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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개선 없이는…" 방산비리 수사의 역설

과거 수사 실패 탓 국내 업체만 위축…제도개선 목소리

2017.07.21(Fri) 17:58:06

[비즈한국] 방위산업은 새 정부 출범 때마다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다.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방산비리 척결을 강조하며 국방개혁의 시동을 걸고 나섰다. 문제는 역대 정부마다 방산 관련 이슈는 이전 정부의 흠결을 따지는 ‘단골메뉴’로 활용됐고, 정작 방위산업 관련 제도 정비나 경쟁력 부족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는 점이다. 최근 방산비리 척결과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7일 청와대 여민1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방산비리 척결은 더 미룰 수 없는 적폐 청산 과제”라고 밝혔다. 그래픽=이세윤 디자이너

 

최근 한 방산업체 관계자가 한 말이다. 방산업체들을 부당거래로 폭리를 취하는 비리집단으로 보는 일반의 시선에 이제는 일할 맛도 안 난다고 했다. 그는 “정권마다 방산비리 척결은 매번 말만 바뀐 채 반복됐다. 방식도 다른 게 없다.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만 깊어진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문재인 정부가 5년간 추진할 국정운영 계획을 발표하면서 첫 번째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세웠다. 정부가 부정부패 청산을 기치로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를 예고한 것이다. 검찰은 정부의 비리 척결 의지에 맞춰 국내 최대 방산업체인 KAI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새 정부 첫 번째 방산비리 수사에 나섰다. 

 

이를 두고 군 안팎과 방산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부담감 때문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역대 정권에서 시도했던 ‘방산비리 척결’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서다. 

 

앞선 정부들은 대대적인 검찰 수사나 집중 단속으로 방산비리 척결을 시도했지만, 전 정부 인사 청산이나 관련자 처벌을 통한 흠결을 찾는 데 급급했을 뿐 비리를 근본적으로 막는 방위산업 환경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방산업계 안팎에선 “오히려 국내 방위산업계를 위축시키는 결과만 가져 왔다”는 강도 높은 비판도 나온다. 

 

# 정권 입맛 맞춘 ‘코드 수사’와 실패

 

단적인 예가 박근혜 정부 당시의 방산비리 정부 합동 수사다.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10월 29일 국회 연설에서 “방산비리는 이적행위”라고 말했다. 당시 방산비리는 이명박 정부의 일명 사자방(4대강, 자원비리, 방산비리) 비리 척결의 일환으로, 그보다 앞서 진행했다가 흐지부지 종료한 4대강과 자원외교 수사를 뒤엎을 만한 ‘마지막 기획 수사 카드’였다.

 

박 전 대통령 발언 한 달 뒤 역대 최대 규모의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출범했다. 군검찰, 경찰, 검찰,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등 105명의 인력이 투입, 1년간 활동하면서 전‧현직 장성급 11명 등 77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어진 재판 결과는 수사 성과와는 딴판이었다. 당시 기소된 이들이 최근 잇따라 무죄를 받고 있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과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을 포함해 합수단 수사로 재판에 넘겨진 전체 기소자들의 무죄율(1심 재판 31% 무죄)은 일반 형사사건(2.2~3%)에 비해 월등히 높다.

 

수사 내용과 결과가 차이를 보이자 군 안팎에선 무리한 기소와 성급한 수사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직 합수단 관계자는 “당시 경제적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대기업 수사는 곤란했다. 방위산업은 비교적 수출액이 미미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적었다”며 “(대통령의 지시로) 어떤 형태로든 성과가 빠른 시일 내에 나와야 했다. 최초 무기도입 결정 단계부터 최종 납품 등 집행 단계까지 모두 수사할 시간이 없었다. 사전준비와 전문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탕 수사’도 도마에 올랐다. 당시 합수단은 수사 대상의 대부분을 앞서 군검찰이 담당했던 사건들로 추렸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미 사실관계가 모두 파악되거나 수사가 종료된 사건을 다시 캐비닛에서 꺼내 새로운 사건으로 ‘포장’했다는 얘기다.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의 STX중공업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군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김영수 국방권익연구소장(전 해군 소령)은 “합수단 수사 당시 새로운 방산비리 사건으로 주목 받았지만, 사실은 2009년 군검찰이 수사했다가 조용히 묻힌 사건이다. 수사 당시 이명박 정부 차원에서 비호가 있다는 말이 많았다”며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서고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시절 합수단이 구성되면서 파견된 군검찰 단장이 정옥근 전 총장 사건을 그대로 가져갔다”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비즈한국DB

