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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추운 계절 그 이상' 독일의 우울한 겨울이 시작됐다

오락가락하는 비, 음산한 날씨가 5개월이나…이명 등 많은 사람들이 '기상병' 겪어

2018.11.15(Thu) 10:17:25

[비즈한국] 요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대화의 내용이 비슷하게 흘러간다. 이런 식이다. 

 

“겨울이 시작됐어. 오후 4시 30분만 돼도 벌써 어두워. 5개월 넘게 이럴 텐데 걱정이야. 그래도 올해는 작년보다 낫지 않아? 11월인데 춥지도 않고 비도 거의 안 오잖아. 올 가을이 길고 따뜻해서 진짜 행복했지. 겨울이 빨리 지나가면 좋겠다.”

 

날씨 이야기야 나라를 불문하고 영원한 화제지만, 독일의 겨울은 ‘추운 계절​’ ​그 이상의 의미다. 서울보다 평균기온은 높을지 몰라도, 잿빛 하늘에 추적추적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는 비, 햇빛을 거의 보기 어려워 우울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5개월 이상 지속된다.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고, 온통 회색빛인 독일의 겨울 날씨. 하루 일조량이 심각하게 부족한 탓에 반짝 해가 나면 사람들은 볕 잘 드는 곳에 앉아 햇볕을 즐긴다. 사진=박진영 제공


이 시기, 사람들은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신발을 신은 채 비를 맞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걸어 다닌다. 어쩌다 반짝 해가 보이면 햇살 비치는 곳으로 몰려들어 참새처럼 나란히 앉아 볕을 쬔다. 

 

힘든 겨울나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직접 겨울을 나보기 전까지는 뭔가 기대감이 있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렘일 수도 있고,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하는 호기심도 있었던 까닭이다. 한번 겪어보니 괜한 엄살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다. 겨울에 자살하는 사람이 는다는 얘기도 종종 들었는데, 그 또한 이해되었다. 

 

겨울뿐 아니라 독일 날씨는 사시사철 변덕스럽기로 유명하다. 비가 쏟아지다가 갑자기 쨍한 햇살이 내리쬐고,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는다. 비가 왔다 개었다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니 사람들은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비하는 ‘여러 겹’의 옷차림을 선호한다. 

 

11월 초 오후 5시쯤 베를린 주택가 풍경. 이미 밤처럼 깜깜하다. 사진=박진영 제공


‘머리에 꽃 꽂은’ 사람처럼 왔다갔다하는 날씨를 1년 넘게 겪어보니 매일 아침 날씨를 체크하는 게 일상이 됐다. 집을 나서는 그 순간의 날씨만 보고 옷차림을 결정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날씨 탓에 없던 ‘병’도 생겼다. 어느 날부턴가 비행기 이착륙 때 고도 차이로 인한 증상처럼 귀 한쪽이 먹먹해지는 증상이 반복되기 시작한 것. 처음에는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비슷한 증상을 겪는 이들이 많음을 알게 됐다. 이명이 들리는 증상이 있는 경우도 있고, 두통을 심하게 앓는 사람도 있었다. 한인 커뮤니티에도 독일에 살게 된 후 이유를 알 수 없이 아프고 피곤하고 무기력하며 수면시간이 길어지는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의학적, 과학적으로 밝혀진 바는 아니고 독일에서도 논쟁거리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대체로 저기압과 그에 따른 저혈압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잦은 비와 변덕스러운 날씨로 대기 중에 산소 함유량이 낮아지는 저기압이 자주 발생하고, 혈압의 변화로 두통, 현기증, 소화불량, 귀 먹먹함, 이명 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기압, 기온, 습도, 바람 등 급격한 기상 변화에 따라 몸의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이른바 ‘기상병’인 셈. 

 

베를린 도심의 유명 카페. 독일은 미국에 이어 생두 수입량 세계 2위다. 카페인이 혈관축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독일의 커피 소비량과 관련 있지 않을까. 사진=박진영 제공


횟수는 줄었지만 귀가 먹먹한 증세를 겪는 나는 겨울이 시작되면 비타민D를 강박적으로 챙기고 독일 사람처럼 해가 나오면 일부러 볕을 쬐는 등 나름의 대처를 하고 있다. 적당한 양의 카페인이 혈관 수축을 도와준다며 매일 커피 한잔을 권하는 이도 있고, 밝은 조명과 적절한 온도 및 습도 유지,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경험적’ 처방들도 도움이 된다.

 

요즘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독일 겨울에 대한 경험이 만들어낸 심리적 이유도 있지 않을까. 멋모르고 맞았던 지난겨울과 달리 올 겨울을 맞는 나의 마음은 이미 위축돼 있다. 어쨌거나 독일에서 맞는 두 번째 겨울은 시작됐다. 오후 4시 30분이면 해가 지고 5시면 이미 깜깜해지니 긴긴 밤을 잘 보내기 위한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독일이 칸트와 실러, 괴테와 니체, 쇼펜하우어 등 대문호와 철학자들은 물론 베토벤, 바흐, 헨델과 같은 위대한 음악가들을 배출한 데는 사색과 사유를 가능케 한 독일 날씨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그럴싸한 분석도 있다. 겨울 밤, 와인 한잔하며 일기라도 한편 써야 하려나.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지난해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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