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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법] 전 대법원장은 누구에게 재판을 받아야 마땅한가

재판부 구성은 법률로 정하는 사안…강제적 국민참여재판은 위헌 소지

2018.11.12(Mon) 12:45:38

[비즈한국]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간 중 청와대 등 외부 권력기관과 재판거래를 하려했다는 의혹을 밝히기 위한 검찰 수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 7일 검찰이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을 비공개 소환하여 조사한데 이어 임종헌 전 법원행정차장의 기소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박병대, 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 그리고 모든 책임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소환도 연말에는 지켜볼 수 있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뜨거운 공방이 진행 중이다. 과연 어떤 방식으로 누가 재판을 담당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일반적인 절차에 따르면, 검찰이 수사해서 혐의가 드러나면 기소하고 법관의 재판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면 된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이 지난 10월 25일 오전 국회에서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규명을 위한 특별재판부 설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박은숙 기자

 

그런데 여권은 이를 단호히 거부한다. 압수수색 영장 청구가 줄줄이 기각되는 등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별도의 절차를 통해 영장발부를 담당할 전담 법관을 선정하고, 심리를 담당할 재판부를 구성하며, 관련 사건을 필수적 국민참여재판 대상으로 두자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도 여권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여권의 주장은 위헌이라고 반박한다. 

 

과연 여권의 주장이 담긴 법률안은 위헌일까.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하자면 “현재 시스템대로 재판을 하면 공정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을까”다. 이 모든 논란은 사건 자체가 전직 대법원장이 재판거래의혹의 당사자이자 수사대상이기 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이 수사대상인 된 적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불편할 정도로 많다. 그러나 전직 대법원장이 수사 대상이 된 것은 헌정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법원행정처는 지난 8일, 여권의 법률안에 대해 위헌이라는 취지로 반대의사를 밝혔다.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절반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나머지 절반은 설득력이 있다. 우선 법관 이외의 다른 기관(변협 등)개입으로 담당법관을 정하는 것은 헌법에서 말하는 법률이 정한 법관에 해당하지 않고, 사무분담·사건배당은 사법행정권 핵심이라며 특정사건 배당에 국회, 변협 등이 개입하는 건 사법권 독립 침해로 볼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즉 국민이 선출한) 국회가 법관의 재판을 전제로 한 재판부구성을 법률로서 규율하는 법안을 위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헌법에도 각급 법원의 조직은 법률로 정하도록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외관상 공정성이다. 이례적인 특별재판부구성을 위한 법안이기 때문에 반드시 여야합의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전직 대법원장이 수사 대상이 된 것은 헌정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사진=임준선 기자

 

다만 피고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무조건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하는 것은 위헌여지가 있다는 법원행정처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다른 일반 사건의 경우 피고인이 원하지 않으면 국민참여재판을 할 수 없는 것과 비교하면 - 국민참여재판법도 동일한 내용으로 같이 개정하지 않는 한 -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전직 대법원장이 피의자 지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형평마저 깨뜨리는 것은 과하지 않을까.

 

국민의 갈등해결기관으로서의 법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이 법원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권력분립을 따르고 사법부를 존중했다고 하겠지만, 1년에 수백만 건의 사건이 진행되는 현실에서 국민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둔 적은 있을까. 최고법원으로부터 한 장짜리 판결문을 받고 난 후의 절망감을, 무려 3000만 원을 소액으로 정하고 판결이유는 항소심에서 한번만 알 수 있는 현실을 과연 정치권이 아는지 모르겠다. 

 

이번 사법농단 의혹은 언젠가는 결론이 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국민으로부터의 사법신뢰를 얻어야만 사법부는 존립할 수 있다. 오늘도 재판을 받으러 전국 법원에 힘겹게 발걸음을 하는 국민의 마음을 진심으로 들여다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되지 않을까.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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