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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체코에서 스키, 커피는 비엔나 '당일치기 해외여행'

자동차로 3시간여 만에 체코 스키장, 비행기 타고 비엔나 도심에서 8시에 밥 먹기

2019.03.07(Thu) 10:08:47

[비즈한국] 유럽에 살면서 좋은 것 중 하나는 국경 넘기가 자유롭다는 점이다. 국경 넘기가 고속도로 톨게이트 지나기보다 수월한 자동차 여행도 그렇고, 기차나 비행기를 타더라도 국경을 넘어 나라에서 나라로 이동하는 입출국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 국내 여행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 비행기를 타고 갈 때 짧게는 1시간 30분 이내, 웬만해도 2~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 천지니, 한국에서 외국 나간다고 분주함을 떨던 때와는 극과 극이다. 

 

베를린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리 가족은 그 자연스러운 국경 넘기의 경험을 해보고 싶어 몇 개 나라의 국경을 넘는 자동차 여행을 계획했다. 베를린을 출발해 네덜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를 찍고 돌아오는, 말 그대로 ‘베네룩스3국’ 여행. 

 

유럽 도시 내 공항들은 도심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비엔나 공항에서도 수시로 있는 전용 기차를 이용, 15분 만에 도심 도착이 가능했다.​ 사진=박진영 제공​


3박4일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짧은 여정이었던 터라 도로 위에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독일에서 네덜란드로 다시 벨기에로, 룩셈부르크로 여차하면 인지도 못한 채 국경을 넘어가 있던 경험들은 신기하기만 했다. 

 

젊은 시절 유럽여행을 하며 기차로 넘나들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자동차로 달리니 보이지 않는 경계를 밟고 넘어선 듯한 희열이 느껴졌다. 하나로 이어진 같은 도로를 달리고 있지만 미묘하게 달라지는 차이, 예를 들면 도로가 얼마나 밝은지, 포장 상태가 어떤지 등을 깨닫는 것도 즐거웠다. 

 

그날 이후 ‘국경 넘기’가 목적인 여행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이동이 자유로운 덕에 우리의 동선은 독일 안에만 갇히지 않았고, 베를린에서 가까운 동유럽은 그날 아침 기분에 따라 ‘번개 여행’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1km 전방, 폴란드에 진입한다는 표지판. 자동차 여행을 할 땐 국경을 넘는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사진=박진영 제공​


주말을 앞두고 ‘어디를 갈까’ 고민할 때 국경은 의미가 없다. ‘초밥 먹으러 일본 간다’는 허세 작렬한 농담이 유럽에선 현실 가능한 삶이다. 실제로 좋아하는 브랜드의 화장품을 사려는 목적으로 폴란드 국경을 넘은 적도 있으니까. 

 

지난 2월 중순, 한국에서 가족들이 오면서 우리는 일주일간 ‘국경 넘기’ 신공에 가까운 스케줄로 지냈다. 베를린에서 체코로 오스트리아로 폴란드로, ‘일주일 O개국 투어’ 단체 패키지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가족들이 베를린에 도착한 다음 날 스키를 타기 위해 체코로 떠났고, 다음 날은 프라하로 이동해 간단히 점심과 올드 타운 투어만 마친 후 베를린으로 복귀했다. 베를린에서 체코의 스키장까지가 자동차로 3시간 30분, 스키장에서 프라하까지 1시간 남짓, 프라하에서 베를린으로 3시간 30분이 걸렸으니, 서울에서 강원도 가는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새벽시간 베를린 테겔 공항. 유럽 내 나라와 나라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항공편 수가 많다는 것도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한 이유 중 하나다. 사진=박진영 제공


스키를 종일 타느라 숙박을 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프라하도 당일치기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프라하에서 베를린으로 돌아온 후 예정에 없던 당일치기 투어코스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여행은 운전의 피로감이 있으니 비행기를 타기로 하고, 비행시간이 2시간 이내일 것, 새벽에 출발해 저녁에 돌아오는 항공편이 있는 이웃 국가를 목표지로 삼기로 결정했다. 

 

얼마 전 지인이 당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터라, 비행시간 제외하고 7시간 정도만 확보가 되면, 몇 군데 중요한 루트만 돌아보는 여정은 얼마든지 가능하겠다 싶었다. 후보지로 삼은 곳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오스트리아 비엔나, 헝가리 부다페스트,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이 중에서 비행시간이 1시간 20분 내외인 비엔나와 파리가 최종 후보로 꼽혔고, 출발과 도착 비행편 시간대가 12시간 이상 차이가 나면서도 당일치기가 가능한 비엔나를 목적지로 확정했다. 물론 얼마 전 파리에 다녀왔고 비엔나는 가보지 못했다는 것과 도시 크기가 작은 비엔나가 당일투어에 적합할 것 같다는 판단도 더해져서. 

 

프라하 까를교(위)와 비엔나 호프부르크 왕궁(아래) 전경.​ 사진=박진영 제공​


오전 6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비엔나 커피 한잔 마시고 오자’는 농담을 하며 가벼운 몸과 맘으로 비엔나로 향한 우리는 공항의 도심 접근성이 베를린만큼 가까운 비엔나의 특성 덕분에 아침 8시 무렵에 비엔나 도심에 도착했다. 저녁 7시 1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택시를 타야 했던 오후 5시까지 9시간을 알차게 여행할 수 있었다. 

 

가보고 싶었던 여러 성당들이며 거리, 왕궁과 궁전에 가보고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들까지 찬찬히 감상한 것은 물론, 제대로 된 오스트리아식 점심과 비엔나 커피까지 마셨으니, 이만하면 국경 넘어 당일치기 여행의 끝판왕 쯤 되지 않을까. 

 

물론 며칠 동안 여유롭게 여행했다면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까지 가서 더 많은 작품들이 소장돼 있는 유명 미술관에 가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로 살고 있으니, 짧은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그런 나에게 이번 비엔나 당일치기가 아주 좋은 시도였던 셈이다. 

 

돌아오는 주말은 금요일 베를린 주 공휴일까지 더해 학교가 3일을 쉰다. 아직 우리는 아무 계획이 없는데, 주변의 가족들은 런던으로 파리로 주말 일정이 더없이 화려하다. 나도 슬슬 항공편 검색을 해봐야 하나.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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