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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나들이] 조릿대에 설 자리 잃어가는 설앵초

설앵초(앵초과, 학명 Primula modesta var. fauriae)

2017.06.20(Tue) 18:15:28

[비즈한국] 기다림은 설렘이다. 그리운 마음이 설렘을 부추긴다. 꽃 찾아 힘겨운 산을 오르는 것은 보고 싶고 기다리는 꽃을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을 찾아 산에 오르는 일도 버겁지만, 올해처럼 가문 날씨에는 기다리던 꽃이 꽃을 피웠으려나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한라산 등산길 입구인 영실에서 산길을 들어서면서부터 주변의 꽃들을 살핀다. 찾아온 꽃의 꽃 피는 시기가 어긋나지 않았는지? 가뭄 속에서도 충분히 잘 자랐을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산들꽃은 자연 속에 자라는 꽃이다. 그해 기상 따라 꽃 피는 시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피는 모습도 풍성할 때도 있고 빈약할 때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 꽃 자체가 없어진 경우도 있다, 힘겹게 먼 길을 찾아와 한라산을 오르는 것은 산 자체의 풍광도 아름답지만, 꼭 보고 싶은 몇 종류의 꽃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나고자 하는 꽃 중 설앵초도 그중의 하나다. 야리야리한 새싹을 내밀고 큼직한 꽃망울을 힘겹게 밀어 올려 환한 웃음처럼 꽃을 피워내는 한라산 설앵초를 만나보고 싶었다.

 

설앵초는 돌과 이끼가 있고 습기가 많은 높은 산에서 드물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한라산 윗세오름과 지리산, 가야산 등지에서 자라는 귀한 야생화이다.


오백나한상을 지나고 병풍바위를 지나 산능성이를 올라 윗세오름 벌판을 보니 산철쭉 꽃물결이 한라산 남벽까지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 펼쳐져 있다. 짙은 안개 속이라 선명하지 못한 전망이 아쉽기는 했지만, 언뜻언뜻 지나는 구름 사이로 비치는 꽃물결이 오히려 신비로워 보이기도 했다. 이 정도 지점이면 보고 싶은 꽃이 있을 법한데도 나타나지 않으면 괜스레 염려된다. 세잎바람꽃, 홍괴불나무, 흰그늘용담을 만났고 설앵초를 찾는 중이다. 우거진 풀더미 사이로 빼꼼히 고개 내밀고 반가이 맞아줄 설앵초를 찾아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드디어 설앵초를 찾아냈다.

 

해발 1500m가 넘는 바람 차고 고적한 한라산 고지대에서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앙증맞게 피워 올린 꽃송이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어렵게 한 송이 찾아내 허리 굽혀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옆에 군데군데 여러 포기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꼿꼿이 서서 거만스럽게 내려다보지 않고 허리 굽혀 공손하게 살펴야만 숨은 그림인 듯 풀더미 속에서 모습을 보여 주는 꽃인가 보다. 

 

수줍은 듯 다소곳이 연분홍 꽃잎을 길섶에 감춘 채 바람결에 살짝살짝 드러내는 앙증맞게 고운 자태가 그리움 품고 온 가슴에 푹 안기어 든다. 실바람에 야리야리 흔들리는 설앵초 꽃송이! 여리고 자그마한 새싹이 헝클어진 길섶에 들어앉았다. 바람 차고 거친 한라산 기슭에서 차가운 날씨와 비바람 견뎌내며 힘들고 고단하게 피워낸 맑고 고운 꽃이다. 이토록 곱고도 여린 설앵초가 이곳 윗세오름에서 해가 갈수록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 뼈 시리게 차가운 한라산의 한겨울을 어렵게 이겨내는 것도 힘들 터인데 야금야금 자생지를 침범해 오고 있는 제주조릿대에 치여 설 땅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현재 꽃 피우고 있는 개체도 제주조릿대 틈새에 끼워 시난고난 버티고 있지만, 내년의 예쁜 꽃망울을 기약하기는 쉽지 않을 성싶다. 

 

지금 한라산은 해가 갈수록 확산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제주조릿대 탓에 심각한 생태계 훼손 위협에 직면해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지난해 발표한 ‘조릿대 관리방안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해발 1400m 이상 지대 22㎢ 중 19㎢(88.3%)에 조릿대가 분포한다. 한라산 분화구 및 암반 지역, 습지, 인공시설물 구역을 제외한 거의 전 지역에 제주조릿대가 퍼져 있는 셈이다. 

 

현재 제주조릿대의 한라산 생태계 훼손 방지를 위하여 ‘세계유산 한라산연구원’과 국내 학술용역기관이 5년(2016~2020)간에 걸쳐 ‘제주조릿대의 효과적인 관리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벌채, 말 방목 등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윗세오름 실험지역에서 제주조릿대를 벌채하고 보니, 털진달래의 경우 벌채지역 내 90% 이상, 산철쭉의 경우 50% 이상이 상단 가지가 고사했다고 한다. 

 

제주조릿대에 포위된 설앵초. 생태계 복원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더 이상 한라산에서 설앵초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실험지역을 가보니 벌채한 지역의 상단 가지가 고사한 털진달래 밑동에서는 작은 맹아들이 싹트고 있었다. 숨이 막혀 질식한 털진달래가 햇볕과 바람이 들게 벌채해주니 눈물겹게 여리디여린 새움을 키워내고 있었다. 조금만 더 그대로 두면 뿌리까지 죽어서 맹아도 싹트지 못하게 되어 한라산의 털진달래와 산철쭉은 완전히 고사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설앵초며 흰그늘용담 등 작고 여린 풀꽃들이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제주조릿대 관리 방안 연구’가 하루빨리 좋은 성과를 내서 한라산 생태계 복원이 잘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였다.

 

설앵초는 돌과 이끼가 있고 습기가 많은 높은 산에서 드물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꽃은 엷은 분홍색으로, 뿌리에서 자란 긴 꽃줄기 끝에 앵두꽃처럼 생긴 꽃들이 우산 모양으로 달린다. 큰앵초보다 더 높거나 북쪽 지방에서 자생한다. 5~6월 한라산 윗세오름 정상부에서 관찰할 수 있으며 지리산, 가야산 등지에서도 자라는 귀한 야생화이다.

 

매우 비슷한 종으로 좀설앵초가 있다. 좀설앵초는 함남 이북과 백두산 소천지 둘레에 분포한다. 좀설앵초는 꽃과 잎의 색이 더 진한 편이며 연분홍 꽃 중심부가 노란색이고 잎이 밋밋하다. 설앵초는 좀설앵초와 달리 잎에 잎맥이 나타나며 연분홍 꽃 중심부 노란 부분에 하얀 테가 있으며 잎과 꽃줄기가 좀설앵초보다 크고 잎이 우글거리는 편이다. 

박대문​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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