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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캡틴 마블급' 초월적 존재, 우리 여사님을 소개합니다

의료진 아닌 데다 어머니뻘…취객 진상 부릴 때 통쾌한 일침 '슈퍼 히어로'

2019.03.19(Tue) 09:25:38

[비즈한국] 응급실에 초월적 존재가 한 분 계신다. 세상만사의 윤리적 규범이나 지탄이 알아서 제 걸음을 피해가는 성자 같은 분이다. 바로 우리 청소 여사님이다. 맡은 일로 치자면, 앓는 환자들의 피와 고름과 구토와 분변과 오물이 병원 어디에 묻더라도 소독까지 해서 깔끔하게 치워주시는, 매우 고마운 분이다. 

 

응급실은 시시각각으로 사방에 오물이 튀고 수술도구가 버려지므로, 다른 청소업처럼 정해진 시간마다 우아하게 빗자루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벽에도 시시때때로 우악스럽게 걸레질을 해야만 한다. 그 내용물만 하더라도 보통의 청소 현장과는 차원이 다를 것임을 나는 보증한다. 병원 누구라도 역할은 소중하지만, 여사님이 없는 병원은 바로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나는 오래도록 이 일을 해온 여사님을 존경한다.

 

취객은 우락부락한 보호요원이나 정장을 입은 직원들에게는 거침없이 화를 내지만, 눈이 핑글핑글 도는 진상도 여사님의 일성을 한 번 들으면 영락없이 꼬리를 내리고 만다. 그는 우리의 대변인이자 슈퍼히어로다. 아. 그는 힘이 세다. 유난하고도 특별하게 그는 여기에서 매우 힘이 세다. 사진=‘캡틴 마블’ 포스터


여사님은 이 병원 체계와는 별도의 높은 지위가 있다. 일단 이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분은 대부분 중년에서 노년으로 향해가는 여성이다. 사회적으로 노년에 가까운 여성이 획득하는 지위는, 노년에 가까운 남성이 획득하는 지위와는 조금 다른 것이 있다. 후자가 큰소리를 내고 누군가를 타박한다면 이는 대체로 눈살을 찌푸리거나 조금 음흉한 것으로 보이기 십상인데, 전자는 종종 오지랖으로 느껴질 수는 있지만 대체로 호의적인 시선을 받으며 따뜻한 마음씨에서 나오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는 병원의 내부자이니 당연히 우리 편이지만 그렇다고 의료진은 아니다. 그가 손대는 것이 의료용품이라는 것 외에는 의학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다. 이 말은 의료진이 지켜야 할 윤리 도덕적인 규범이 그에게는 예외가 된다는 뜻이다. 이는 묘한 위치이며, 어쩌면 초월적인 위치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여사님이 어긋난 일탈을 한다는 것은 아니다. 가령 한 취객이 왔다. 이 취객은 벌써부터 눈알이 핑글핑글 돈다. 급기야 주정을 부리고 의료진에게 반말을 섞으며 하대한다. 너무 많은 취객이 이렇다. 의료진도 사람인지라 그에게 신경이 쓰이고 상처를 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 번 상처를 주기로 작정한 사람은 점점 행동거지가 격해지며, 미움을 살 만한 일을 일부러 반복한다. 

 

내내 주정을 부리고 소리를 지르던 이 취객은 급기야 많은 환자들이 지나다니는 복도 앞에서 구토를 하고 만다. 그의 정신줄과 인격을 휘어잡았던 장본인인 토사물은 응급실 복도 앞에 방사선으로 뻗어나간다. 엑스레이를 대기하던 아이는 코를 감싸 쥐고, 부모의 죽음에 절망하던 아들이 무릎을 꿇고 그 토사물을 지켜본다. 

