지난 4월 11일 ‘Nature Biotechnology’ 온라인판에 게재된 기사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히브리대학교 연구팀이 지뢰탐지를 좀 더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한다. 금속탐지기 등 기기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결국 사람이 나서야 하는 것이 지난 수십년 간의 지뢰 탐지와 제거 방법이었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무엇보다 위험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금속탐지기로는 플라스틱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지뢰를 찾기가 어렵다. 

 

연구팀이 제안한 방법은 미생물을 이용해서 원격탐지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폭발물 재료인 TNT에서 발생하는 증기에 반응하여 형광 신호를 내는 ‘폭발물 탐지용 센서 박테리아’를 생물공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 내었다. 이 센서 박테리아를 구슬 모양의 용기에 넣어 지뢰 매설 지역에 뿌리고는 발생하는 형광 신호를 레이저 스캔 시스템으로 찾아내는 방법으로, 비금속 재료의 폭발물까지도 안전하게 원격으로 탐지할 수 있게 하였다. 후속연구로 이 기술이 현실화되면 우리나라의 지뢰제거가 수백 년이 아니라 십수년 안에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뢰원격탐지 상상도. 사진=히브리대학 홈페이지


지뢰탐지를 위한 레이저 기반의 스캔 시스템. 사진=히브리대학 홈페이지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은 늘 더 좋은 무기와 장비 들을 요구했고 그에 응답한 것은 과학기술(아마도 좀 더 정확히는 과학기술자)이었다. 화약, 무선통신, 레이더, 인터넷, 핵폭탄 등의 과학기술의 산물이 전쟁을 치르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개발되거나 발전되었다. 그 산물들을 민간에서 사용하게 된 경우도 적지 않다. 로켓, 전자레인지, GPS, 여러 의학 지식과 기술이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지지하거나 꿈꾸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한 과학기술의 성과들은 단지 전쟁을 위해 정부가 많은 후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니 평화적인 목적을 넘어서지 않는 범위에서 과학기술에 후원이 가능하도록 하면 될 일이고, 그렇게 되도록 지지하고 감시하는 일은 시민들의 몫이다. 

 

이스라엘 연구팀의 지뢰제거 기술 개발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과학기술의 연구와 개발은 인류의 지적 호기심을 해결하거나 인류를 이롭게 하는 일이면 충분하고,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의 발언은 우리의 자식들을 전쟁터로 내몰지 않는 일이어야 한다.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준비는 몇 년치의 식량과 물자가 아니라 배낭 하나로 충분해야 한다. 우리 바다에 미국의 항공모함이 뜨거나, 북한이 미사일을 쏘거나 할 때마다 라면박스와 생수를 사러 마트로 가는 일도 없어야 하지 않겠나. 낚시하던 사람이, 등산하던 사람이, 근무를 하던 젊은 군인이 지뢰에 다치거나 죽는 일도 이젠 없어야 하지 않겠나. 전쟁 없는 세상, 백일몽에 그칠 일은 아닌 것이다.

 

(덧. 지난 4월 4일은 유엔이 지정한 ‘지뢰 제거 활동 국제 지원의 날’이었다. 그리고 4월은 ‘과학의 달’이다.)

 

정인철 사이언스커뮤니케이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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