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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기사단장 죽이기' 하루키 월드의 변주와 나

2017년의 하루키는 변하지 않았다…그동안 변한 것은 나일지도 모르겠다

2017.08.04(Fri) 12:11:12

[비즈한국] 0.

내가 하루키를 접한 것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늦었다. 일본어를 번역했을 때 한국어에서 느껴지는 어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나는 본격적으로 하루키를 싫어하기 위해 스물넷의 여름 호주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그 뒤로 11년이 지났다. 그간 나는 하루키가 발표한 모든 장편소설과 단편소설, 거의 모든 에세이(하루키의 에세이는 너무 많아 다 읽었다고 하기엔 자신이 없다)를 읽었다. 그간의 하루키의 작품들은 뭐랄까, 한마디로 안 읽기가 어려운 작품들이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스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장편이라지만, 무엇인가 정식 넘버링으로 느껴지지 않기에, 이 장편은 ‘1Q84’ 이후 그의 가장 기대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하루키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미 소설가로서 변화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도 하다(하루키는 한국 나이 69세다. 오히려 놀지 않고 이런 장편을 써주는 것이 감사할 나이다). 이 역작의 포인트는 우리의 뇌리에 선명한 하루키 월드가 어떻게 변주되었는가다.

 

사진=문학동네 홈페이지

 

1.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는 내내 나는 수차례의 데자뷔를 느꼈는데, 이를 나열한다.

 

외로운 기조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설 초반부에 그의 여자는 꼭 떠난다. 그녀는 매우 신비로운 여자로, 뒤에 일어날 사건의 암시를 던지고 잠적한다. 그리고 다른 남자와 자거나 같이 산다. 때로는 매우 문란하다. 그는 꼭 그 장면을 계속 생각한다.

 

혼자 남은 그는 기묘하고 음산한 공간에 들어가서 휴대폰도 안 쓰고 인터넷도 안 되는 곳에서 가끔 책만 읽으면서 자기가 처한 현실에 대해 궁구한다. 그는 중요한 순간마다 지극히 하루키적 취향의 노래를 틀어놓고, 그 느낌을 세세하게 기술한다. 자주 나오는 노래는 사건의 실마리가 된다. 가끔 나오는 노래는 단순히 하루키의 취향으로 보인다. 덧붙여 꼭 본인이나 주변 인물 중 한 명은 음악 덕후다.

 

그는 꼭 악착같이 남이 뭘 입었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찰하고 기술한다. 그는 차에 대한 관심이 많이 없고 좋은 차를 타지 않지만, 남이 무슨 차를 타는지 매우 중요하게 관찰한다. 그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등장인물을 아주 마음대로 부른다. “XX차를 탄 사람”, “XX에서 만났던 여자”처럼. 

 

주인공의 소설 속 이름이나 다른 주요 인물의 이름은 일본어로 조금 이상하며 흔히 쓰이지 않는다. 그것을 초반에 꼭 강조한다. 그는 요리를 못 하는 법이 없으며, 꼭 혼자서 밥을 해 먹는다. 늘 소식하고, 간단한 샐러드와 오믈렛을 즐겨 먹는다. 가끔 술을 마시지만 과음하지는 않는다.

 

‘부엉이’와 ‘동굴’과 ‘구덩이’와 ‘까마귀’와 ‘세계 2차 대전’과 ‘지진’이 언급된다. 그는 초반부터 도저히 그로서는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초현실적인 사건을 겪는다. 그는 그 사건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어야 한다고 기회가 될 때마다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그리고 아주 긴 전개를 끝내면 그는 꼭 그 자리나 사건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 자리나 사건은 아무도 갈 수 없거나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는 여행을 떠나는데, 그곳에선 반드시 이상한 인물이나 장소를 만난다. 그 인물이나 장소는 소설 말미까지 회자된다. 그는 누군가에게 전화가 오면 그 전화가 누구의 전화인지 반드시 알아차린다. 가끔 그가 눈치 채지 못하는 전화가 올 경우 그 전화는 반드시 상당히 돌발적인 얘기를 전한다.

 

그는 자신이 매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변에는 꼭 이해할 수 없이 잘났거나 완벽하거나 초현실적인 인물이 이웃이나 친구로 나온다. 그 인물은 세상에서 딱 한 명 그에게 접근해서 뭔가 알쏭달쏭한 소리를 한다. 그리고 그에게 어떤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한다. 

 

그는 자신이 매력이 없고 조용한 사람이지만 왜 자신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혼란스러워한다. 그 주변인물이 한 번 신비롭게 설정되면 끝까지 신비로움을 잃지 않고, 가끔 갑자기 사라진다.

 

그는 성적으로 관심이 많이 크지 않으나, 항상 주변에 여자가 다수 있다. 그는 자신이 만났던 여자가 많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소수의 여자들의 가슴 크기와 몸매와 차림새와 입은 옷과 음모의 결과 그녀와의 성행위를 아주 세세하고 적나라하게 알려준다. 

 

그녀들은 자주 유부녀이고 나름대로 매력 있거나 예쁘게 묘사되며 꼭 바른 말로 사건의 실마리를 던지거나 어느 순간 초현실속으로 들어간다. 어떤 여자라도 종국에는 이해할 수 없거나 혹은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사라진다. 소설 속에서 그 여자에 대한 언급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신비로운 여자다.

