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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남녀사친의 '질투'는 과연 사랑일까

1990년대 풍미한 트렌디 드라마 장르 개척…빙글빙글 엔딩 키스신 '압권'

2018.10.11(Thu) 14:43:52

[비즈한국]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야, 내가 지금 여기 눈앞에 서 있는데~ 날 너무 기다리게 만들지 마, 웃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

 

30~40대라면 무척이나 친숙할 가사다. 드라마 ‘질투’의 주제가는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걸어서 하늘까지’ ‘마지막 승부’ 주제가와 더불어 운동회 등 각종 행사에서 목청 터지게 불렀을 노래일 거다. 1992년 작인 ‘질투’ 주제가를 최근 다시 흥얼거리게 된 건 지난 10월 2일, TV를 틀다 배우 최진실 10주기 추도식 영상을 보면서부터. 요즘 10대는 모르겠지만 최진실은 명실공히 1990년대를 지배한 요정이었다.

 

엄청나게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요,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연기로 이름난 것도 아닌데, 최진실에게는 오직 그만이 가지는 특유의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질투’를 비롯해 ‘아파트’ ‘별은 내 가슴에’ ‘그대 그리고 나’ ‘장미와 콩나물’ ‘장밋빛 인생’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등 드라마와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미스터 맘마’ ‘마누라 죽이기’ ‘편지’ 등에서 십분 그 매력을 발휘했다. 그 중 ‘질투’는 최진실 매력의 포텐이 터진 작품이자 1990년대라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한 드라마다.

 

영호(최수종)와 하경(최진실)은 절친한 친구 사이지만 어느새 친구와 연인 사이 오묘한 감정에 휘말린다. 최수종과 최진실은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 실제 연인으로 발전하는 게 아닐까 싶은 세인의 관심도 받았다. 사진=드라마 캡처

 

‘질투’는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낸 친구 사이인 이영호(최수종)와 유하경(최진실)이 우정과 사랑 사이를 오가며 갈등을 겪는 드라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우정이 존재할까, 남사친과 여사친이 끝까지 친구 사이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시대를 막론하고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토론 주제를 ‘신세대’라 불리던 1990년대 젊은이들을 통해 밝고 경쾌한 영상과 연출로 선보인다.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로 꼽히는 ‘질투’는 이전의 ‘연속극’이라 불리던 가족 중심의 홈드라마를 벗어나 막 사회에 진출한 청춘들의 연애와 라이프스타일에 집중한다. 이는 주인공들의 직업만 봐도 한눈에 드러난다. 영호는 일한 만큼 승진과 실적이 가능한 광고회사(지금으로 치면 스타트업)에 취직하고, 하경은 대기업 계열 여행사에 취직해 기획과 영업, 가이드 투어까지 도맡아 종횡무진 활약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이야 여행사의 인기가 덜할지도 모르지만 국내에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1989년이었으니 드라마 당시인 1992년 여행사의 인기는 상당했으리라 본다. 또한 영호가 한눈에 반해 데이트하며 하경의 애를 태우게 한 미모의 여인 한영애(이응경)는 당시 드물던 프랜차이즈 피자가게 사장이었고, 하경의 과외교사였고 추후 하경의 친구 배채리(김혜리)와 결혼하는 민상훈(이효정)은 그냥 변호사도 아닌 국제변호사였다.

 

주인공들이 머무는 주요 공간 또한 (당시에는) 남달랐다.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영애가 주인인 만큼 프랜차이즈 피자가게가 전면으로 등장해 대한민국에 피자 붐을 일으켰고, 영호와 하경이 자주 만나 컵라면과 김밥과 냉동만두를 섭취하는 것은 물론 출장 전날 급하게 속옷을 구입하기도 했던 편의점이 제3의 주인공처럼 활약했다.

 

하경과 영호가 자주 만나는 드라마의 주요 공간인 편의점. 지금이야 골목마다 편의점이 수두룩빽빽하지만 당시 편의점은 국내에 제대로 터를 잡은 지 몇 년 안 되었을 때였다. 사진=드라마 캡처

 

물론 지금과 달리 온정이 남아 있던 터라 단골 편의점 직원이 지갑을 두고 온 하경에게 외상으로 물건을 주기도 한다! 그 외에 개원한 지 3년밖에 안 된 롯데월드가 협찬 광고 티가 물씬 나도록 주인공들의 데이트 장소로 전면에 등장하고, 상훈과 채리의 데이트 장소로 칵테일 바가 애용되는 등 ‘질투’는 공간마저 1990년대스러웠다.

