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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왱알앵알] 여배우의 밥상과 안마, 16년 전 기자가 직접 겪은 '이윤택 왕국'

당시 극단은 이윤택 1인 명성으로 유지…누구도 그의 심기 못 건드려

2018.02.19(Mon) 20:24:02

[비즈한국] 최근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성추행·성폭행 파문이 거세게 일고 있다. 극단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2002년 영화 ‘오구’ 연출부의 한 명이었던 기자가 당시 옆에서 직접 지켜본 이윤택 전 감독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봤다.

 

2003년 개봉한 영화 ‘오구’는 ‘연극 오구’를 영화화한 것이다.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독은 연극 ‘오구’의 감독이었던 이윤택 감독이 그대로 맡았다. 사실 이 감독이 쓴 시나리오가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공모에 당선돼 제작지원금이 나온 것이 영화화 논의의 시작이었으므로 이 감독이 연출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이윤택 감독의 영화 연출은 처음이었지만, 그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 ‘오세암(1990)’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 ‘서울, 에비타(1991)’ ‘행복어사전(드라마, 1991)’ ‘장군의 아들 2(1991)’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1991)’ 등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로도 유명하다. 성폭행 피해자를 그린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점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아이러니다.

 

2002년 밀양에서 영화 ‘오구’​를 연출하고 있는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사진=우종국 기자

2002년 밀양에서 영화 ‘오구’​를 연출하고 있는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사진=우종국 기자


기자는 영화 ‘오구’ 프로듀서와의 친분으로 2002년 봄 다섯 명의 연출부 중 한 명으로 합류했다. 이 감독의 편의에 따라 연출부는 서울 혜화동의 연희단거리패 숙소를 작업실로 활용했다. 당시 숙소는 1980년대 드라마에 나올 법한 마당 있는 2층 양옥집이었다. 

 

연희단거리패는 ‘연극 공동체’였다. 배우·스태프·감독이 한 집에서 먹고 자면서 연습과 공연까지 함께하는 가족 같았다. 철저하게 가부장적인. 처음 접한 영화 연출부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배우·스태프들이 스스로 밥을 해결한다는 것은, 따로 밥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식사 때가 되면 배우들이 밥을 차렸다. 바로 어제 무대에 섰던 분들이 오늘은 손님의 밥상을 차린다는 얘기다. 대부분은 안살림을 책임지는 나이 좀 있는 여배우가 했지만, 그가 없을 때는 우연히 숙소에 남아 있던 여배우 또는 여자 스태프가 밥을 차렸다. 

 

‘나가서 먹어도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영화 작업이라는 것이 직장생활처럼 점심시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극단 스케줄이 일정치 않고 숙소에 일정한 사람이 늘 있지 않은 점은 밥 하는 사람을 따로 고용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어느 날은 수십 명이 와글와글하다 지방 공연을 떠나는 날은 일주일 동안 사람 하나 없이 썰렁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질 무렵 연출부는 또 하나 생소한 장면을 보게 된다. 감독이 젊은 여배우를 불러 안마를 시키는 것이다. 숙소 2층 마루에서 연출부가 작업 중인데, 2층 방 하나에서 감독이 엎드려 있고 여배우가 팔, 등, 다리를 주무르는 것이다. 방문을 닫지 않고 연 상태였으므로 그 장면이 훤히 보였다. 

 

방문이 열린 채로 ‘안마’가 이뤄지다 보니 다정한 톤으로 나누는 대화 소리가 다 들렸다. 안마를 하는 사람은 고정돼 있지 않고 수시로 바뀌었다. 연출부에게 밥 해주는 사람이 수시로 바뀌듯, 그때그때 숙소에 남은 사람 중 한 명이 맡았다. 대부분은 20대 초반의 젊은 여배우가 맡았다. 고참 여배우가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 장면을 계속 보는 외부인들은 민망할 수밖에 없었다. 19일 기자회견에서 그가 안마에 대해 부인하지 않은 이유는 많은 사람이 이를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이뤄진 행위에 대해서는 강제성을 부인했다.

 

영화가 엎어질 뻔한 무수한 고비를 넘기고 본격적인 영화 촬영이 시작되자, 연희단거리패의 본부라 할 수 있는 ‘밀양연극촌’으로 영화 연출부를 비롯한 극단 대부분의 사람들이 옮겨왔다. 영화 특성상 보조연기자들이 많이 필요하다 보니 연희단거리패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혜화동에서 보던 얼굴들을 그대로 밀양에서 만났다. 배우들이 밥을 차려주는 일상도 그대로였지만, 폐교를 개조한 연극촌은 대부분의 공간이 개방된 형태라 연출부는 되도록 밀양 시내에 당시 하나밖에 없던 패스트푸드점을 회의 장소로 활용했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30 스튜디오에서 성추행 논란 공개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또 하나 기억나는 일은 이윤택 감독이 연기지도 시에 하는 용어들이다. 그는 연기의 호흡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배우를 각성시키는 한 방법으로 “눈빛이 흐리멍텅하고, 대사가 우물우물하다, 이럴 땐 효과 직방인 방법이 있지. 뒤에서 여배우의 XX를 잡아당기면 깜짝 놀라 머리에 기가 쭉 통한다”는 식의 얘기를 줄곧 했다. 

 

왜 이제야 문제가 불거지는지도 당시의 상황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연희단거리패는 이윤택 감독 1인의 유명세에 의존하는 극단이었다. 이 감독은 그만의 독특한 세계관, 작품관으로 인정받았다. 배우들을 지도할 때는 그런 권위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므로 그의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연희단거리패는 이윤택 감독의 ‘왕국’​이었다.

 

게다가 당시 유명 연극상을 받은 고참 배우도 몇 명 있었지만, 대개의 젊은 배우들은 갓 연극에 입문해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집을 떠나 극단으로 온 신참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중 일부는 남고 일부는 떠난다. 그 자리를 새로운 신참들이 채운다. 

 

이윤택 감독이 없다면 극단은 존재할 수 없었다. 감독이 극단을 키웠고, 시나리오를 썼고, 공연 연출을 했다. 관객은 감독의 이름을 보고 연극을 보러 왔다. 감독의 운명이 곧 연희단거리패와 배우·스태프의 운명이다 보니, 감독의 명성에 누가 되는 행위는 금기가 된다. 극단이 사라지면 당장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촬영 돌입 전 영화가 엎어질 뻔한 위기가 네 번 있었다. 대개는 투자 문제다. 그때마다 영화판의 신참인 기자는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사회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이 넓은 세상에서 내가 설 곳은 과연 없는 것인가’라는 취준생으로서의 자괴감이 온몸을 쇠사슬처럼 휘감곤 했다. 당장 영화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위해 이 영화 한 편의 제작을 끝까지 경험해 본다는 것, 이력서에 쓸 한 줄은 절실했다. 극단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당시 ‘안마’를 하던 여배우와 감독과의 다정스런 대화가 진심이었을 리 없다. 감독의 눈밖에 나면 출연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투’에 힘입어 이제서야 세상에 봇물처럼 터져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우종국 기자

xyz@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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