 

술 마신 사람도 엄연히 환자고 이 토사물은 그 환자의 증상인 셈이지만, 그럼에도 토사물에서 모둠 안주가 반나절쯤 급성 발효된 냄새가 안 나는 것은 아니며, 이를 민폐라고 안 부를 수도 없다. 이때 보무도 당당한 여사님이 등장한다. 그는 커다란 대걸레를 들고 와 바닥을 문대며 모두가 듣게 소리 지른다.

 

“술을 처먹었으면 방구석에서 얌전하게 쳐 자빠져 잘 것이지! 애들 있고 아픈 사람 있는 병원에서 남들 다 보게 토질이야 토질은! 하이구, 이거 처먹은 것 좀 봐! 다채롭게도 처먹었네! 주워가서 술집을 차려라 차려.”

 

모두가 그에게 하고 싶던 말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 의료진은 절대로 하지 못하는 말이기도 하다. 허나 여사님에게 적용되는 것은 의료진의 윤리가 아니라 청소 노동자의 윤리다. 자신이 마구 흩뿌린 토사물을 눈앞에서 치우는 사람이 “이렇게 풍성한 일거리를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꼴은 우리 사회의 직업적 제의와는 어긋난다. 적어도 여사님은 당당하게 항변할 권리를 획책하고 들어가는 셈이다. 

 

그럼에도 맞서겠다고 생각한다면 이 취객은 다른 차원의 벽을 마주하게 되는데, 통념상 ‘어머님’께 반항해야 한다는 윤리적 거부감을 넘어야 한다. 매우 빌어먹을 후레자식이 아니고서는, 자신보다 나이가 지긋한 노년의 여사님에게 진정으로 맞서기란 어렵다. 그래서 이것은 대리로 실현되는 카타르시스로 뭇 응급실 의료진의 선망을 살 법하다. 그는 우리네 마음속 심상의 독심술사이자 대변자다. 이제 그를 은근히 우러러보는 시선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이제 여사님은 모두의 대변인이 되었음을 본인이 직접 피부로 체감한다. 실은 여사님은 그 초월적 위치를 즐기고 있는 듯 보인다. 누군가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사람이 오면 우리는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여사님이 통쾌하게 말 한마디 해주지 않을까. 어서 저 사람을 꾸짖어 주세요. 

 

하지만 여사님도 환자들 있는 곳에서 오래도록 근무하신 분인데, 절대로 아무나 덮어놓고 일갈하시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의 임계치가 정점에 달해, 악담이란 악담은 모조리 끌어안고 다들 마음이 가라앉아 상처를 받아, 시원한 곳을 긁어주기를 바랄 때, 한 번쯤 이렇게 터뜨려주시는 것이다.

 

“하이고 비싼 술을 처먹었으면 입구멍에서 좋은 소리나 지껄일 것이지 XXX놈이 여기 와서 욕질이야! 아주 욕질하러 왔구먼, 욕질하러 왔어. 같은 욕 또 하고 같은 욕 또 하고. 하이고야 귀청이 먹겠네. 여기 우리 착한 선생님들한테 허튼 소리 하지 말고 발 닦고 집에 가서 잠이나 쳐 자라!”

 

급습을 당한 취객은 일견 당황한다. 여기까지 와서 화를 내는 사람들은 반항하지 못하는 가운 입은 돌팔이나 만만한 간호사에게 윽박지르러 온 것이지, 청소 도구를 든 노년의 어머님을 붙들고 실랑이하러 온 것은 아니다. 우리네가 어딘가에 화풀이를 할 때가 다 그렇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 것이다. 

 

취객은 우락부락한 보호요원이나 정장을 입은 직원들에게는 거침없이 화를 내지만, 눈이 핑글핑글 도는 진상도 여사님의 일성을 한 번 들으면 영락없이 꼬리를 내리고 만다. 일방적 포식자인 셈이다. 그러니 그를 아주 유일한 초월적 존재라고 부르지 아니할 수 없다. 그는 우리의 대변인이자 슈퍼히어로다. 아. 그는 힘이 세다. 유난하고도 특별하게 그는 여기에서 매우 힘이 세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의사 · ‘지독한 하루’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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