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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프랑스 공기업이 스타트업과 '상생'하는 방법

국영철도공사 SNCF, 자회사 통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방대한 데이터도 개방

2019.05.16(Thu) 11:14:13

[비즈한국] 지난주 프랑스국영철도공사(SNCF: Société Nationale des Chemins de fer Français)가 ‘574 Invest’라는 자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철도와 모빌리티 산업의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진행해온 스타트업들과의 협력 관계를 통합하는 것. 이를 통해 향후 4년간 1억 6000만 유로(2000억 원)를 스타트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프랑스철도공사가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SNCF 디지털 벤처스’라는 이름으로 3000만 유로(400억 원) 규모의 사내 투자 펀드를 운용하며 주로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빌리티 등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해왔다. 그동안은 외부 VC에 출자하는 방식을 통해 간접 투자에 주력했으나, 앞으로 574 Invest를 통해서 투자 규모를 개별 건당 100만~500만 유로로 늘리고, 매해 최소 2~3건 이상의 직접 지분(equity) 투자를 하는 다음 단계 전략으로 수정한 것이다.

574는 TGV가 2007년에 기록한 최고 속도인 시속 574km를 의미한다. 철도 기술에 대한 프랑스인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나중에 이 기록이 깨지면 어쩌려고 이런 이름을 붙였을까 의아한데, 프랑스인들은 시속 574km가 철로 위를 바퀴로 달릴 수 있는 속도의 물리적 한계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에겐 고속열차 테제베로 잘 알려진 프랑스국영철도공사 SNCF. 고속철도뿐 아니라 지역 내 시외 교통망, 도시의 지하철, 메트로와 트램 등 프랑스 시민들의 이동을 책임진다. 사진=SNCF 홈페이지


SNCF는 프랑스인들에게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먼저 ‘혁신’의 이미지이다. 

일본의 신칸센, 독일의 이체에(ICE)와 더불어 세계 최고의 철도 기술을 보유한 프랑스의 테제베(TGV)는 우리나라의 KTX뿐 아니라 스페인, 스위스, 이탈리아 등 여러 국가의 고속철도에 기반 기술을 제공한다. 고속철도는 단순히 빨리 가는 기차를 만드는 것이 끝이 아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철도망의 건설과 관리·유지 보수, 신호 체계의 설계와 제어 등 온갖 첨단 기술의 집약체이다. 

고속철도뿐 아니라 지역 내 시외 교통망, 도시의 지하철, 메트로와 트램 등 프랑스 시민들의 이동을 책임지는 SNCF는 철도 기술뿐 아니라 다양한 모빌리티에 투자한다. 일론 머스크의 초고속 진공튜브 캡슐열차 프로젝트인 ‘하이퍼루프(HyperLoop)’에도 투자한 바 있다. 

이와 정반대로, SNCF는 ‘​혁신의 걸림돌’​이라는 이미지 또한 가지고 있다. 

프랑스의 대중교통망은 놀랄 만큼 정교한 설계에도 불구하고, 잦은 파업과 이로 인한 연착·운행 중지로 악명이 높다. 프랑스 최대 공기업 중 하나인 SNCF의 노조는 공기업 노조의 맏형 격으로, 좌우를 막론하고 역대 정권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동시장 개혁을 시도할 때마다 총파업을 주도하며 반개혁의 선봉에 섰다. 

주 35시간 노동, 연간 5~10주에 달하는 유급 휴가 등 노동 친화적인 프랑스의 근로환경과 기업문화는 피고용인으로서는 부러울 따름이지만, 고비용 구조를 야기해 기업 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특히 SNCF는 440억 유로(58조 원)에 달하는 부채에도 불구하고 강성 노조의 투쟁으로 쌓아 올린 복리후생이 민간 기업을 압도한다. 

SNCF 노조는 2018년 마크롱 대통령이 부채를 줄이기 위해 추진한 연금 개혁 프로그램에 반대해 25년 만에 최대 규모의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대응해 시민들이 차량 공유 등 다양한 대안 이동 수단을 적극 활용한 결과 프랑스가 모빌리티 르네상스를 맞는 데 혁혁한 기여(?)를 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SNCF의 최대주주인 프랑스 정부와 경영진은 스타트업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 키워드는 데이터와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직·간접으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 외에도, SNCF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그들의 아이디어와 애자일(agile)한 기업 문화를 활용해왔다. SNCF 자회사들 가운데 승객 서비스의 전면(front-end)에 있는 Oui.SNCF와, 철도망을 관리하는 SNCF Reseau(철도망관리공사)가 그 두 축이다. 그리고 그 연결의 핵은 SNCF가 매일 1만 5000대의 열차로 1000만 명에 이르는 승객을, 총연장 3만 km에 달하는 철도망을 통해 수송·관리하면서 축적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이다.

