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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 '영원한 엠마뉴엘' 실비아 크리스텔

'차타레 부인의 사랑' '개인교수' 등 짧고 굵은 전성기, 뭇 남성들의 우상

2018.08.21(Tue) 18:20:44

[비즈한국] “나는 입 없는 배우였고, 몸뚱이였다. 나는 꿈속의 인물이었지만 그 꿈은 깨어지기 쉬운 것이었다.”(실비아 크리스텔 자서전 중)

 

1970년대와 19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 특히 남성들 중 상당수는 영화 ‘엠마뉴엘(Emmanuelle, 1974)’​과 히로인 실비아 크리스텔이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개중에는 서울 세운상가 등에 떠돌던 불법 ‘엠마뉴엘’ 비디오테이프를 입수했거나 해외에서 공수돼 장롱 속에 처박힌 테이프를 부모님 몰래 꺼내 본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음침한 만화가게나 다방 같은 곳에서 영화를 본 친구들은 “너 엠마뉴엘 부인 못 봤지? 대화가 안 되겠군”이라며 못 본 친구들에게 잘난 체하기 일쑤였다. 

 

‘차타레 부인의 사랑’에서 코니 채털리 역으로 분한 실비아 크리스텔.


‘엠마뉴엘’이나 실비아 크리스텔의 이름을 모른다 해도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나’로 시작하는 감미로운 멜로디는 귀에 익었을 것이다. ‘엠마뉴엘’의 주제음악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무려 20년 넘게 MBC FM(현 MBC FM4U)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두 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는 시그널로 이 음악을 사용해 멜로디를 수많은 청취자들에게 각인시켰다.

 

피비 케이츠, 브룩 실즈, 소피 마르소, 왕조현 등 이른바 ‘책받침 여신’이 소녀 같은 청순함으로 어필했다면 실비아 크리스텔은 물씬 넘치는 성숙한 여성미를 무기로 했다. 

 

실비아 크리스텔은 세계 최장신 국가 중 하나인 네덜란드 출신답게 176cm라는 큰 키에 날씬한 체형, 뚜렷하면서도 고운 이목구비를 가졌다. 특히 뇌쇄적인 눈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백치미인’의 대명사로 꼽혔지만 지능지수(IQ)가 무려 164로 전해질 만큼 두뇌가 명석했다고 한다. 

 

그녀는 17세부터 모델 활동을 시작하며 엔터테인먼트 세계에 발을 디뎠다. 1973년 미스 TV 유럽으로 선발되면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으며 인생작인 ‘엠마뉴엘’의 타이틀 롤을 맡았다. ‘엠마뉴엘’은 프랑스 외교관의 젊은 부인 엠마뉴엘이 발령지인 태국에서 겪는 자유분방한 일탈을 다루었다. 태국 주재 프랑스 외교관 부인인 마라얏 끄라새신(필명 엠마뉴엘)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했다. 

 

 

 

‘엠마뉴엘’​은 전 세계에서 무려 3억 5000만 명이 관람한 것으로 추정된다. 역대 프랑스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로 꼽힌다. 개봉 당시 엄청난 노출 수위로 인해 많은 나라에서 상당 부분 삭제돼 상영되거나 개봉조차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이적인 기록이다. 

 

국내 영화계는 ‘엠마뉴엘’을 여러 차례 수입하려고 시도했으나 군사정권의 검열 잣대에 번번이 불가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 아닌가. ‘엠마뉴엘’은 정상적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불법 비디오를 통해 음성적으로 유통됐다가 1994년 상당 부분을 삭제하고 신체 주요 부분을 뿌옇게 연막처리하여 개봉됐다. 

 

‘엠마뉴엘’의 성공에 힘입어 실비아 크리스텔은 엠마뉴엘2(1975), 굿바이 엠마뉴엘(1977), 엠마뉴엘4(1984) 등 후속편에도 출연했다. 하지만 속편들은 1편의 인기에 편승해 제작됐다는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실비아 크리스텔이 출연한 영화 중 국내에서 처음 개봉된 것은 ‘차타레 부인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 1981)’​이다. 이 영화는 영국 작가 D.H 로렌스가 쓴 파격적인 에로티시즘 문학의 정수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실비아 크리스텔은 영화에서 불구 남편을 둔 코니 채털리 역을 맡아 신체 건장한 산지기 맬러즈와 정신과 육체가 하나되는 강렬한 사랑을 소화해낸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에 맞물려 개봉된 이 영화는 국내 영화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른바 ‘~부인’을 제목으로 하는 국내 에로영화들이 쏟아지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1983년 작 ‘애마부인’과 ‘장미부인’, ‘웅담부인’(1987), 그리고 ‘젖소부인’(1995) 등이 그 예다. 

