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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4주년 특집: 갑의 기원3] 갑질 없는 세상

과도한 경쟁사회가 인간 존엄성 훼손…노동에 대한 인식 전환되는 계기 삼아야

2018.05.17(Thu) 17:19:05

갑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Origin of ‘Gap’​

 

하나 혹은 적은 수의 기업에 처음으로 부가 집중되고

이 나라가 자본의 법칙에 따라 발전하는 동안

너무나도 광범위한 부정부패로부터 끝없는 갑들이

가장 추악하고, 가장 놀랍도록

존재해 왔고

존재하고 있으며

진화해 왔다.

이러한 갑질에는 우리 시대의 아픔이 있다.​ 

- 다윈 ‘종의 기원’​ 초판 마지막장 패러디

 

‘비즈한국’​은 창간 4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갑질’​을 입체적으로 다뤄보고자 합니다.​ △갑질에 대한 정의와 역사적 배경([창간 4주년 특집: 갑의 기원1] '갑질 DNA'의 생성과 진화​)부터 △​우리 정치, 경제, 사회에 미친  파장([창간 4주년 특집: 갑의 기원2] 갑질, 그날 이후) 그리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갑질로부터 고통받지 않을 수 있는 대안, 총 3부작으로 연재됩니다.

 

[비즈한국] ‘갑질’은 단순히 ‘을’에게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근원적 자존감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찾아볼 수 있다. 갑질에 저항하지 못하고 결국 극단적인 상황까지 내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갑질이 우리 사회 전반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 역시 광범위하고 파상적이다. 갑질을 당한 이는 다른 누군가에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또 다른 갑질을 할 가능성에 노출된다.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갑질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퍼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진다.

 

갑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만연한 갑질이 발생시키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없다. 다만 부정부패가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연구 결과에 비추어 보면 갑질 역시 우리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임에는 분명하다.

 

갑질은 이제 단순히 누군가의 횡포를 넘어 우리 사회가 가진 병폐를 아우르는 단어로 확대되고 있다. 그래픽=이세윤 PD

 

최근 대한항공 사태 등이 공론화되면서 각종 갑질 행위의 부당함에 대한 자각이 이뤄지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대목이다. 하지만 이러한 갑질 공론화 과정은 대부분 폭로에 의해서 이뤄진다. 물론 이러한 폭로 역시 그간 갑질의 전횡에 비추어 볼 때 결코 쉽지 않은 행위다. 앞서 내부 폭로자들은 결국 회사를 그만두거나 그에 상응하는 고통을 받아야 했다. 우리 사회가 갑질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모든 사회 구성원이 수평적 관계에서 최소한의 인격을 상호 존중하는 길은 없을까.

 

# 왜 여기선 그래도 될까?

 

“프랑스는 노조에 우호적인 사회라고 들었는데 우리 회사는 프랑스 회사에 점장도 프랑스인인데 왜 노조를 거부하는 걸까요?”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

 

웹툰 ‘송곳’에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명대사다. 갑질이 일어나는 원인도 이처럼 허무할 정도로 단순하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그렇게 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을이 숨죽이고 있는 한 갑질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지금까지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갑 혹은 갑의 대리인들의 반응도 한결같다. 일단 대중의 분노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지만,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해명이나 설명이 부족하다. 구구절절 설명해봐야 변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낮추어 말하지만, 그뿐이다. 어떤 행동이든 동기는 있기 마련이다. 설령 범죄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를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아서다.

 

즉, 우리 사회는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갑질을 어느 정도는 누구나 감수해야 할,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했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손님은 왕이자 갑이다. 갑은 자신의 요구를 제대로 관철하지 못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했고, 을은 갑이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올바른 고객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지나친 경쟁사회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자영업 비율이 높고, 취업난은 심각하다.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자리나 고정적인 수익이 필요하다.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을은 자연스럽게, 때로는 당연하게 갑질을 받아들인다. 그래야 자존감이 덜 파괴된다. 우리 사회에 갑질을 추방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이러한 과도한 경쟁 사회에서 점차 벗어나는 것이다.

 

을의 분노는 이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 적극적인 행동을 이끌어내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 갑질의 고리를 끊어라

 

최근 불거진 ‘아파트 택배 대란’​에서 알 수 있듯이 갑질은 때로 불특정 다수에 의해 일어난다. 해당 아파트 단지가 재벌이나 재벌 가족들이 거주하는 곳은 결코 아니다. 그들도 직장에서는 누군가의 을일 가능성이 높다. 이렇듯 갑질은 또 다른 갑질을 낳는다. 악순환이다. 대부분의 갑들이 갑질을 정당한 권리로 착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만큼 누군가에게 갑질을 당하면서 체득화된 정당성이다. 이러한 고리를 끊지 못하면 갑질은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갑질의 고리를 과연 어디에서 끊어야 할까.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그 해답을 재벌이 아닌 오히려 노동자에게서 찾는다.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에 대한 권리를 자각해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갑질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모든 노동자가 노동력을 제공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 노동의 절대원칙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4월 초 청와대가 발의한 개헌안에서 근로자를 노동자로 바꾸고, 노동의 권리를 명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갑질에 따른 법적 책임을 강하게 부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직까지 대부분 갑질 사건은 공론화에 따른 사회적 처벌만 있을 뿐, 이렇다 할 법적 처벌은 받지 않는다. 단지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수사기관이 더 엄격한 법리 적용을 통해 수사를 진행하는 정도다. 물컵을 던진 방향을 따져야 하는 현실 속에서, 결국 재판 결과는 무죄 혹은 집행유예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한계에 도달한다.

 

지금까지 갑질에 대한 처벌은 결국 포토라인에 서는 사회적 처벌에 불과했다.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포토라인에 선 박찬주 전 육군대장은 결국 지난 1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평·공·정’ 사회를 위하여

 

국정농단에 이은 촛불 혁명 이후로 우리 사회의 관심은 또 다른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을 향하고 있다. 첫 타깃은 일부 재벌. 화를 참지 못하고 던진 물컵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요즘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문재인 대통령의 2012년 대선 슬로건처럼 ‘평등·공정·정의’가 됐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통용된 진영 논리나 자본의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누구나 저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셜 네트워크 세상에서 이러한 가치는 더욱 증폭되어, 우리 사회를 송두리째 변화시키고 있다.

 

가령 돈과 권력이 많은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을 일컫는 ‘금수저’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반감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용어로 활용된다. 

 

폭로는 지금도 계속 이어진다. 누군가의 횡포와 그에 따른 억울함이 개인의 사정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억울하게 몰리거나, 혹은 이를 일부러 악용하는 집단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갑질’이라는 단어가 가진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단순히 일부 갑질 세력을 욕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가 한층 성숙해지는 밑거름으로 만드는 노력이 중요하다.

봉성창 기자 b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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