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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의 천지인] 안전망 없는 사회에선 기술 개발도 없다

미·중처럼 거대시장 없는 한국이 기술경쟁 앞서려면 정부 투자 필수

2018.07.24(Tue) 10:13:25

[비즈한국] ‘장자’에 소설처럼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는 전국시대, 온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해 서로 경합하던 때였다. 

 

중규모 국가인 송나라에 대대로 빨래를 해서 먹고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겨울에도 빨래를 해야 했기에 연구를 하여 ‘손을 안 트게 하는 약(不龜手之藥)’을 개발했다. 어떤 객이 그 약을 보고는 가서 ‘그 약을 백 금에 사겠네’라고 하니 빨래하는 사람이 깜짝 놀라 대꾸했다.

 

“내가 세세로 빨래를 해도 불과 몇 금을 버는데 그쳤는데, 하루 아침에 백 금을 번다고요? 팔겠습니다.” 

 

그 객은 시야가 넓었다. 그는 명약을 싸들고 오나라 왕을 찾아가 유세를 하여 장수 자리를 얻었다. 오나라 대국이었고 한참 월나라와 처절하게 싸우는 중이었는데, 과연 이 약을 바르니 오나라 병사들이 겨울에 물에서 싸우면서도 손이 트지 않았다. 이리하여 대승을 거뒀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고대부터 존재한 기술과 시장규모의 상관관계를 읽을 수 있다. 중국에서는 2500년 전에 이미 빨래만 해서 생계를 잇는 사람이 있었다(큰 시장). 그리고 그들은 필요에 의해 기술을 개발했다(시장주도 연구개발). 또 그 기술을 전쟁에 응용할 수 있었다(광대한 응용분야). 

 

올 2월 27일 스페인에서 열린 월드모바일콩그레스(WMC)에서 중국 화웨이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드론 택시 ‘이항’. 사진=WMC


이렇듯 대규모 경제에서는 필요에 의해서 생긴 기술을 다른 분야로 응용할 수 있다. 오늘날 미국이 신기술 시장을 장악한 것은 원래 큰 자체 시장에다 정부가 엄청나게 투자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미국은 거의 언제나 전체 연구개발비의 절반 이상을 국가가 담당했다. 지금 중국은 미국보다 더 큰 자국 시장을 가지고 있는 데다, 세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정부가 민간 지원할 태세를 갖추었으니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 

 

기술 시장에서 밀리면 구조적인 실업을 겪어야 할 것이다. 거대 기업이 경쟁력을 잃으면 노동자가 실업의 고통을 모조리 견뎌야 한다. 대표적으로 쌍용자동차 사태도 구조적인 실업의 한 양태다.

 

외연적으로 시장을 확대하는 길은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것이고, 그러자면 세계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을 감지하고 개발할 인력이 필요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연구개발을 위한 돈이 있어야 한다. 거대 시장을 가진 미국이 그래왔고 오늘날 중국이 그렇게 하고 있음에도, 연구개발을 위한 ‘보이는 손’, 즉 정부의 역할을 경시하는 경제학자들이 여전히 많다. 한국은 1997년 민간기업에 돈을 댄 외국 자금이 대부업자의 돈이나 마찬가지임을 여실히 경험했다. 

 

‘장자’의 우화에 나오는 빨래하는 사람은 필요에 따라 핵심기술을 얻었다. 그러나 그 기술은 더 큰 나라인 오나라에서 빛을 봤고, 그 기술을 알아본 이는 송나라 군주가 아니라 오나라 군주임을 주목해야 한다. 안타깝지만 큰 기술은 큰 시장을 찾아 국외로 나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현명한 지도자는 기술에 약간의 국적 꼬리표를 붙여둘 필요가 있다. 그 수단은 역시 국가 투자다. 

 

오늘날은 필요만으로 핵심 기술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투자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중단기에 최대한의 배상을 챙기려는 주주자본주의는 장기 대규모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투자금이 황금알을 낳을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숱한 비효율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기다릴 수 있는 최후의 자금 출처는 정부일 수밖에 없다. 

 

오나라 왕이 기술의 효용을 알아서 강대국을 건설할 수 있었듯이, 안목을 가진 지도자를 뽑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만 한다면 정부라고 항상 비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 오나라가 싸움에서 이긴 것은 장병들의 복지를 개선했기 때문이다(나중에 다루겠지만 훗날 월나라는 전면적인 복지 확대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한국의 복지지출은 국내총생산의 10%, OECD 최하위 수준이다. 안전망이 없으니 한 번 실패하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이 상황에서 누가 일생을 바쳐 ‘손 안 트는 약’을 만드는 모험을 할까?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어 젊은이들이 사회에 진입도 못 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재정지출 몇 %를 아끼자 하고 큰 기업들은 주주들 눈치나 보고 있으니 미래 세대가 사회에 얼마나 애착을 가질 수 있을까? 

 

2013년 4월 4일 새벽,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분향소가 강제 철거됐다. 쌍용자동차는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6년 뒤 단계적 복직을 합의했지만, 120명은 여전히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상태다. 그 사이 30명의 해직자들이 목숨을 끊었다. 사진=이종현 기자


경제는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성공하는 사회는 언제나 처음 출발하는 이들에게 공을 들인다. 돈을 번 사람은 기꺼이 세금을 내야 하고, 정부는 유권자의 눈치를 보느라 세금 인상 없이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거짓말을 계속하거나 연구개발을 민간의 영역에 맡기고 방관자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거대한 국내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정부마저 그들이 쓰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을 쓰는데 한국인이 기술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최소한 현재의 제조업 중심 산업구조와 막대한 무역규모를 고려하면, 기술경쟁에서 뒤처지면 당장 구조적인 실업 사태를 맞을 것이다.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거리를 메울 때 몇 % 논쟁을 벌여봐야 이미 늦을 것이다.

공원국 작가·‘춘추전국이야기’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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