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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법] 로마 공화정의 몰락과 강남 집값

로마 귀족 대농장 확대로 시민들 비참해져…집값 급등에 대한 정치권 시각 바뀌어야

2018.10.01(Mon) 10:24:19

[비즈한국] 기원전 2세기, 로마는 카르타고와 3차에 걸친 포에니전쟁에서 승리해 지중해 지배를 확립했다. 특히 명장 한니발과의 격전에서 승리한 2차 포에니전쟁 이후에는 마케도니아를 정복, 15만 명을 노예로 만드는 등 제국주의정책으로 전환했다. 로마 귀족들은 정복에서 얻은 땅들을 독차지하고 오랜 기간 전쟁으로 피폐한 소농민의 토지를 겸병(전쟁에 참여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어 관리하지 못한 소농들의 토지를 헐값에 매입)해 대토지 소유자가 되었다. 

 

당시 귀족들의 대농장을 라티푼디움(Latifundium)이라 일컫는다. 라티푼디움과 정복을 통한 노예제도의 발달은 로마시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자유 소농의 몰락을 초래했다. 즉 나라는 부강해졌지만 시민들은 비참해진 것이다. 그라쿠스(Gracchus) 형제가 호민관이 되어 토지개혁을 추진했지만 대토지소유자인 벌족(閥族)의 반발로 피살당하는 등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 인해 로마 공화정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강남 집값 발언이 논란이다. 지난 8월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회동에 앞서 인사를 나누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사진=청와대 제공


요즘 들어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단연 ‘집값’이다. 더 자세히 들어가면 수도권 아파트 값이고, 특히 강남권 아파트 값의 비정상적인 급등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다. 우리 부모 세대를 떠올려보자. 보릿고개 시절 땀흘려가며 한 푼 두 푼 모아 자식들 교육시키고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이를 통해 계층이동이라는 선순환도 뒤따랐다. 

 

그러나 지금은 버거운 집값에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 세대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강남 아파트 값의 급등으로 인한 시세차익은 평범한 시민들의 근로의욕마저 상실케 한다. 정부는 지난해 8·2 부동산대책을 내놓았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고 여론도 좋지 않자, 지난 9월 13일 세금규제와 대출규제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부동산대책을 내놓고 시장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다. 이 와중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모든 국민이 강남에 가서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거기 삶의 터전이 있지도 않다. 저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고가 주택은 정부가 다 제어할 수 없고, 제어할 이유도 없다. 예를 들어 맨해튼이나 베벌리힐스 등의 주택 가격을 정부가 왜 신경 써야 하나.” 

 

장 실장의 발언은 진심일 것이다. 일정 부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장 실장의 발언이 진정성이 있으려면 그는 자신의 강남 아파트를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어야 한다. 장 실장의 현 위치는 우리나라 경제정책 방향키를 쥐고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점을 잠시 망각한 것 같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장 실장의 아파트가 1년 만에 4억 5000만 원 올랐다고 에둘러 비판한 것은 뼈아프게 들린다.

 

우리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이는 헌법 제1조 제1항에 적시돼 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국민이 국가의 중요 정책을 직접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표를 선출하고 선출된 대표들이 결정하는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 헌법도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권력을 행사하고 국민의 의사에 기속됨이 없이 토론과 합의를 통해 국익을 앞세운 정책을 결정하도록 돼 있다.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린 벌족들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에 충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로마시대가 아닌 민주주의시대다. 따라서 선출된 대표기관들은 자신과 이해관계 있는 현안에 대해 스스로의 이익을 잘라내야 한다. 이 점에서 불과 1년 만에 수억 원이 오른 강남에 살고 있으면서 강남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장 실장의 발언은 공허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본인이나 배우자 명의로 강남3구(서초·강남·송파)에 주택을 보유하거나 전세를 얻어둔 국회의원이 전체 국회의원의 28.6%인 총 83명에 달한다. 전체 대한민국을 대표해야 할 국회의원의 4분의 1 이상이 특정지역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다.

 

아파트 한 채에 20억 원이 넘는다는 것은 우리가 수인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다. 누군가가 열심히 일해서 능력을 인정받아 억대 연봉을 받거나 수입을 올리는 것은 박수 받을 일이다. 그러나 급격한 집값 상승은 다소 다르다. 특히 강남권 아파트 값 폭등은 교육, 교통, 환경 등 각종 편의시설로 인한 간접적인 혜택도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라쿠스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벌족의 편을 들 것인가? 이제 정치권이 대답할 때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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