 

당시 10대 남학생들에게 실비아 크리스텔의 이름을 각인시킨 영화는 1983년 국내에 개봉한 ‘개인교수(Private Lessons, 1981)’​다. 이 영화가 재개봉관들에서 상영되자 ‘청소년 관람불가’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10대 남학생들이 대거 극장을 찾았다. 소풍이나 사생대회를 마치면 뜻하지 않은 한 학년 단체관람이 이뤄질 정도였다. 

 

‘개인교수’는 내용 자체가 사춘기 남성을 충족시키는 황홀한 판타지다. 부자 아버지를 둔 10대 소년 필리는 젊고 아름다운 가정부 맬로우(실비아 크리스텔 분)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맬로우는 어느 날부터 자신을 연모하는 필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활용해 소년에서 어른으로 만들어주고 홀연히 떠난다. 

  

‘에어포트 79’에 출연한 실비아 크리스텔과 알랭 들롱.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적대국인 프랑스와 독일의 이중스파이로 활동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미녀 무용수가 있었다. 실비아 크리스텔은 할리우드의 전설적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 이후 54년 만에 이 비운의 여성을 다룬 영화 ‘마타 하리(Mata Hari, 1985)’​ 타이틀 롤을 맡아 인기를 이어갔다.

 

실비아 크리스텔처럼 네덜란드 출신인 마타 하리는 이른 결혼으로 7년간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서 살면서 아시아의 관능적인 무용을 터득했다. 이후 유럽에 돌아와 프랑스 파리의 전설적인 카바레 ‘물랭 루주’ 등을 무대로 선정적인 인도 고유 의상과 춤으로 사교계를 평정했다. 마타 하리의 미모와 재능을 눈여겨 본 두 나라의 군부는 그녀에게 스파이 활동을 맡기면서 그녀의 운명을 파멸로 몰아간다. ​ 

 

실비아 크리스텔이 출연한 영화 중 ‘에어포트 79(The Concorde: Airport ’​79, 1979)’​도 기억할 만하다. 이 영화는 젊은 시절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 흔치 않은 비성인영화다. 그녀는 영화에서 여객기 조종사 역을 맡은 미남 배우의 대명사 알랭 들롱의 상대역인 승무원으로 출연해 절정의 미모를 보여준다. 

 

실비아 크리스텔의 전성기는 짧았다. 그녀가 내뿜던 미모와 분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퇴색해갔고, 연기 변신을 꾀하지 않은 성인영화 중심의 필모그래피는 그녀의 경력을 갉아먹었다. 비정상적인 일탈을 줄거리로 하는 영화 출연으로 그녀의 정신세계는 혼탁해졌고 결국 술, 담배에 이어 마약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다. 

 

마흔에 접어든 실비아 크리스텔은 한국 에로영화인 ‘성애의 침묵’(1992)에 출연하는 등 예전의 명성을 찾아볼 수 없는 배우로 전락했다. “나에게 남은 건 금시계와 아들 하나뿐이다.” 당시 그녀가 자신의 처지를 토로한 말이라고 한다. 

 

많은 팬들의 뇌리에서 사라졌지만 실비아 크리스텔은 생계를 위해 2010년까지 영화와 TV 시리즈에 출연했다. 2012년 10월 갑작스러운 사망과 불우한 일생이 소개되면서 그녀의 전성기 시절 청춘을 보냈던 세대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2001년 폐까지 절개했던 후두암이 전이되면서 말년의 그녀는 폐암, 식도암까지 발병하는 등 병마에 시달린 끝에 모국인 네덜란드의 병원에서 사망했다.

 

실비아 크리스텔은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명배우는 아니었다. 인생 후반부도 굴곡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 10년 정도에 불과했던 짧고 굵은 전성기는 그 어느 여배우보다 화려하게 빛났다. 그녀만큼 뭇 남성들을 판타지의 세계로 이끈 여배우는 흔치 않다.

장익창 기자 sanbad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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