 

그는 반드시 소설 속에서 다섯 번 이상 문양도 형태도 꾸밈도 없는 죽음과도 같은 잠을 잔다. 일명 ‘하루키식 잠’이다. 그는 어떤 일에 닥치면 아주 친절하게 생각하고 언급한다. “하긴 그런 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긴 앞서서 그가 그렇게 말했으니 그랬을 것이다.” 같은 문장을 꼭 덧붙인다.

 

그는 가끔 꿈을 꾸는데, 평소 성격과는 다르게 몹시 야한 꿈을 꾼다. 하지만 그 꿈은 실제 일어났던 일과 혼동될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는 때때로 그 꿈을 실제 일어났던 일 같이 믿는데, 놀랍게도 현실은 그 꿈과 묘한 접점을 지닌다. 유독 기억에 남는 성행위가 몇 페이지를 할애해 자세히 묘사되고, 그것은 새로운 생명의 잉태와 연관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는 반드시 어떤 상실의 아픔이 있다. 소설 속에는 그 상실의 아픔을 상기시키면서 마치 현현하는 듯한, 매우 기묘하게 일치하는 존재나 언급이 한 번은 나온다. 그는 소설 내내 적어도 한 번은 초현실적인 공간에 간다. 그 정도 전개가 되면 그는 이미 초현실적인 일을 너무 많이 겪어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그 공간은 대체로 어둡거나 좁고 어딘가로 연결되며 무조건 정신분석학에 나오는 어떤 개념을 암시하는 것 같은 인물이 나와서 역시 알쏭달쏭한 말을 던진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기묘한 느낌대로 행동하지만, 그 느낌이 틀려서 엉뚱한 곳으로 가는 일은 없다. 

 

그나 그의 주변 인물들은 자주 소설의 전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소리를 던진다. 당시 그 일화는 주제의식과 비슷한 결인지, 아니면 그냥 신비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인지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어렴풋이 주제의식과 비슷하다.

 

그의 소설 속에서 무조건 한 번은 영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를 만난다. 그 영은 철학을 배웠는지, 꼭 철학적 개념을 버무려 생과 현실에 대한 충고를 던진다. 또한 그 영은 모든 세상을 손바닥 보듯이 아는 존재지만 반드시 무엇이든 애매하게 돌려서 말한다. 심지어 한 번 나타나면 계속 나타난다. 하지만 그의 언급이나 존재는 꼭 마지막에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다.

 

이런 점들이 나는 아주 반가웠다. 세세하게 보면 더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이것으로 충분해 보인다. 덧붙이면, 1권은 ‘현현하는 이데아’이고 2권은 ‘전이하는 메타포’인데, 진짜로 1권에 이데아가 출연해서 말을 할 때는 조금 놀랐고, 2권에 메타포가 출연해서 말을 할 때는 더욱 놀랐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것도 하루키 소설의 특징이다. 다만 진짜 ‘이데아’와 ‘메타포’라는 이름으로 출연했기 때문에 놀랐던 것이다.

 

사진=문학동네 홈페이지​


2.

다시 언급하자면 나는 하루키의 오랜 팬이다. 그 사이에 ‘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나는 그의 문장 구조를 보며 새삼스럽게 놀라움을 느꼈는데, 그의 서사 구조가 은연중에 내가 쓰는 것과 상당히 비슷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 구조는 재빨리 읽어도 이해할 수 있으면서 뇌리에 남을 정도로 선명한데, 나는 알게 모르게 그에게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물론 나는 그의 대표작처럼 치밀하게 쓰지는 못한다. 나는 일부러 그를 닮으려고 한 적이 없었지만 실은 그간 읽었던 하루키를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일까 생각했다.

 

주인공의 사고방식이나 현실 인식에서도 비슷한 놀라움을 발견했는데, 기본적으로 주인공은 여자가 없거나 떠났으며 치밀하게 외롭다. 그는 혼자 궁상을 떨며 사유를 길게 이어가고, 비현실적인 공간이나 사건을 겪으면서 그것을 건조하게 사유하며 담담하게 기술한다. 

 

나는 그동안 현실에서조차 하루키의 주인공을 닮으려고 했는지, 아니면 워낙 내가 그와 비슷한 인물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처럼 살고자 노력했는지, 적어도 그가 만들어내는 사유의 공간을 동경했는지 모르겠다. 하루키 월드로 돌아와 보니, 적어도 내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내 작가 중에 하루키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가 매우 많으므로, 다들 부지불식간에 그의 영향을 내려 받아 서로 공유했던 것일까도 생각했다.

 

나는 아직 하루키를 대중소설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한다. 뇌리에 깊이 남은 좋아하는 문장도 많고, 장편 엔딩의 강렬함은 유독 선명하다. 그 공간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서술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크게 뇌리에 남을 문장을 발견하기 어려웠고, 엔딩에서도 무엇인가 서둘러 봉합하려는 느낌이 강했다(마지막 단락은 그래도 역시 좋았다.) 전반적으로 과하게 세밀해서 느슨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역시 전성기와 같은 치밀함을 기대하기는 조금 어려웠다고나 할까. 

 

확실한 것은 2017년의 하루키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여러모로 그동안의 하루키를 집대성한 역작이고, 그의 팬에게 또 하나의 선물이다. 하지만 비슷한 그를 보고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는 것을 보니, 어쩌면 그동안 변한 것은 나일지도 모르겠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지독한 하루’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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