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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음악일기] '안 공격적인' 재즈힙합의 제왕, 커먼

힙합의 라임 미학과 철학 설파…음악적 입지 줄자 배우 활동 비중 늘려

2018.10.08(Mon) 11:04:39

[비즈한국] 한국에서 힙합이 주목받기 전부터 인기 있었던 힙합 장르가 있습니다. 바로 ‘재즈힙합’입니다. 부드러운 재즈 음악을 샘플링한 비트에 공격적이지 않은 얼터너티브 랩을 넣거나 심지어 랩이 없는 힙합 장르입니다. 제이 딜라, 누자베스 등이 대표적 재즈힙합 아티스트들입니다.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재즈힙합을 상징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진중하고 문학적인 가사의 대표 주자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재즈힙합의 대명사, 커먼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커먼의 최근 앨범 ‘블랙 아메리카 어게인(Black America Again)’.


커먼은 1990년대 초반 혜성같이 등장했습니다. 나스, 제이지, 스눕독, 닥터 드레 등 1990년대 초반을 장식했던 래퍼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당시 그는 프로듀서 노 아이디가 만든 진중한 재즈 샘플링에 복잡하고 문학적인 화려한 랩을 내뱉는 새로운 유형의 언더그라운드 래퍼였지요.

 

그는 2집에서 발표한 곡 ‘아이 유즈드 투 러브 허(I Used to Love H.E.R)’로 전국구 스타가 됩니다. 한 여자와 사귀고, 그 여자가 변해가는 모습에 실망해 헤어지는 이야기를 랩으로 이야기합니다. 커먼은 이 여성이 ‘힙합’이라고 스토리텔링의 끝에서 말합니다.

 

커먼에 따르면 힙합은 본래 즐겁고 라임과 가사의 재치를 겨루는 예술이었습니다. 그러던 힙합이 아이스 큐브와 닥터 드레로 대표되는 서부 갱스터 랩이 유행하면서 거칠고 폭력적으로 남성성을 과시하는 문화가 돼버렸다고 커먼은 주장합니다. 힙합은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묘사보다 라임 미학과 철학을 겨루는 대결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스 큐브가 소속된 그룹 웨스트사이드 커넥션은 커먼의 실명을 거론하며 ‘웨스트하우스 슬로터하우스(Westside Slaughterhouse)’라는 디스곡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커먼은 공격성을 갖췄으면서도 라임 미학을 화려하게 구사한 ‘더 비치 인 유(The Bitch in Yoo)’로 화답했지요. 시간이 흘러 지금은 아이스 큐브가 만든 다큐멘터리에 커먼이 출연하고, 커먼이 아이스 큐브의 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영상을 SNS에 올리는 등 관계를 회복했지만 당시는 뜨거운 주제였습니다.

 

이후 커먼은 1990년대를 상징하는 네오 소울 음악 창작 집단 ‘소울쿼리언스(Soulquarians)’와 함께 활발한 활동을 합니다. 제이 딜라, 블랙 스타, 디앤젤로, 에리카 바두 등이 소울쿼리언스의 멤버였습니다. 에리카 바두는 커먼의 아내이기도 합니다. 커먼은 제이 딜라에게 전적으로 프로듀싱을 맡겼고 둘은 함께 ‘라이크 워터 포 초콜릿(Like Water For Chocolate)’ 등 재즈힙합을 대표하는 명반을 남겼습니다.


커먼의 ‘비(Be)’. 제이 딜라가 만든 곡을 카니예 웨스트가 편곡으로 마무리한 이 곡은 흔히 힙합 팬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트로 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커먼은 대중성을 더욱 강화합니다. 당시 대중성에서 최전성기를 달리던 카니예 웨스트에게 앨범을 맡긴 거죠. 그렇게 나온 앨범 ‘비(BE)’는 커먼에게 최초로 빌보드 1위를 가져다줍니다. 카니예 웨스트의 소울풀한 음악과 보컬을 과감하게 활용한 샘플링은 라임의 예술성을 살리는 동시에 커먼의 철학과 사회적 메시지를 다룬 가사와 만나 엄청난 시너지를 낸 셈입니다. 커먼은 그래미상까지 수상하며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커먼은 전자음악과 댄서블한 음악에도 욕심이 있었던 듯합니다. 카니예 웨스트와 두 개의 앨범 작업 이후, 커먼은 두 번이나 퍼렐 윌리엄스와 함께 합니다. 퍼렐 윌리엄스의 밴드 ‘넵튠스’의 댄스 음악을 시도한 거지요. 대중의 기대치와 달라서일까요? 완성도와 상관없이 두 앨범은 상업적으로 실패했습니다.

 

2010년대에 들어 커먼은 음악 초기로 돌아옵니다. 노 아이디와 함께 과거의 단단한 음악으로 돌아온 거지요. 노래와 랩을 함께하는 드레이크를 디스하는 곡 ‘스위트(Sweet)’를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이후 그는 업계의 노장으로 노 아이디와 함께 앨범을 하나 더 제작하고, 재즈힙합 뮤지션 로버트 글라스퍼, 카리엠 리긴스와 함께 ‘어거스트 그린’이라는 슈퍼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커먼의 낭만적인 면을 잘 보여주는 곡 ‘더 라이트(The Light)’.

 

커먼의 음악은 진중합니다. 화려한 라임과 잘 짜여진 스토리로 자신의 철학과 사회적인 메시지를 과감하게 전달하죠. 그는 뛰어난 가사와 테크닉뿐만 아니라 믿음직한 프로듀서에게 앨범 전체를 맡겨 통일감과 완성도 있는 앨범을 만드는 재능까지 있습니다. 대부분의 앨범이 명반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앨범 단위로 뛰어난 결과물을 내기도 했습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재즈힙합이 전부가 아닌 셈입니다. 그의 음악이 초기 에픽하이, 넉살 등 많은 래퍼들에게 영향을 준 이유입니다.

 

커먼은 점차 배우 활동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앨범 판매량과 비평적 관심도 점차 적어지고 있죠. 나이의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힙합이라는 음악이 바뀐 영향이 큽니다. 멈블랩 등이 유행하며 노래와 랩의 경계가 점차 옅어졌습니다. 화려한 라임과 철학적인 가사도 요즘의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지요. 재즈음악을 적극적으로 샘플링한 재즈힙합 비트 또한 워낙 많이 사용해 이제는 특별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커먼의 음악을 길게 설명한 이유는 그의 음악이 한국에서 유독 높게 평가받던 힙합의 모든 요소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빈지노 등이 영향 받은 게 분명한 부드러운 힙합 비트, 사회에 대한 진중한 가사, 탄탄하고 화려한 랩 테크닉까지 말이죠. 그는 지금까지도 트럼프 시대 미국에 대한 근심 섞인 가사를 앨범으로 제작하는 성실한 래퍼이기도 합니다. 재즈 힙합의 최고봉, 커먼이었습니다.​ 

김은우 NHN에듀 콘텐츠 담당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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