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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개정 약속, '단통법'은 왜 악법이 되었나

입법 취지 무색하게 폐단만 발생…기업 간 가격경쟁 유도가 '핵심'

2017.05.11(Thu) 13:50:32

[비즈한국] 최고급 스마트폰의 가격은 보통 90만~100만 원이다. 제조사에서 발표한 ‘출고가’라는 이름의 정가다. 하지만 과거에는 어떤 소비자는 정가 그대로 사고, 어떤 소비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으로, 또 어떤 소비자는 공짜로 샀다.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소비자에 따라 극단적인 차별적 거래가 이뤄졌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 할인이라는 판매 촉진 활동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 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싸게 산 사람이 싸게 산 사람의 비용을 대신 치르는 구조다. 이러한 불균형을 막아 보겠다고 만들어진 법이 바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이른바 ‘단통법’이다.

 

단통법의 취지는 제조사와 통신사가 제공하는 할인 혜택을 모든 소비자가 투명하게 알고 평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하지만 지난 2년 6개월간 기업들은 꾸준히 단통법을 위반했으며, 소비자들은 싸게 사는 것이 뭐가 문제냐며 이를 단속하는 기관을 성토했다. 판매자와 소비자 어느 쪽도 보호해주지 못하면서 양쪽 모두에게 불만만 쌓이는 법, 그것이 바로 단통법의 현 주소다.

 

서울시내 한 통신사 판매대리점 전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봉성창 기자


# 경쟁은커녕, 담합만 유도한 ‘단통법’

 

단통법의 핵심은 간단하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법이 정한 비율만큼만 동일하게 할인해주라는 내용이다. 상한액은 33만 원이다. 단, 출시된 지 15개월 미만인 스마트폰에만 적용된다.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렇게 법에서 할인 액수를 정해 놓으면 제조사들이 판매를 늘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출고가를 낮출 것으로 예상했다. 정보의 불균형으로 인해 누구는 싸게, 누구는 비싸게 사는 것을 막고 모두가 공정하게 저렴한 가격으로 살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다. 법이 시행된 지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이는 완벽한 오판임이 드러났다.

 

일단 제조사들은 출고가를 일정 금액 이하로 결코 낮추지 않았다. 차라리 판매 촉진을 위해 통신사와 손잡고 단통법을 수차례 위반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래야 더 잘 팔리기 때문이다. 이는 100만 원짜리 스마트폰에서 30만 원을 빼주는 것과 원래 70만 원짜리 스마트폰의 제값을 다 받는 것에서 오는 차이다. 조삼모사 같아도 소비자들은 전자에 더 끌리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경쟁자가 너무 적었다. 현재 국내 통신 시장은 단통법 이전과 똑같은 가격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애플을 빼면 삼성전자와 LG전자뿐이다. 심지어 단통법 시행 기간 팬택은 도산해버렸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담합 아닌 담합이 이뤄졌다. 

 

통신사끼리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서로 간 지원금 규모를 알 수 없다 보니 무조건 쏟아 붓는 경쟁이 벌어졌다면, 이제는 투명하게 지원금이 공시되다 보니 서로 논의할 필요도 없이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버리는 양상으로 흘러갔다. 이는 모든 소비자가 ‘​공평하게 비싼 값’​으로 스마트폰을 사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 판매 대리점은 어떻게 단통법을 위반했나

 

