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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드 뮤지끄] '장기하와 얼굴들'과의 작별은 빈투바가 제격

내년 첫날 해체 선언 '뭘 그렇게 놀래'…대체 가능한 밴드? '아무것도 없잖어'

2018.10.22(Mon) 17:31:57

[비즈한국] 으아 안돼!!

 

무심코 모니터를 바라보다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이병헌이 외쳤던 비명소리가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모니터에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내년 첫날 해체한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깜짝 놀라 야속한 마음마저 들었지만 이번 5집이 최고의 앨범이 될 것이며 이렇게 장기하와 얼굴들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 했으니 해체를 하겠다는, 반박의 여지 없이 일목요연하고 논리적이며 인과관계가 뚜렷한 글을 읽으니 할 말이 없어졌다.

 

안돼!! 사진=장기하와 얼굴들 공식페이스북

 

돌이킬 수 없고 갑작스러운 이별엔 빠른 인정과 적응으로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음원과 음반과 뮤직비디오 속 장기하와 얼굴들(장얼)은 언제든 만날 수 있겠지만, 이제 내년부터 새로운 장얼은 없다. 미련을 버리고 흘려보내야만 한다. 벌써부터 헛헛한 가슴을 안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린다. 오늘만큼은 홍차가 아니라 믹스커피를 마셔야 한다. 으레 장얼의 여정은 ‘싸구려 커피’에서 시작되니까.

 

올해까지만 볼 수 있는 얼굴들. 사진=장기하와 얼굴들 공식페이스북

 

사람 마음이 고통으로 가득하면 곡기를 끊듯 이렇게 가슴 한구석이 뻥 뚫렸을 때엔 풍성한 크림, 다채로운 식감과 같은 요란하고 화려한 것들이 영 내키지 않는다. 따라서 시커멓고 오독오독 씹히는 초콜릿을 준비한다. 이 슬픈 순간을 달래줄 특별한 초콜릿으로. 

 

밴드를 해체하고 다들 싱글로 돌아간다니 한 농장에서 생산된 카카오빈으로 만든 싱글 에스테이트 초콜릿이 좋겠다. 장얼은 6명의 멤버가 작사, 작곡, 편곡, 연주,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해내는 밴드이니 역시 카카오빈의 가공부터 제품 생산까지 한 곳에서 이뤄지는 빈투바(bean to bar) 초콜릿이 제격이다. 이들이 초창기엔 홍대에서 활동했던 만큼 홍대에 있는 가게로 발길을 옮겨본다. 착잡한 마음에 입맛이 영 씁쓸하고 시큼하니 바디감과 산미가 있는 초콜릿을 선택한다. 

 

직접 가공한 원두를 쓰는 로스터리 카페가 제각각 다른 풍미의 커피를 만들듯이 직접 가공한 카카오빈으로 초콜릿을 만드는 빈투바 초콜릿 또한 가게마다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 오렌지향, 레몬향, 산미, 구수한 맛, 쌉싸름한 맛, 견과류향 등의 설명은 와인이나 커피를 고를 때와 비슷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허쉬를 0.1톤 이상, 고디바를 10kg 넘게 먹었다면 꼭 한 번 먹어볼 만한 장르다. 오늘은 이것을 싸구려 커피와 먹지만 맥주, 와인, 위스키, 이강주 등에 곁들이기에도 훌륭하다. 배가 부르지 않은 고급 안주란 뜻이다. 

 

그리고 한 조각씩 떼어 먹으며 멤버 한 명씩 떠올린다. 이것은 이민기(기타), 이것은 정중엽(베이스), 이것은 전일준(드럼)….

 

로스팅마스터즈의 빈투바 초콜릿. 사진=로스팅마스터즈 페이스북

 

장얼은 노래에 쓰이는 가사로서의 한글, 보컬 입에서 발음되는 한글의 측면에서 신기원을 열었다. 미국 랩뮤직을 들으며 내가 쓰는 한글, 단어, 억양에 대해 고민을 시작하면 항상 장얼과 같은 결론에 다다르곤 했다. 때문에 콘서트에서 장얼을 ‘힙합그룹’이라고 소개한 장기하의 말에 격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싸구려 커피’와 ‘달이 차오른다, 가자’가 수록된 1집에서 이미 적잖이 놀랐기에 2집에 대해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다. 장기하의 잘생긴 ‘손’ 하나로 퉁 친 기발한 뮤직비디오, 역시 밴드엔 신시사이저가 있어야 한다고 감탄했던 ‘그렇고 그런 사이’는 큰 기대에 대한 좋은 대답이 됐다. 그리고 바로 이 노래에 깜짝 놀랐다. 노래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가사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한국 가요를 사랑하는 보석 같은 DJ, 타이거디스코는 댄스플로어에서 자주 이 노래를 틀곤 한다. 펑키함이 살아 있는 흥겨운 노래, 춤추기 좋은 노래다. 가사에 나오는 옷에 밴 생선냄새를 어떻게든 빼보려고 부지런히 퍼덕거리며 춤을 춰보자. 장기하가 스-읍 할 때마다 발바닥으로 바닥을 쓸어주면 재미있는 안무가 된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1집에 수록된 ‘별일 없이 산다’다. 한때 이 노래에 크게 감화되어 실제론 구질구질하고 별일이 가득해도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잘 지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 역시 장얼이 해체해도 나는 별일 없이 잘 살 것이라고, 장얼 또한 별일 없이 잘 살 것이라 믿는다. 

 

장얼을 보내는 마지막 곡이기에 1집 시절 멤버가 연주하는 영상을 보여주려다 생각을 바꿨다. 펑키한 신시사이저 이종민과 멋진 기타 하세가와 요헤이(a.k.a 양평이형)의 소리를 빼곤 도저히 지금의 장얼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얼은 대체재가 없는 밴드다. 그러기에 장얼이 떠나면 장얼 크기만큼의 구멍이 휑하니 남을 것이다. 2019년의 장얼은 없고, 새로운 장얼도 없고, 장얼 6집도 없다. 

 

그래도 장얼 멤버 얼굴을 하나하나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이종민 더 배드보이, 타틀즈, 아마도 이자람 밴드, DJ 하세가와 요헤이 등등. 해체선언문의 마지막처럼 이들은 각자의 길을 갈 테다. 누가 무엇을 할지, 누가 어떤 새로운 음악을 할지 기대하고 쫓다보면 장얼이 남긴 큰 구멍은 다시 새로운 무엇으로 채워지리라 믿는다. 안녕, 장기하와 얼굴들.

 

그리고 아직 올해 두 달 넘게 남았어.

 

필자 이덕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두 번의 창업, 자동차 영업을 거쳐 대본을 쓰며 공연을 만들다 지금은 케이크를 먹고 공연을 보고 춤을 추는 일관된 커리어를 유지하는 중. 뭐 하는 분이냐는 질문에 10년째 답을 못하고 있다. 

이덕 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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