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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방] '선악의 쓰레기' 복수가 마련해 주지 않는 것들

잔혹하고 깔끔한 ‘복수 서사’지만 사적 복수에 대한 불편함도 커져

2017.08.18(Fri) 16:07:12

[비즈한국] 복수의 서사를 꽤 좋아한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 삼부작’을 몇 차례나 보았고, ‘킬 빌’과 ‘매드 맥스’에 환호했다. 만화 ‘베르세르크’는 일생을 같이할 작품이고,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은 뭘 모르던 유년기에도 통쾌했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 즐기는 비디오게임도 대부분 복수를 향한 여정이었다. 복수의 서사는 나에게 너무나 익숙했다.

 

‘선악의 쓰레기’는 두 명의 등장인물 카모와 토라가 헌책방으로 위장한 ‘복수사무소’를 운영하며, 억울한 피해자들의 복수를 대행해 준다는 이야기다.


최근 만화 ‘선악의 쓰레기’를 읽게 되었다. 두 명의 등장인물 카모와 토라가 헌책방으로 위장한 ‘복수사무소’를 운영하며, 억울한 피해자들의 복수를 대행해 준다는 이야기였다. 의뢰인들은 대부분 잔인무도한 범죄의 피해자이거나 그 가족들이었고, 복수의 대가로 세 달치 정도의 월급, 때로는 용돈을 지급했다. 복수는 더할 나위 없이 잔혹하고 깔끔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 만화에 대한 불편함은 커졌고, 그 이유를 걱정하게 되었다. 고민을 거듭해 ‘선악의 쓰레기’가 놓치거나 간과하고 있는 몇 가지 지점에 대해 생각을 꺼내본다.

 

‘선악의 쓰레기’는 실제 일본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해 그려졌다. 약물을 이용해 집단성폭행을 했다거나,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에 이르게 하고, 힘없는 동물을 살해했다는 기사는 비단 일본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도 최근 비슷한 뉴스를 들었다. 

 

한 대통령 후보는 돼지흥분제를 한 여성에게 사용했던 과거를 에세이에 남겨 홍역을 치렀고, 교내 집단따돌림으로 인한 자살 소식은 이미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며, 길고양이의 사료에 염산을 뿌려 테러했다는 뉴스에 모두가 분노했다. 이 만화를 단지 텍스트 안으로만 가두기 힘든 이유다.

 

현실사회를 배경으로 한 범죄사건을 다루는 작품은 특히 그 묘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선악의 쓰레기’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만 같다. 아니 오히려 범죄를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 피해자를 시각적으로 소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사회를 배경으로 한 범죄사건을 다루는 작품은 특히 그 묘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선악의 쓰레기’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것만 같다.


우리는 이런 폭력에 예민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고통스러운 장면을 직접 보여줌으로 독자의 분노를 쉽게 소환하고, 이후에 벌어질 복수에 당위성을 부여한다는 작품의 전략은 이해가 되지만, 그렇게 해서 이 작품이 얻을 수 있는 지위는 폭력의 포르노 이상은 아닐 것이다. 

 

특히 이 만화는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에 연재 중이고, 작품 속 피해자는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에서 의도적이라는 의심이 든다(일본의 만화잡지는 대상독자층에 따라 다양하게 발행한다).

 

다음으로 불편했던 지점은 ‘선악의 쓰레기’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다. 이 작품은 사적인 보복이 정당한 행위이며 마치 최선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우선은 작품 속에서나 현실에서 공권력의 부재와 법의 딜레마가 존재한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이 만화 속 가해자들은 인륜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르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혹은 심신미약의 이유로 때로는 증거가 없어서, 우리가 충분하다고 느낄 만큼의 처벌을 받지 않는다. 

 

‘선악의 쓰레기’는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점점 분명한 악을 계산적으로 설계하며 갈수록 자극적인 요소를 더해가고 있다.


그 때문에 그들에게 가해지는 복수행위는 일면 타당하게 보이고 카타르시스마저 제공한다. 하지만 나는 이 만화가 선택한 방식(피카레스크 구성) 때문에 그런 주장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지적하고 싶다.

 

‘선악의 쓰레기’는 대략 두 번의 연재에 하나의 사건을 다루는 식으로 진행된다. 어떤 사건의 내용을 깊숙하게 들여다보기보다는 되도록 간략하고 선악의 대비가 분명한 사건을 인용하게 되는데, 이것이 거듭될수록 복수의 의미는 일회적으로 변한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어떤 사건이 벌어져서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하기 위해 적당한 사건을 기다리는 모습이 된다. ‘선악의 쓰레기’는 이런 딜레마 위에 존재하고,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 점점 분명한 악을 계산적으로 설계하며 갈수록 자극적인 요소를 더해가고 있다.

 

“비록 이상적인 사회 체제가 불가능한 꿈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꿈이다. 애초에 그것들이 꿈인 이유는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지향해야 할 바이기 때문이다.” 

 

김정선의 2010년 연구(2000년대 전반기 한국영화의 사적 복수 재현양상에서 드러나는 윤리적 교착)에서 발견한 이 문장이 ‘선악의 쓰레기’에 대해 불편했던 지점을 대신 설명해 준다. 나는 ‘복수 서사’에 자기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믿고, 그런 관점에서 이 만화에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고 궁리한다.

 

※ 필자는 만화책을 쌓아두고 맥주를 마시는 작은 망가BAR를 고군분투하며 운영 중이다.  

황순욱 신촌 피망과토마토 망가BAR 대표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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