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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땅값 비싼 수도권에 기업과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

미 반도체기업들, 노동력·벤처캐피털 많은 뉴욕·실리콘밸리에 집중

2019.02.18(Mon) 12:47:40

[비즈한국] 한국에서 반도체 산업이 갖는 위상에 대해서는 어떤 이도 의문을 표시하지 않을 것이다. 2018년 전체 수출의 20.9%를 담당했을 뿐만 아니라, 상장 기업 이익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도체 기업들은 왜 특정 지역에만 몰려 있는 것일까?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이 ‘역대최고 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삼성전자 서초사옥 내 홍보관을 찾은 학생들이 반도체 핵심 소재 ‘웨이퍼’를 살펴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오랫동안 이 의문을 품고 없는데, 최근 흥미롭게 읽은 ‘세계의 경영학자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 덕분에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이 책에 소개된 논문에 따르면,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도 한국처럼 극히 일부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고 한다. 

 

브루스 코굿과 폴 알메이다가 1999년 ‘경영과학’에 발표한 논문은 지식이 특정 지역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밝혀낸 대표적인 연구다. (중략)

 

코굿과 알메이다는 미국 반도체 산업의 특허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반도체 관련 지식은 제한된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경향이 미국에서도 일부 특정 지역, 즉 서부에서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캘리포니아, 동부에서는 뉴욕 및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일대에 국한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책 196쪽

 

왜 반도체 기업들은 땅값이 비싸기로 악명 높은 대도시에 집중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코굿과 알메이다 교수는 ‘지식이 사람 안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지식이 집중되려면 풍부한 노동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코굿과 알메이다는 주장한다. 만일 노동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지식을 보유한 기술자가 전직할 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해당 기술자 안에 내재된 지식도 함께 이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토가 넓은 미국에서도 반도체 및 IT 산업과 관련하여 두터운 노동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지역(=역내 전직이 용이한 지역)은 실리콘밸리와 뉴욕 인근으로 국한되기 때문에 이러한 지역으로 기술자가 모여들게 되고, 그 결과 집약된 지식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기술자가 그 지역을 찾는 것이다. -책 196~197쪽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 위치한 실리콘밸리. 반도체 기업들이 땅값 비싼 이 지역에 모여 있는 이유가 있다. 사진=Coolcaesar/위키피디아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이게 현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이 의문을 어떻게 해야 풀 수 있을까? 

 

코굿과 알메이다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1974년부터 1994년까지 20년에 걸친 반도체 관련 특허 보유자 438명의 근무지 변경 내역을 수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특허 보유자의 이동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뉴욕과 실리콘밸리 등 이미 클러스터가 만들어진 지역 내에서만 이동할 뿐, 다른 지역으로는 확산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책 197쪽

 

이 주장은 기업 입장에서도 꽤 설득력이 있다. 기술자 입장에서 두꺼운 노동시장이 있는 곳에서 일하면 불황 등으로 인해 해고의 위험이 높아지더라도 얼마든지 전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경기가 회복될 때 신속하게 능력 있는 기술자를 채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외에도 클러스터를 강화하는 요인이 더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벤처캐피털의 존재다. 미국의 사례를 조사하면, 벤처캐피털리스트들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스타트업에 투자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벤처캐피털리스트에게 지리적으로 가까운 기업에 투자하는 편이 유리한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벤처캐피털리스트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스타트업에게 경영에 필요한 조언을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스타트업의 경영자와 가능한 자주 만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거리가 가까우면 자주 방문할 수 있어 경영상황을 파악하는 일이 보다 수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책 198~199쪽

 

흥미로운 아이디어이지만, 이게 정말 사실일까? 이에 대해 미국의 연구자들은 ‘그렇다’고 답한다. 

 

폴 곰퍼스와 조시 러너는 ‘The Venture Capital Cycle’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스타트업과 그 주요 투자자인 벤처캐피털 사이의 평균 거리가 불과 59킬로미터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의 광활한 국토 면적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가까운 거리라고 할 수 있다. –책 199쪽

 

결국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뉴욕과 실리콘밸리 등 특정 지역에 집중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두꺼운 노동시장이 가진 매력, 다른 하나는 벤처캐피털을 비롯한 투자 자금의 존재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두꺼운 노동시장을 형성하기에 유리한 ‘교육기관’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탁월한 연구 업적을 올린 교수들이 뛰어난 인재를 길러내는 곳 근처에서 반도체 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쉽게 구하고, 또 필요로 하는 기술을 함께 개발할 여지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클러스터가 쉽게 무너지기도 어렵고, 새로운 클러스터가 생기기도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최근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지난 2011~2015년 동안 국제특허를 출원한 95만 건의 발명가를 주소지별로 추적해 100개의 클러스터를 정리한 자료를 발표했는데, 혁신이 국가별, 지역별로 불평등함을 보여주었다. 

 

자료=Kyle Bergquist, Carsten Fink and Julio Raffo(2017.5), ‘Identifying and ranking the world’s largest clusters of inventive activity’, WIPO Economic Research Working Paper No. 34.​


세계 1위의 클러스터는 일본의 도쿄-요코하마로 9만 5000개에 가까운 특허를 출원했고, 2위는 중국의 선전-홍콩으로 4만 1000개, 3위는 미국의 새너제이-샌프란시스코 클러스터로 3만 4000개, 4위는 한국의 서울 클러스터로 역시 3만 4000개였다. 흥미롭게도 2012~2016년의 클러스터 랭킹에서는 서울이 세계 3위로 미국의 새너제이-샌프란시스코를 누르고 올라섰으며, 대전도 세계 19위로 올라서는 등 한국의 기존 클러스터가 더 강해지고 있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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