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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림 탐식다반사] 노가리 한 마리에도 친절의 기회가 있다

신흥시장 '노가리 공장' 턱 안 아픈 반건조 노가리, 잘게 찢어 구운 빠삭이에 담긴 '성의'

2018.12.26(Wed) 11:26:09

[비즈한국] 아시다시피 노가리는 어딜 가나 한 마리 1000원이다. 아주 싼 안주다. 하지만 건어물을 취급하는 시장에 나가 보면 노가리 가격도 박스당 천차만별이다. 시장 가격은 맛을 판별하는 무척 편리한 기준. 품질과 맛이 가격대별로 다 다를진대 왜 노가리 파는 호프집들은 모두 같은 가격인 걸까. 가격으로 분별이 되지 않으면 소비자가 더 맛있는 노가리를 찾아 이 호프집 저 호프집 기웃거리며 가장 맛있는 노가리를 찾아야 하는 걸까.

 

반쯤 마른 상태로 구워 씹을 때 턱이 아프지 않은 노가리. ​사진=이해림 제공

 

어쩌다 찾았다. 가장 맛있다기보다는, 가장 독특한 노가리다. 사장님 왈 “노가리를 하도 먹다 보니 턱이 아파서 개발한” 촉촉하고 부드러운 노가리. 해방촌 신흥시장에 있는 ‘노가리 공장’이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한 번 훑은 상권인데, 이 집은 방송을 타지 않았다. 백종원씨가 극찬해 크게 화제가 되었던 ‘시장횟집’ 앞집이라 스치듯 나온 앵글은 적지 않았다. 

 

상호가 노가리 공장이지만 뭇 노가리 호프집들과 비교했을 때 메뉴가 일반적이지는 않다. 생맥주 3000원, 구운 김 2000원, 구운 라면 2000원, 노가리 1000원, 빠삭이 3000원이다. 무척 관리가 잘된 생맥주는 한국식 라거 생맥주의 어떤 규범이 될 만하다. 잡내 없이 콸콸 넘어간다.

 

구운 라면은 스낵면을 구운 것을 쪼개 라면 스프에 찍어 먹는다. 라면땅이나 뿌셔뿌셔 같은 라면형 과자와 같으면서 다른 것이 꽤 독특하다. 노가리는 반건조 상태라 살집이 과연 보드랍고 수분도 탱글탱글하게 올라 있다. 가게 외부에 건어물에 최적화된 가스 불판을 제작해뒀는데 면적도 넓고 화력도 적당하다. 구력이 심상치 않은 붙임성 좋은 사장님의 노하우가 집약된 집인 것이다.

 

면발이 얇은 스낵면을 불판에 구수하게 구워 먹으니 이 또한 독특한 라면땅.​ 사진=이해림 제공

 

빠삭이는 황태포를 일일이 잘게 찢어서 은근한 불에 수분 없이 바삭거리게 구워낸 것이다. 이 술집에서 맥주와 함께 최고가를 형성하는 메뉴인데 나는 빠삭이를 가장 높게 산다. 뭐가 들어간 것인지 절대 알려주지 않는 마법에 가까운 소스를 찍어 먹어도, 소스 없이 그저 달달하고 감칠맛 도는 맛 그대로 집어 먹어도 계속 손이 간다. 

 

신흥시장 자체가 쓰러져가는 반 폐허 상태인데, 노가리 공장이 세든 건물 역시 외관엔 세월의 구구절절한 때가 몇 겹이나 쌓여 있다. 식품회사에서 달아줬던 듯한 동성여(ㄴ은 떨어져 있다)쇄점 간판엔 미원과 맛나 로고가 양옆으로 붙어 있다. 밀레니얼들이 “빈티지 갬성 터진다”고 반색할 만한 세팅인데, 이곳은 도산공원 앞 뉴트로 같은 연출이 아닌 실화다.

 

동성여쇄점(여 아래 ㄴ은 떨어져 있다) 좌우로 미원과 맛나 로고가 붙어 있다. 사진=이해림 제공

 

신흥시장은 백종원의 골목식당 이후 잠시 활기가 돌았었다지만 방송 덕 보는 것도 몇 달이라 이제 꽤 조용해졌다. 여름에 그토록 붐볐던 노가리 공장에도 동면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죽는 것은 상권이고, 동네는 그저 지속될 뿐이다. 그 안의 사람들과 식당들은 상권이 죽거나 말거나 하던 대로 잘하고 있다. 통통하게 물 오른 반건조 노가리도, 과자보다 맛있는 빠삭이도 여름 전성기나 다름없이 맛이 좋았다. 물론 그 알 수 없는 소스도, 그리고 분별 없이 계속 마시게 되는 그 청량한 생맥주도.

 

과자보다 맛있는 황태포구이 ‘빠삭이’. 일일이 잘게 찢어 구운 덕분이다. 사진=이해림 제공

 

“인간이 있는 곳에는 친절의 기회가 있다.” 얼마 전, 존경하는 한 기자 선배가 칼럼에 이런 문구를 인용했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라는 사람이 남긴 말이라고 한다. 성의, 배려, 존중과 같은 단어들이 행간에 묻은 문구다. 문득 친절의 기회를 생각하게 됐다. 똑같이 1000원 받을 노가리에도 각별한 친절을 생각하는 이가 있고, 빠삭이 같이 독특한 황태포를 골몰 끝에 고안해내는 친절을 가진 이도 있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빠른 속도로 상권을 훑고 지나다니고 있지만, 결국 폐허가 돼가는 시장 골목에서 내가 건진 것은 전 국민이 궁금해한 알탕이나 아구찜이 아니라 1000원, 3000원짜리 말린 생선에 담긴 친절이었다. 그 성의를 알아보는 것도 손님이 잡아야 할 어떤 친절의 기회일 것이다.

 

필자 이해림은? 푸드 라이터, 푸드 콘텐츠 디렉터.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싣고 있으며, ‘수요미식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탐식생활: 알수록 더 맛있는 맛의 지식’​을 썼고, 이후로도 몇 권의 책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 콘텐츠, 브랜딩, 이벤트 등 전방위에서 무엇이든 맛 좋게 기획하고 있으며, 강연도 부지런히 한다. 퇴근 후에는 먹으면서 먹는 얘기하는 먹보들과의 술자리를 즐긴다.

이해림 푸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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