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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스업] 당신을 '인싸'로 만들어줄 패션템, 모자

과거엔 중절모 하나쯤은 다 있었는데…폭염·미세먼지 차단에도 유용

2019.02.18(Mon) 11:22:39

[비즈한국] 세련된 정장을 차려입고 멋진 모자를 잘 어울리게 쓴 사람을 보면 한 번 더 눈길이 간다. 그만큼 드물어서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남자에게 모자는 격식의 상징이자 패션의 기본이었다. 1960~70년대만 해도 시골 노인들도 중절모 하나씩은 다 가졌고, 당시 기록영화를 봐도 한복이든 양복이든 중절모 쓴 남자들을 일상에서 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모자를 쓰지 않게 되었다. 실내나 격식 있는 자리에서는 벗어야 하는 등 점점 더 멀어져, 지금은 극소수 멋쟁이들만 모자의 매력을 대를 잇듯 지켜내고 있다. 운동할 때 쓰는 볼캡은 집집마다 흔하게 있지만, 중절모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실용적 용도의 모자만 남고 스타일로서의 모자는 사라진 셈이다. 

 

1960~70년대만 해도 중절모 쓴 남자들을 보는 게 어렵지 않았다. 창 넓은 페도라 하나쯤 있으면 언제든 멋 내기 아이템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사진=사진=thetrendspotter.net

 

흥미롭게도 최근 한국에서 모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여름 폭염에 양산과 함께 모자도 많이 팔렸다. 피부 보호를 위해 자외선차단제를 필수로 여기는 시대에 모자만큼 효과적인 피부 보호 도구도 없다. 미세먼지 탓도 있다.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드는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 모자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었다. 이런 실용적 이유에다 스타일까지 고려하면 창 넓은 페도라 하나쯤은 필요하다. 사계절 언제든 사용할 수도 있는데, 머리 위에 무심한 듯 툭 얹어만 둬도 멋스럽다.

 

올겨울, 한동안 움직이는 토끼 모자가 ‘인싸(인사이더)’ 아이템으로 유행했다. 핑크색 스키 마스크를 쓰고 나온 래퍼 마미손 때문에 발라클라바도 유행했다. 발라클라바는 얼굴 부분, 특히 눈이나 입 부분이 트이고 머리와 목을 덮는 모자인데, 겨울 스포츠 선수들의 방한 아이템이 올겨울 인싸 아이템이자 멋쟁이들의 모자로 선택받았다. ‘쇼미더머니’에 나온 래퍼들 때문에 비니나 워치캡, 버킷햇도 관심을 받았다. 뉴트로 패션의 일환으로 90년대 인기 브랜드의 빅로고 모자도 유행했고, 특히 발렌시아가 로고가 크게 박힌 볼캡(야구모자)이 20대 사이에서 유행했다. 아니 지금도 유행 중이다. 모자도 TPO에 맞는 선택이 필요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에게 모자는 중요하다. 처음 시작은 햇빛을 막고 비를 피하게 하는 실용적 목적이었지만, 점점 사회적 의미를 담은 모자의 역할이 커졌고 모자를 통해 남자는 스타일과 지위를 뽐냈다. 영국 신사에게만 모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조선 시대에도 시기에 따라 갓의 넓이와 높이 등이 달라지는 유행이 여러 차례 있었을 만큼 중요한 복식문화이자 남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치였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별로 쓰는 모자가 다 달랐고, 직업별로도 달랐다. 갓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성인 남자의 관모인 흑립(黑笠)인데 외출할 때에도 쓰고 집에 있을 때도 썼다. 흑립은 대나무를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만든 죽사나, 말의 갈기나 꼬리털인 말총으로 만든다. 검은색 흑립을 용도에 따라 붉은색 옻칠을 한 주립(朱笠), 흰색 포로 싼 백립(白笠) 등을 비롯해 삿갓, 방갓 등이 있다. 이외에 방건, 탕건, 원관, 정자관, 유건, 사모, 굴건, 제관, 익선관, 금관, 원유관, 면류관, 복두, 통천관, 패랭이, 초립 등 신분과 용도에 따라 정말 다양한 모자가 있었다. 여자 모자도 다양했다. 오죽했으면 구한말 조선을 찾은 외국인들이 한결같이 조선의 모자를 예찬했을까. 당시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르 바라는 조선을 ‘모자의 나라’라고 칭했다.

 

물론 모자 하면 영국부터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영국 신사 모자’라는 중절모는 크게 길쭉한 원통형의 클래식한 모자인 톱해트(Top hat)와 모자 상단이 공처럼 둥글고 챙의 옆이 살짝 올라간 볼러(Bowler)다. 톱해트는 흑립과도 비슷한 느낌이다. 일상적으로 쓸 모자로는 볼러나 페도라가 더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클래식하고 격이 있는 자리에선 톱해트도 세련되다. 세련된 수트에는 갓도 어울릴 거다. 

 

패션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나가 조선 시대 한복과 갓을 재해석해 선보인 2011 S/S 뉴욕패션위크 컬렉션. 의외로 갓과 여성복이 잘 어울린다. 사진=GoRunway.com


미국의 유명 패션디자이너 캐롤리나 헤레라(Carolina Herrera)가 2011 S/S 뉴욕패션위크에서 저고리, 옷고름, 갓 등을 재해석한 한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때 모델들이 다 갓을 쓰고 나왔다. 캐롤리나 헤레라는 18세기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를 본 후 한복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서양의 디자이너가 남자의 갓을 여성복 모델에게 쓰게 하고 런웨이 무대를 꾸몄는데 의외로 잘 어울렸다. 

 

최근에 갓에 관심 갖는 외국인들이 더 늘었다.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190여 개국에 공개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좀비 드라마 ‘킹덤’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의 전통 모자인 갓을 낯설지만 흥미로운 스타일로 여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러다가 갓 스타일이 힙한 패션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세련된 수트와 갓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조합이다.

 

우리는 탁월한 모자 패션을 가진 나라였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한국인, 특히 남자들은 모자에 아주 인색하다. 하지만 여전히 멋쟁이에겐 모자가 필요하다. 페도라는 기본이고, 조선시대 모자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다시 써도 좋겠다. 모자는 우리가 선택하는 패션 아이템 중에서 가장 상단에 위치한다. 그만큼 시선을 사로잡으며 첫인상을 좌우한다. 모자의 매력을 누리는 멋쟁이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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