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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비스포크 시대' 나만의 취향을 삽니다

나만의 잉크, 나만의 노트, 나만의 맞춤양복…많이 경험해봐야 취향도 생긴다

2018.01.22(Mon) 14:23:08

[비즈한국] 도쿄에 ‘잉크스탠드’라는 재미있는 가게가 있다. 자기만의 만년필 잉크 색깔을 찾아내는 곳이다. 여러 잉크의 색을 조합해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만년필은 예전만큼 많이 사용하진 않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기에만 익숙할 듯한 2030에게도 만년필은 여전히 소유하고픈 물건으로 꼽힌다.  

 

이곳에서는 먼저 나만의 잉크를 만들어가는 클래스를 들어야 하는데, 한 시간 이상 여러 색깔을 섞어보고 테스트해가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간다. 이렇게 찾은 자기만의 잉크 색깔은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다. 커플이 서로의 생일에 맞춰 색깔을 블렌딩해서 선물하기도 하고, 계절이 바뀌거나 뭔가 신변에 변화가 생겼을 때 특별한 잉크색깔을 만들어 자신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가게다 싶어서 서울에도 만들어지겠지 했었는데, 최근에 국내 대표적인 문구회사가 용인에 비슷한 콘셉트의 공간을 만들었다. 

 

도쿄의 ‘잉크스탠드’에서는 수많은 잉크를 조합해 나만의 잉크를 만들 수 있다. 사진=잉크스탠드 홈페이지


나만의 색깔이자 나만의 취향을 가진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다. 흥미롭게도 잉크스탠드 바로 옆 가게는 노트를 맞춤제작해주는 가게다. 표지, 내지 및 연결 스프링, 가죽끈 등 수백 가지 경우의 수에 따라서 자기만의 노트를 고르면 그걸 바로 만들어준다. 그냥 문구점에서 바로 사는 노트보다 꽤 비싸지만 손님이 많다. 이런 가게들이 다 최근에 생겼다. 나만의 것을 가지려는 욕구가 점점 커지는 ‘비스포크 시대’라서 그렇다.

 

‘비스포크(Bespoke)’는 원래 맞춤양복을 뜻했다. 기성품(Ready-made)의 대비되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레디메이드가 단순 기성품의 의미를 넘어 현대미술 오브제의 장르로 사용되듯, 비스포크도 영역이 넓어져 개인의 개별적 취향을 반영해 제작하는 물건이란 의미로 통용된다. 

 

여전히 비스포크 하면 맞춤양복부터 먼저 떠오르긴 한다. 재단하고, 가봉하고,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만드는 전통적인 비스포크 양복은 만드는 데 몇 달이 걸리고, 만드는 과정에서도 여러 번 찾아가서 가봉한 걸 입어보고, 다시 조정하고, 또 입어보는 등의 번거로움도 있다. 물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만을 위한 최적의 맞춤을 구현해낸다. 매장에 가서 입어보고 바로 사서 나올 수 있는 기성품에 비하면 불편하기 짝이 없고, 결정적으로 가격이 많이 비싸다. 몇 백만 원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값이면 해외 유명 명품브랜드의 기성품 양복을 사서 입을 수도 있다. 

 

해외 유명 브랜드를 입느냐, 나만의 맞춤을 입느냐는 분명 각자가 가진 취향과 태도의 차이다. 기성품도 워낙 잘 만드는 데다 표준 체형에 맞는 사람들로선 기성품도 맞춘 것처럼 잘 맞을 수도 있다. 반대로 보면 표준 체형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겐 때론 티 나게, 때론 미세하게 덜 맞는 셈이다. 나도 기성품을 애용해왔다. 맞춤에 손색없이 잘 맞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뱃살과 나잇살이 붙어가면서 기성품으론 아쉬움이 들게 되었다. 그렇다고 몸매 관리를 해서 다시 체형을 가꾸는 건 솔직히 쉽지 않다. 결국 비스포크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사실 미세한 차이일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차이가 세련됨을 좌우할 때가 있다. 아울러 보는 남들이 느끼는 게 아니라 입는 당사자가 느끼는 차이다. 하지만 이 또한 남 보여주기 위해 옷 입는 시절을 갔다. 나를 만족시키는 게 지금 시대의 진짜 멋쟁이들이기 때문이다.​

 

‘비스포크(Bespoke)’는 원래 맞춤양복을 뜻했는데, 이제는 개인의 취향을 반영해 제작하는 물건이란 의미로 통용된다. 사진=영화 ‘킹스맨’ 스틸


맞춤양복뿐 아니라 맞춤셔츠도 요즘은 흔하다. 가격도 기성품 셔츠 가격 수준인 곳도 많다. 같은 값이면 해외 유명 브랜드 기성품 양복 사느니 제대로 된 비스포크 양복을 사는 게 더 낫다. 그리고 아무리 맞춤이라도 너무 싼 가격대의 셔츠나 양복은 솔직히 별로다. 셔츠에선 재단도 중요하지만 소재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싼 맞춤셔츠는 가격만큼 소재가 아쉬운 경우가 많다. 

 

맞춤셔츠를 살 때는 손목에 이름 이니셜 새기는 것만큼은 하지 말자. 그만큼 촌스러워 보이는 것도 없다. 맞춤양복에서도 이름을 새기는 건 안쪽이다. 몸에 잘 맞는 핏으로 맞춤이란 걸 드러내면 되고, 이걸 굳이 남에게 티낼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족하면 된다. 패션은 절대 자랑도, 비싼 걸 티내는 것도 아니다. 그러는 순간부터 촌스러워 보이고 없어 보인다. 

 

중요한 건 나만의 취향을 가지느냐 아니냐다. 취향을 가지려면 많이 경험해봐야 한다. 이것저것 두루 겪어보면서 자기가 무엇을 진짜 좋아하고, 어떤 게 자기에게 가장 맞는지를 찾아내는 과정이 바로 취향의 심화다. 만년필 잉크건 노트건, 셔츠건 양복이건 자기만의 스타일이자 취향을 가진다는 건 적어도 내가 뭘 확실히 좋아하고, 내가 어떤 이미지를 구현해가는지에 대한 기준점을 스스로 잡고 있다는 것이 된다. 아무리 비싼 걸 가졌어도 이런 기준점이자 취향이 없다면 결코 온전한 내 것이 되진 않는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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