SNCF의 자회사 Oui.SNCF는 전국의 철도망과 지역별 교통망을 연계해 다양한 수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지털 여행 플랫폼이다. 사진=SNCF 홈페이지


Oui.SNCF는 전국의 철도망과 지역별 교통망을 연계해 다양한 수송 서비스를 제공한다. 1200명 직원 중 600명이 개발자로, 그 자체로 상당히 큰 규모의 디지털 마케팅과 인터넷·모바일 개발 업체다. 단순히 교통편 예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여행 옵션을 통합하는 디지털 여행 플랫폼을 추구한다. 2016년부터는 ACT 574라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를 설립해 다양한 스타트업의 스케일 업(Scale-up)을 도왔다. 

Oui.SNCF가 스타트업에게 제공하는 가장 큰 수혜는 데이터 활용이 아닐까 한다. 2007년에 처음 선보인 Oui.SNCF의 모바일 앱은 프랑스에서 가장 활발히 사용되는 모바일 앱 중 하나로서, 시민들이 다양한 교통편을 예약함에 따라 매일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축적된다. 2016년 Oui.SNCF는 날씨 정보와 관련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Metigate라는 스타트업과 ACT 574를 통해 협업했는데, 이들은 SNCF의 데이터를 활용해 인공 지능 알고리즘을 테스트했다. 

이에 힌트를 얻은 SNCF는 그동안 축적한 고객들의 여행 패턴 정보를 300여 개의 데이터 패키지로 시스템화해,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 없이 외부 업체들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API를 제공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매년 데이터톤(Datathon)을 개최해 스타트업들이 SNCF의 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경쟁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Oui.SNCF가 디지털 마케팅을 위주로 하는 B2C 비즈니스라면, SNCF Reseau(철도망관리공사)는 철도망을 비롯한 인프라 관리를 위주로 하는 B2B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다. 산업용 IoT가 그 핵심이다. 가령 선로전환장치와 장비들에 센서와 액셀러로미터 등을 설치, 시설과 관련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여기에 인공지능을 결합하여 예측형 유지보수와 신호 용량 관리, 망감시(Network Monitoring) 등을 수행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16일부터 18일까지 파리에서 열리는 프랑스 최대 테크 컨퍼런스 ‘비바 테크놀로지’에 참여한 SNCF. 사진=SNCF 홈페이지


2017년 기욤 페피 SNCF 회장은 9억 유로(1조 20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한 ‘디지털 전략’을 발표할 때, 철도망 관리에 IoT 기술을 활용해 2020년까지 1억 유로의 효율화와 비용 절감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SNCF는 철도망을 통해 축적한 엄청난 데이터를 ‘데이터 랩’이라는 이름의 API로 정교하게 분리해 공개하고, Oui.SNCF와 함께 데이터톤을 통해 이 방대한 데이터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스타트업들에게서 찾고 있다. 

사내 벤처 창업도 적극 권장한다. 2017년 1월에는 20여 명의 직원들이 4년여 간 드론을 활용한 망관리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기반으로 ‘Altametris’라는 산업용 드론 업체를 창업했다. 이 회사 역시 핵심은 데이터로, 직원의 절반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고 한다. 

SNCF는 공기업으로서 감수해야 할 사회·정치적 난맥상 속에서도 스타트업과의 상생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 세계 최고의 혁신 기업이라는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그 핵심에는 공기업으로서 독점적으로 획득, 축적한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있다. 철도공사의 오픈 이노베이션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시장이자 플랫폼 역할을 하기에, 스타트업들로선 적극 뛰어들 가치가 있으며 투자 유치는 오히려 그다음이다. 

우리나라 공공 영역에서도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금전만 지원하는 소극적인 역할에 머무르거나 반대로 직접 선수로 뛰어들어 오히려 스타트업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비난을 듣기가 쉽다. 심지어 기관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베껴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소리까지 종종 들린다. 기관 혹은 공기업이라면, SNCF처럼 자신들이 확보한 데이터를 제공해 오픈 이노베이션의 장을 마련해보는 건 어떨까.

필자 곽원철은 한국의 ICT 업계에서 12년간 일한 뒤 2009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현재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 담당으로 일하고 있으며, 2018년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기재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이코노미포럼에서 유럽의 모빌리티 시장을 소개하는 등 한국-프랑스 스타트업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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