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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아재들이여, 록페에 가라

록 전성기 겪은 6070, 록페 1세대 4050 '록스피릿'으로 다시 무장해보자

2017.07.31(Mon) 10:37:04

[비즈한국] 주말에 록페스티벌을 다녀왔다. 최대한 아저씨 아닌 척하려고 파란색 반바지에 스트라이프 반발티를 입고 갔고, 공연에 열광하는 20대들 틈에 끼어 스피커를 타고 전해온 진동이 심장에 전해지는 걸 느끼며 음악에 빠져보려 애쓰기도 했다. 

 

사실 록페스티벌을 즐기러 갔다기보단 2030들이 록페스티벌을 즐기는 모습을 보러간 것이나 다름없다. 록페스티벌은 20대가 중심이다. 4050은 비주류다. 평소 직장에선 4050이 중심이자 주류이고, 20대가 비주류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난 록페스티벌이 좋다. 입장이 바뀌기 때문이다. 여기선 잘 노는 게 최고다. 나이 많은 거, 지위 높은 거, 돈 많은 거 따윈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음악을 듣고 흥에 겨워 몰입하면 그만이다. 그 순간엔 현실을 잊는 공간이 된다. 

 


2~3일씩 록페스티벌을 즐기는 이들은 텐트 치고 노숙하는 경우도 많은데, 새벽 3시 정도까지 공연이 이어지다 보니 쉼 없이 음악에 몰입해 놀다가 새벽 늦게 곯아떨어지고, 다음날 다시 음악에 몰입해 놀다가 새벽 늦게 곯아떨어지길 반복하는 식이다. 이런 데서 4050은 루저다. 체력도 안 되고, 노는 것도 20대를 못 이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간 4050은 직장에서도 좀 더 합리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철은 덜 들었을지언정, 꼰대스럽진 않을 거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록스피릿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록페스티벌은 저항문화의 상징과도 같다. 록페스티벌의 대명사처럼 기억하는 우드스톡 페스티벌은 1969년 8월 15일부터 3일간 비오는 중에도 50만 명이나 몰렸다. 촛불집회 때를 떠올려보면 50만 명이면 어떤 그림이 나올지 가늠이 될 것이다. 그 사람들이 록밴드의 무대 앞에서 뛰고 소리친다고 상상해보라. 1969년의 그들은 반전과 저항, 자유를 외쳤다. 세상과 타협 않고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록은 그때 더 절실했다. 

 

우드스톡 페스티벌 이후 록페스티벌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는데, 1970년에 시작한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당시 한국에선 록페스티벌은 엄두도 못 냈지만, 그래도 록과 청바지, 히피, 장발, 미니스커트가 20대 사이에서 유행했다. 기성세대가 하지 않은 것을 하면서, 시대에 저항했던 것이다. 그 중심에 록이 있었다. 

 

1970년대 미국에서도 록페스티벌을 금지하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였는데, 한국에선 노골적이었다. 퇴폐를 조장한다는 명목으로 록음악을 금지가요로 정하거나, 외모불량으로 록밴드의 방송출연도 제한했다. 유신시대, 심지어 통금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록음악의 전성기를 1970~80년대로 본다. 그렇게 시대에 저항했고, 기성세대의 꼰대스러움에 반기를 들었던 당시의 20대들이 지금 6070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때 저항정신을 외치고, 기성세대를 비판했던 그들이 나이를 먹어 꼰대가 될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글래스턴배리를 비롯해 세계적 록페스티벌에 6070 노인들도 페스티벌을 즐기러 온다. 아직 한국의 록페스티벌에서 노인을 본 적은 없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딸과 함께 온 엄마는 봤어도, 가족단위로 놀러온 경우도 꽤 봤어도 노인들은 못 봤다. 물론 왔어도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록페스티벌을 즐기는 사람은 다 젊어 보일 수도 있으니까. 1970년대 록에 심취하고 반전과 민주화, 저항정신을 얘기하던 그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당시 미니스커트를 입고, 히피문화에 빠져 장발족이던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6070까지 갈 것도 없다. 4050도 마찬가지다. 한국 최초의 록페스티벌은 1999년 송도에서 열린 트라이포트 페스티벌이었다. 폭우로 첫날 행사가 일부 중단되더니 다음날 아예 페스티벌이 취소되었다. 비운의 트라이포트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며 다른 록페를 낳았다. 지금은 한국에서도 여름을 록페스티벌의 계절로 인식하게 되었다. 대표적 록페스티벌인 지산밸리나 펜타포트는 3일의 페스티벌 기간에 9만~10만 명이 찾는다. 그만큼 자리를 잡은 문화가 되었다. 

 

빗속에서도 진흙탕 속에서도 미친 듯이 노는 것이 젊음의 특권.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사진=플리커


다시 1999년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한국 최초의 록페스티벌에 달려갔던 20대들이 지금 40대가 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록페스티벌을 찾는다. 심지어 50대들도 가끔 존재감을 드러낸다. 자식 데리고 온 4050들이 20대들처럼 전면에 나서 체력을 자랑하며 음악에 맞춰 뛰진 못해도, 맥주 한잔 기울이며 잔디밭에 누워 유유자적 음악에 심취하는 건 잘 한다. 이 정도만 하더라도 잊었던 록스피릿을 꺼내기에 충분하다.

 

한국의 4050들은 좀 더 놀아야 한다. 너무 일만 한다. 너무 숨 막히게 산다. 무게 잡고 목에 힘줄 나이도 아니고, 꼰대짓하는 아재가 될 나이도 아니다. 아직은 더 놀아도 되고, 아직은 더 철없어도 되고, 아직은 좀 더 록스피릿을 품고 살아도 된다. 올 여름, 아직 남아 있는 록페스티벌이 많다. 전국의 꼰대들이 록페스티벌에 가서 록스피릿으로 20대 시절의 태도로 리셋하고 돌아오면 어떨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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