출고가를 높이는 방식은 지금까지 줄곧 이어져 온 휴대폰 판매 전략과 관계가 깊다. 일단 제조사는 출고가를 최대한 높게 책정한다. 통신사는 요금제를 최대한 복잡하게 만든다. 그 다음 각종 할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를 통해 판매 대리점이 소비자에게 최대한 높은 할인 액수, 나아가 ‘공짜폰’을 제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실제로 따져보면 결코 공짜가 아님에도 소비자들은 쉽게 현혹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스마트폰 구매에 익숙한 소비자들이 ‘할부원금’을 따지기 시작했다. 어떠한 감언이설과 상관없이, 계약서 써있는 할부원금이 내가 부담해야 할 정확한 금액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하우가 퍼지자 일부 판매 대리점은 이른바 ‘백마진’을 약속하기 시작했다. 가입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통장에 약속한 금액을 송금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방식으로 할인을 받은 경우도 있지만, 이를 지급하지 않고 도망친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여기서 이해하고 가야 할 두 가지 개념이 있다. 바로 지원금과 판매장려금이다. 지원금은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금전적 혜택이다. 쉽게 말하면 공식 할인액이다. 판매장려금은 판매자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인센티브다. 대리점은 더 많은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판매장려금 범위 내에서 법을 어기면서까지 소비자에게​ 할인액을 제시한다. 지원금은 누구나 동등하게 받는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구매 요인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통신사와 제조사들은 지원금 상한액 33만 원조차 전부 채우지 않고, 대신 판매장려금에만 열을 올린다.

 

제조사와 통신사는 이러한 판매 장려금을 갑자기 늘리는 방식으로 이른바 ‘대란’을 조성한다. 단통법을 어겨서까지 일시적으로 판매를 크게 늘리는 전략이다. 지금까지 방통위는 이를 조사해 수차례 영업정지와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통신 3사에게 번갈아가면서 내려지는 영업정지는 별 의미가 없었고, 과태료 역시 솜방망이에 그쳤다는 분석이다.

 

통신 3사가 비슷한 시기에 약속이나 한 듯 단통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많아 영업정지 처분이 별다른 제재 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박은숙 기자

 

# 상한제 폐지-분리공시제 도입, 과연 효과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단통법 규정 중 하나인 지원금 상한제를 조기 철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10월 없어질 규정이지만, 이를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지원금 상한제를 철폐한다고 해서 제조사와 통신사가 당장 지원금을 대폭 늘릴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차피 판매 촉진이 안 되는 할인은 그냥 수익성 악화로만 이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상한제가 있는 지금도 통신사와 제조사들은 지원금을 상한 액수까지 지급하지 않고 있다. ‘갤럭시S8’의 경우 월 11만 원짜리 요금제를 사용해도 공시지원금은 27만 원 전후에 불과하다. 출시된 지 1년이 지난 ‘​갤럭시S7’​도 11만 원 요금제 기준 30만 원 전후다. 상한액 33만 원에 못 미치는 지원금이다. 그러나 지난 3일 갤럭시S8의 판매 장려금은 무려 60만 원까지 치솟았다. 즉, 상한액이 있어서 가격 경쟁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공시 지원금으로는 경쟁할 마음이 없다는 이야기다.

 

문재인 대통령의 또 다른 공약인 분리공시제는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지원금은 통신사와 제조사가 제공하는 금전적 혜택을 합친 것이다. 이것을 주체별로 각각 분리해 공시하자는 것이 분리공시제다. 이는 당초 2014년 단통법 입법 당시 함께 추진된 규정이지만 제조사, 특히 삼성전자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됐다.

 

제조사가 분리공시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이렇다. 가령 100만 원짜리 스마트폰에 20만 원의 지원금이 들어가는 것이 대중에 알려지게 되면 제조사가 스스로 출고가에 거품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나아가 차라리 출고 가격을 80만 원으로 낮추라는 비난 여론이 생길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차피 지원금 상한액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실 분리공시제가 큰 의미가 없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상한제 폐지와 분리공시제가 동시에 이뤄지면 애당초 단통법의 입법 취지인 출고가 인하를 직접적으로 유도할 수 있을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 공약을 내건 취지로 해석된다. 소비자가 자신이 구입하는 스마트폰의 진짜 값어치를 쉽게 알 수 있어 보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이는 기업을 자극해 자연스럽게 출고가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단통법을 무조건 폐지하자는 주장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라며 “핵심은 기업 간 가격 경쟁을 최대한 유도하고 복잡한 요금제를 최대한 단순화 시켜 모든 소비자가 정확한 가격을 알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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