 

문재인 정부에서도 방산비리 수사 대상에 오른 사건들은 대부분 과거 사정기관을 통해 조사나 수사가 이뤄졌던 사건들이다. 지난 6월 국회국방위원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이 △KAI 비리 의혹 △대기업 방산계열업체의 한국형 전투기사업(KF-X) 입찰계약 독식 의혹 △F-35 도입 비리 의혹 등이 집중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검찰은 감사원이 2015년 감사한 뒤 보고서까지 발표한 KAI 비리와 관련, 최근 압수수색과 동시에 전방위 방산비리 수사에 착수했다. 

 

김영수 소장은 “사실 관계를 모두 파악하고서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다가 정권이 바뀐 뒤 입맛에 맞춘 ‘코드 수사’를 하면 이미 비리는 손 쓸 틈 없이 진행될 대로 진행된 상황”이라며 “이런 방식은 대대적인 착수와 실패를 반복하는 기존의 ‘용두사미’식 수사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재수사한다 해도 수년이 지난 뒤라 손실된 국방 예산을 회복할 수 없다. 방산비리를 척결하려면 정권에 따라 코드 수사를 하고 처벌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사건이 파악된 즉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방위산업계 크게 위축

 

2015년 6월, 방산업계에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방산업계 큰손이던 삼성그룹이 자사 방산기업을 한화에 매각한 것이다. 섬성테크윈, 삼성탈레스는 각각 한화테크윈과 탈레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빅딜’은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려던 삼성과 글로벌 방산기업을 목표로 하던 한화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진 결과다. 

 

방산업계에선 한화의 ‘약진’보다 삼성의 ‘철수’에 주목했다. 삼성이 방위산업에서 발을 뺐다는 것은 국내 방산업계의 위기를 말해주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합수단 수사 초기 단계부터 삼성의 철수 이야기가 파다했다”며 “민수 제품에서 평균 10% 이상의 마진율을 기록하는 삼성이 겨우 3~5% 마진을 챙기기 위해 ‘방산비리 업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까지 남아 있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산비리 수사-실패’가 반복되면서 방위산업계는 울상이다. 합수단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비리들은 대부분 해외 무기도입 과정에서 불거진 ‘개인비리’로 드러났지만, 이제는 결과와 관계없이 ‘방위산업=비리’라는 인식이 파다해서다. 

 

방위산업 자체도 크게 위축됐다. 방위사업청이 비공식적으로 발표한 2015년 국내 방위산업 수출액은 2014년과 비교해 반토막이 났다. 같은 기간 방위산업에서 철수한 업체들이 늘어난 반면, 새로 진입한 업체들은 줄었다. 군의 주요 무기도입 계획은 연기되거나 중단됐고 빈 곳은 해외에서 무기를 수입해 채웠다. 모두 합수단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 시대 따라 잡지 못하는 제도

 

최근 방산업체들은 제도 정비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비리의 처벌도 중요하지만, 비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방산업계의 가장 큰 고충은 불합리한 원가 산정이다. 

 

시중 일반 제품의 원가는 시장가격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방산물자의 원가는 실발생 비용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1970년대 박정희 정부가 방산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했다. 정부가 생산에 드는 모든 비용을 보전해주고, 이윤까지 얹어 주겠다는 정책이었다. 

 

이 제도는 방산업계가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해외에 수출까지 할 정도로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춘 지금은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을 산정하고 이윤을 내는 게 합리적이지만 방산원가 정책이 이를 가로막는다. 수십 년 전 업체들을 돕겠다고 도입한 제도가 이제는 발목을 잡는 셈이다. 

