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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일감 빼앗긴 조선소에도 봄은 오는가 - 거제편

조선소 앞 김밥집도 연 7억 원 벌던 동네…"수주량 늘었지만 일 할 맛 안나"

2018.03.19(Mon) 18:29:27

[비즈한국]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 산업이자 세계 1위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핵심 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와 글로벌 경기 악화의 영향으로 수주량이 급감하며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아픔을 맛봐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지역 경제는 순식간에 황폐화 됐습니다. ‘비즈한국’은 특별기획 ‘일감 빼앗긴 조선소에도 봄은 오는가’​를 통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선사들이 몰려있는 도시를 차례로 돌며, 경영난과 수주 불황으로 침체된 지역 경제와 현장에서 생업을 잇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할 예정입니다.​

 

1부 - 울산편

2부 - 거제편

3부 - 목포편​  

 

“이 시간에 거리에 비틀거리는 사람이 없잖아요.” 택시 기사가 말했다. 곧 그는 “예전엔 이 시간에도 술 먹는 사람으로 바글바글했다”고 보탰다. 

 

지난 14일 밤 10시 30분.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정문에서 300m 떨어진 장평동 거리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 시간 30분가량 상권을 돌아다녔지만 조선소 작업복을 입은 사람은 단 세 명뿐이었다.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자 노래방 네온간판은 일찌감치 꺼졌다. 

 

거제시 장평동 일대 상가 골목. 밤 10시 30분경 영업을 마친 가게와 텅 빈 거리. 사진=박현광 기자

 

제주도 4분의 1 크기도 안 되는 면적 402㎢, 인구 26만 거제시. 소도시이지만 국내 조선업계 ‘빅3’ 중 2곳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있다. 2015년 기준 거제에서 일하던 사람은 13만 3000명이고 그중 9만 2000명이 조선업 종사자였다. 말 그대로 거제는 “조선업이 먹여 살리는 곳”인 셈이다. 

 

2016년 수주량은 삼성중공업 7척(5억 달러), 대우조선해양 11척(15억 달러). 아주동에 사는 한 주민은 “예전엔 양 지역 주민들이 서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며 “지금은 누가 수주하든 응원할 정도로 경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 10평짜리 김밥집도 연매출 7억 벌던 삼성중공업 앞 장평동

 

장평에서 4년째 노래방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 씨(58)는 “업주들 사이에 ‘오늘 한 방 받았나’가 인사다”며 “아까 혼자 노래방을 지키고 있는 게 무서워서 아는 동생한테 돈 안 받을 테니까 남편이랑 노래 부르고 가라고 할 정도로 사람이 없다”고 토로했다. 등갈비집 사장 김 아무개 씨(64)는 “요즘 가게들은 밤 10시 30분이면 문을 닫는다”며 “우린 직원이 7명이었다가 2명으로 줄였는데도 일손이 남는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점심시간이면 장평 일대는 만석이었다. 10평(33㎡) 남짓 김밥집도 예약하지 않으면 줄을 서야 했다. 8년째 김밥집을 운영 중인 장 아무개 씨(58)는 “예전엔 줄을 섰지만 지금은 점심시간인데 한 테이블도 없다”며 “잘나갈 땐 연 7억 원씩 벌었다. 지금은 내가 가져가는 건 없고 직원 월급 줄 정도”라고 귀띔했다. 

 

‘삼성중공업, 18만㎡급 LNG선 1척 수주’를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거제 시내에 걸려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2015년 거제 외국인 거주자는 1만 5051명에 달했다. 주거지 수요가 늘면서 한때 외국인 상대 임대업 붐이 일었다. 지난해 4월 공사가 끝난 346세대 A 아파트는 지역 주민들이 ‘외국인 임대업’으로 눈독을 들이던 곳이었다. 조선업 불황으로 외국인이 2017년 9089명으로 줄면서 A 아파트는 현재 300세대만 들어찬 상태다. 

 

3년간 부동산 중개업을 한 이 아무개 씨(49)는 “이 아파트는 외국인 분양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몰렸다가 현재는 많이 비어있다”며 “34평에 전세금 2000만 원에 월세 120만 원 받으려던 곳인데 지금은 전세금 1000만 원, 월세 70만 원에 내놔도 안 나간다”고 전했다. 

 

거제지역 조선소 종사자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을 통틀어 2015년 9만 2164명에서 2017년 5만 4136명으로 줄었다. 2년 새 3만 8028명이 감소했다. 그 중 3만 1512명이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삼성중공업 협력업체에서 15년간 일하다 지난해 12월 일자리를 잃은 송 아무개 씨(53)는 “2007년쯤 일이 많을 때는 하청 직원이라도 연 6000만 원은 넘게 벌었다”며 “지난해는 일을 해도 200시간 겨우 채워서 한 달에 160만 원을 손에 쥐었다. 지금 실업급여로 150만 원 받는데 이게 더 나은 거 같다”고 답했다. 

 

# 논밭에서 ‘아주신도시’로, 대우조선해양 앞 아주동

 

삼성중공업 정문에서 택시비 1만 원 거리. 대우조선해양 남문 앞 아주동은 ‘아주신도시’라 불릴 정도로 급격히 성장했다. 돼지국밥집 사장 이 아무개 씨는 “여긴 논밭이었다”며 “대우만 보고 장사한다”고 말했다. 

 

재작년 분식회계 부실경영이 드러나 대우조선해양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땐 “동네 분위기가 살벌”했단다. 산업은행이 공적자금 7조 원을 투입하며 산소 호흡기를 대면서 한숨을 돌렸다. 근방 경기가 좋아질 조짐이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반응이다. 

 

대우조선해양 남문 앞. 퇴근 시간이 되자 사원들이 문 밖을 나서고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3년 6개월째 짬뽕집을 운영하고 있는 진 아무개 씨(45)는 “작년 여름이 가장 힘들었다. 그땐 공장에 일이 없으니까 주말 손님이 전혀 없었다”며 “4개월 전부터는 주말 손님이 찾기 시작했다. 조금씩 (경기가) 올라오는 중인 것 같다”고 전했다. 

 

빈 원룸촌은 아직 들어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거제도 원룸 공실률은 27%다. 아주동 공인중개사 손 아무개 씨는 “8세대 원룸이라고 치면 3세대는 비어있다고 봐야한다”며 “예전엔 전세금 300만 원에 월세 50만 원도 했는데 지금은 전기세, 수도세, 관리비 포함 전세금 100만 원에 월세 20만 원 수준이다”고 답했다. 

 

수주량이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회사 내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다. 20세에 일을 시작해 33년간 대우해양조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 아무개 씨(52)는 “예전엔 작업장이 아주 깔끔했다. 작업 시작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청소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 상여금, 성과급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하니까 충성도가 예전만 같지 않다”며 “아무리 호황이 와도 다시 예전만 같지 못할 것 같다. 청춘을 다 바친 곳이 휘청하는 걸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26)는 “올해 결혼했는데 월 140만~160만 원 받아간다. 이걸론 생활이 안 된다”며 “대우가 이제 수주를 받고 있으니 경기가 좀 나아질 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올해 수주량은 삼성중공업 12척(12억 달러), 대우조선해양 12척(15.5억 달러)로 약진했다. 양 사는 올해 수주 목표를 각각 82억 달러와 57억 달러로 잡으며 경영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거제시 조선해양플랜트과 관계자는 “수주량이 현재 삼성, 대우 모두 늘고 있지만 그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어떻게 잘 버티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거제=박현광 기자

mua1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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