 

물론 ‘질투’가 직업과 공간과 영상 등 비주얼로만 1990년대를 탐한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의 최대 매력은, 우정과 사랑 사이를 헤매는 영호와 하경의 경쾌한 행각보다 요즘 말로 ‘걸크’ 터지는 여성 캐릭터들의 매력이라 본다. 주인공 하경은 귀엽고 털털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일솜씨의 소유자다. 어릴 적부터 친구인 영호와의 관계에서도 친구의 영역을 벗어나기 어려워 미적거리긴 했으나 양손에 쥔 떡처럼 영애와 하경 사이를 어지럽게 오가는 영호와는 다르게 제법 저돌적이었다.

 

주연을 맡은 배우들이 대부분 캐릭터 나이와 비슷했다. 국제변호사 민상훈을 연기한 이효정 또한 나이 들어 보이지만 실제 캐릭터와 같은 32세였다. 사진=드라마 캡처

 

회사에서는 신입사원 중 수석을 거머쥐며 입사해 상사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똑순이. 동료 남자직원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아도 눈물 흘리지 않고 경쾌하게 받아치고, 소설가인 엄마와의 사이도 여느 모녀와 다르게 독립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으로 조언을 주고받는다.

 

다른 여성 캐릭터도 마찬가지. 뭇 남자들의 흠모를 받는 영애는 언뜻 지고지순한 여성처럼 보이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성공을 위해 옛 남자에게 청탁도 서슴지 않는, ‘사랑밖에 난 몰라 행동파’다. 영원한 취직을 위해 똑똑하고 돈 많은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는 채리 역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지만 음험함 따윈 없다.

 

목소리 큰 방송국 PD와 주책 맞은 농담 던지기 일쑤인 신문사 부장 사이에서 꿀림 없이 온화하게 말을 받아치는 하경의 엄마는 또 어떻고. 그러니 ‘질투’를 보다 보면 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여자인 내가 봐도 영호보단 하경이랑 사귀고 싶은데? 하경아, 눈을 돌려봐. 영호도 귀엽지만 더 괜찮은 남자들이 많다고. 아니면 그냥 미국으로 떠나는 게 어때?

 

장안에 화제를 일으켰던 드라마 엔딩신. 레일 위에 카메라를 장착하고 빙글빙글 도는 신은 이후 수많은 드라마에서 쓰이곤 했다. 사진=드라마 캡처

 

드라마 마지막, 결국 사랑을 확인한 영호와 하경이 키스를 나누는 엔딩신 또한 화제였다. 키스하는 남녀를 가운데 두고 카메라가 빙글빙글 원을 돌며 그 모습을 촬영하는 모습까지 담으며 끝났는데, 이 카메라워크는 이후 수많은 트렌디 드라마에서 회자되곤 했다.

 

작년 방영했던, ‘질투’와 기본 DNA가 닮아 있는 ‘쌈, 마이웨이’에서도 친구인 주인공 남녀가 감정을 확인하는 신에서 ‘질투’ 주제가와 함께 빙글빙글 신이 등장한 걸 보라(물론 1990년생인 우리 막내는 그 장면의 의미를 1도 이해하지 못했다).

 

26년이 지난 지금 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촌스럽겠지만, 그 촌스러움을 극복하게 하는 최진실의 매력이 뿜뿜 터지는 드라마 ‘질투’. 그의 매력을 재확인하고 싶다면 MBC 홈페이지에서 유료 다시보기가 가능하다.

 

필자 정수진은? 영화를 좋아해 영화잡지 ‘무비위크’에서 일했고, 여행이 즐거워 여행잡지 ‘KTX매거진’을 다녔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이며,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지금은 프리랜서를 핑계로 종일 드라마를 보느라 어깨에 담이 오는 백수 라이프를 즐기는 중.​ 

정수진 드라마 애호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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