 

김영수 소장은 “국내 방위산업의 완제품 원가 산정 방식은 사용된 각 부품의 원가를 합해 계산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어떻게 부품 값을 합해 제품 값을 책정할 수 있느냐”라고 반문하며 “과거 재래식 무기 개발‧양산 과정에서 재료비와 노무비 등을 정하던 때와는 달리, 최근 방산 원가에는 실체가 없다. 최첨단 무기가 도입되기 시작한 이후,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 등이 결합하면서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가치가 가격을 결정하는 시대인데, 제도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방사청 원가 팀이 수시로 작업현장을 찾아 점검하고 감시한다. 결국 업체는 인건비에서 남기는 수밖에 없다. 보통 납품 비리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 숨통 조이는 검증 방식 

 

방산원가 검증 방식도 방산업체의 숨통을 조인다. 모든 방산업체는 연말에 방산원가를 방사청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방사청은 이를 검토해 허위사실이 있을 때는 부정당 제재(부정당 업체로 지정해 불이익을 주는 것)를 하고 부당이익금을 환수한다. 업체들은 원가자료 외에 회계자료, 재무제표 등 기밀자료도 제출해야 한다. 방사청에 이어 감사원이 한 번 더 점검을 하고, 국가정보원, 기무사령부 등 보안기관도 수시로 감찰한다.

 

확정 계약 이후에 원가검증을 다시 하는 방식도 논란거리다. 계약이 결정된 이후뿐만 아니라, 납품이 종료된 이후에도 방사청이 원가검증을 다시 할 수 있는 특수계약 조항이 있다. 이는 국가계약법은 물론 일반 계약에선 찾아볼 수 없고, 방위산업에만 유일하게 존재한다. 방사청과 진행되는 계약 대부분에는 이 규정이 있다. 

 

원가 조작 등 비리를 차단하기 위한 조항이지만,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를 들어, 방사청과 1억 원에 부품 납품 계약을 한 방산업체가 계약 이후 생산 과정에서 공장 설비를 개선하거나 직원 숙련도를 높여 8000만 원에 생산했다면 자진해서 차액 2000만 원을 방사청에 반납해야 한다. 8000만 원에 생산할 수 있으면서도 1억 원에 생산이 가능하다고 방사청을 속인 비리 업체가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수의 방산업체들은 이 조항으로 방사청과 행정소송을 치르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나 방사청의 점검 등으로 계약금액보다 생산비를 절감한 뒤 반납하지 않으면, 부정당 제재와 부당이득금 환수조치가 동시에 이뤄진다. 

 

환수조치는 업체들이 직접 행정소송을 벌인 뒤에야 취소된다. 문제는 소송을 벌이는 방산업체들 대부분이 중소기업이라, 납품대금이 환수된 탓에 소송 진행 중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국내 방산업체 대부분은 계약기간 중 추가 투자나 설비 확충은 물론, 인력 조정 등을 하지 않는다. 국내 방위산업 발전 속도가 더딘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최근 방산비리 의혹으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KAI(한국항공우주산업). 사진=KAI 홈페이지


이에 비해 해외 업체는 거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해외에서 구입하는 무기의 경우 원가가 얼마인지 방사청에서 알아낼 근거가 되는 규정이 없다. 전직 방사청 관계자는 “해외 업체는 문제가 생겨도 핑계를 대도 우리나라 정부에서 항의하기가 쉽지 않다. 부품 공급을 중단한다든지 향후 수십 년간 가격을 크게 부풀려 공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19일 국정개혁 5개년 발표에서 방위사업 비리에 대한 처벌과 예방 시스템을 강화하고, 국방획득체계 전반의 업무에 대한 투명성 등을 꼼꼼히 살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뚜렷한 방안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수 소장은 “국내 방산업체에 비리 수사가 집중되는 데다 엄격한 규정과 법적 절차만 들이대면 산업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국가경쟁력도 잃고 해외업체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제도 개선과 정비를 통해 국내 방산업체 등을 육성해야 한다. 그것이 국익이고 자주국방이며, 중소기업 보호와 일자리 창출, 4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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