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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변호인] 한 대기업 임원의 패가망신, 성폭력 가해자의 예상치 못한 법정구속

흔한 성적 농담과 신체접촉도 실형 가능성…인권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범죄'는 말아야

2017.11.28(Tue) 15:12:14

[비즈한국]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 그리고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명한다.”

 

판사가 판결을 마쳤다. 그리고 한마디 보탰다. “판결에 따른 수감조치를 이행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교도관들이 피고인 양 쪽에서 팔짱을 끼고 그를 법정 옆 별도의 공간으로 데려갔다. 피고인의 자세로 보아 끌고 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손을 강제로 잡고 끌거나 벽에 밀어붙이는 등의 행동은 드라마에서도 ‘멋진 남자주인공’의 모습으로 자주 나온다. 그러나 범죄다. 그래픽=비즈한국DB


구속의 장면은 여러 가지다. 현행범 체포나 긴급체포로 인해 현장에서 구속, 체포영장 발부에 의해 거주지나 사무실에서 구속, 그리고 법정에서 선고 직후 집행되는 법정구속이 있다. 시각적으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던 피고인의 법정구속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마다 선고일에 법정에 출석할 때는 ‘무죄나 벌금 또는 그래봐야 집행유예를 받겠지’라고 추측한다. 변호인이 법정구속에 대해 설명해줬겠지만 그래도 피고인으로서는 ‘법정구속이 될 여지도 없지는 않습니다’ 정도로 이해한다. 불구속 상태로 매번 법정에 출석할 때와 마찬가지로 선고일에도 말끔한 복장으로 나온다. 그런데 선고가 끝남과 동시에 바로 수갑이 채워져서 감옥으로 끌려간다니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성폭력 범죄로 법정구속 된 피고인은 글로벌 대기업의 임원이었다. 50대 초반 남성이고 아내와 다 자란 두 자녀가 있다. 명예, 자존, 돈, 업적, 가족, 동료 등 사회적 존재로서 잃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잃었다. 나는 피해자(고소인)의 대리인으로서 그가 감옥에 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보았다. 얼마나 후회스럽고 절망스러울지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했다. 그런데 이내 그만두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의 편견인데, 대한민국 ‘남자 어른’은 가부장 문화로 인해 잘 안 바뀐다. 다 자라버린 대한민국 남자 어른이 자신에게 부족한 성인지적(性認知的) 감수성을 고치거나, 인권의식을 죽기 전까지 바르게 갖출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범죄는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 패가망신(敗家亡身). 가정을 무너뜨리고, 자기 삶도 망한다는 뜻이다. 패가망신은 누구나 두려워할 테니 적어도 어떤 게 성범죄가 되는지, 그리고 성범죄를 저지르면 어떻게 되는지를 사회가 잘 교육한다면 범죄를 줄일 수는 있겠다고 생각한다. ‘문화’가 아니라 ‘범죄’라는 점을 제대로 못박아두자는 말이다. 뺨을 때리고서 “귀여워서 그러는 거야”라고 넘어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그냥 범죄다.

 

“밥 먹는 자리에서 젊은 여직원이 예쁘다고 칭찬한 거예요.” 판사 앞에서 이렇게 말한 또 다른 피고인은 벌금형을 받고 민사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후 회사의 이사장 자리에서 해임됐다. 회식 때 여자 사원의 피부가 좋다며 손등으로 턱을 두어 차례 만지고, 회식 후 집에 가려는 여자 사원의 손을 잡고 다 같이 맥주 한잔 더할 건데 왜 먼저 가느냐고 한 죄다. 

 

놀랍고 부끄럽게도 우리나라 남자들이 드물지 않게 하는 수위의 행동이다. 손을 강제로 잡고 끌거나 벽에 밀어붙이는 등의 행동은 드라마에서도 ‘멋진 남자주인공’의 모습으로 자주 나온다. 이 정도로 형사처벌 되고 회사에서 쫓겨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범죄다. 

 

다시 그 법정구속 된 대기업 임원을 떠올려 본다. 두 자녀가 뭐라고 생각할까. 또 지인들이 “그 양반 어디 갔대? 연락이 안 되네?” 이렇게 수군대다 소문이 퍼지면 그는 출옥 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좋은 남자 어른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르지는 말자고 딱 그만큼만 기대하고 싶다.

 

사족이지만 성폭력 피해자에게 말하고 싶다. 피해 직후 정말 경황이 없겠지만 전국 중소도시 이상 거점에 위치한 ‘해바라기센터’라는 국가시설(여성가족부 산하)을 찾아 전문상담원에게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성폭력 증거채취 응급키트’를 활용해 정액, 속옷, DNA 등 증거를 최대한 많이 모아둔다. 

 

그리고 가해자나 가해 상황이 회사와 관련된 경우 회사에도 즉시 알려야 한다. “왜 그때는 아무 말도 안했니? 동의하에 한 관계 아니니?”라고 회사가 몰아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회사는 피해자 입장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다. 회사는 자사의 이미지가 손상되고 사내 분위기가 어지러워진다고 여긴다. 

 

징계조차 하지 않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수위의 징계로 그칠 가능성이 높으므로 크게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회사 내부 해결에 매달리다가 적절한 사법조치의 시기와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무조건 즉시 수사기관을 찾아가 신고·고소를 해야 한다. 

 

그 전에는 반드시 변호사를 찾아가야 한다. 형량이 큰 범죄이므로 법리적으로 꼼꼼히 구성을 해서 대응을 해야 하고, 심신이 황폐해진 피해자는 법적절차 과정에서 대리인이 있어야 한다. 가해자 및 지인들로부터 보호받을 필요도 있으므로 꼭 변호사를 찾아야 하겠다. 

 

사과문이나 합의서를 받을 때는 범죄사실 인정, 사과, 구체적인 재발방지 대책 등이 들어가야 한다. 가해자가 찾아오는 위험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다만 가해자가 연락을 하거나 직접 오면 즉시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신변보호 요청을 해야 한다.​ 

류하경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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