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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인쇄소가 디지털보안업체로 '진화'한 사연

19세기 창업한 오베튀르 인쇄소, 디지털보안회사 '오베튀르 테크놀로지' 변신 후 '아이데미아'로 커져

2019.06.13(Thu) 19:07:08

[비즈한국] 프랑스의 디지털 보안 기술 업체 오베튀르 테크놀로지(오버츄어 테크놀로지스)의 역사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트라스부르 출신의 프랑수아 샤를 오베튀르(François-Charles Oberthür, 1818-1893)가 1852년에 렌느에 설립한 오베튀르 인쇄소가 그 시작이다. 

 

현재 오베튀르는 2017년 5월 항공 방위 업체 사프란의 인증 및 보안 부문 자회사인 모포(Morpho)와 합병해 아이데미아(Idemia)로 재출범, 연 매출 30억 유로(3조 5000억 원)에 1만 4000명의 직원이 일하는 대형 다국적 보안 기술 기업이 되었다. 

 

디지털 보안 기술 업체 ‘아이데미아’는 19세기 설립된 오베튀르 인쇄소가 그 시작이다. 사진=아이데미아 페이스북


19세기의 인쇄소는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21세기의 디지털 보안 업체로 진화했을까? 

 

프랑수아 샤를의 아버지인 프랑수아 쟈끄 오베튀르는 석판화(lithography)의 발명자인 체코 출신의 독일인 알로이 제네펠더(1771-1834)의 동업자였다. 제네펠더는 원래 연극배우이자 극작가였는데, 자신이 쓴 대본을 싼 값에 대량으로 인쇄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물과 기름의 반발 작용을 이용한 석판화 기법을 발명했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연극을 그만두고 이 기술을 상업화할 방법을 찾아나선 제네펠더는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 지역 스트라스부르에서 인쇄업자 오베튀르를 만났다. 오베튀르는 제네펠더의 기술을 활용한 인쇄기를 만들었으나 당대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아들 프랑수아 샤를은 당시 인쇄업과 상업, 문화 예술이 한참 부흥하던 프랑스 서북부의 렌느로 이주하여 인쇄소를 차렸다. 발명자에게 직접 배운 기술과 사업 역량으로 무장한 그는 서부철도공사의 승차권과 시간표, 프랑스 최초의 전화번호부, 우체국 연감 등의 독점 공급권을 연이어 따내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의 오베튀르 인쇄소가 제작한 19세기 말 프랑스 철도 공사의 포스터와 시간표. 오베튀르는 다른 인쇄소들이 따라올 수 없는 정교한 컬러 인쇄물을 저렴한 가격에 대량생산해 19세기 말 프랑스의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사진=위키피디아


다른 인쇄소들이 따라올 수 없는 정교한 컬러 인쇄물을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던 오베튀르 인쇄소는 19세기 말 프랑스의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된다. 무선통신과 스마트폰의 보급이 21세기 사람들이 정보 소비 방식을 크게 바꿔가듯,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 즉 미디어의 혁신은 단지 그 기술 자체의 혁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다음 단계로 이끌어나가는 동력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오베튀르 인쇄소가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이다. 

 

프랑수아 샤를 오베튀르는 인쇄업뿐만 아니라 곤충학에도 대단한 열정이 있었다. 이는 두 아들 르네와 샤를에게 영향을 끼쳐 둘 다 유명한 곤충학자가 되었다. ‘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장-앙리 파브르도 동시대에 (약간 앞서) 활약한 것을 보면 당시 프랑스에서는 곤충학이 전문가와 아마추어를 망라하는 인기 장르였던 모양이다. 

 

오베튀르 형제는 학자로서의 업적뿐 아니라 곤충 표본 수집가로도 유명했다. 표본 중에는 다른 수집가들로부터 인수한 것도 있지만, 적지 않은 분량은 성직자들로부터 모은 것이라고 한다.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곤충을 수집해서 가져오면 그 대가로 자신의 인쇄소에서 찍어낸 성경책들을 나눠주곤 했는데, 입소문이 퍼지면서 유럽 전역의 산속에 퍼져 있는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온갖 희귀한 곤충을 모아왔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집단 지성 또는 한때 미케니컬 터크(mechanical turk)라고도 불렸던 크라우드 소싱(crowd sourcing), 내지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을 연상케 한다. 사업가의 아들답게 자신이 가진 자산을 (재력, 인쇄소, 학자로서의 명성 등)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업에 성공한 아버지로부터 이미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오베튀르 형제는 일생에 걸쳐 수집한 500만 종에 이르는 표본을 말년에 프랑스뿐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 등의 박물관에 골고루 기증했다.

 

다시 오베튀르 테크놀로지 얘기로 돌아오자. 20세기 초까지 첨단 인쇄 기술로 업계를 이끌던 오베튀르 인쇄소는 인쇄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경쟁력을 잃기 시작한다. 1980년대 들어 파산 위기에 처한 오베튀르는 1984년 BNP 은행에서 일하던 장-피에르 사바르(Jean-Pierre Savare)에게 헐값에 팔린다. 장-피에르 사바르는 달력 인쇄, 제본 등 전통적인 인쇄업 부문을 재빨리 정리하고 수표, 유가증권 등에 보안 코드를 인쇄하는 기술과 스마트카드에 자기장을 입히는 기술 등을 보유한 부문만을 살려 회사를 오베튀르 카드 시스템즈로 재탄생시킨다. 

 

오베튀르 인쇄소가 오베튀르 테크놀로지로 이름을 바꾼 2007년에 이미 스마트카드와 디지털 보안 칩의 글로벌 리더로 우뚝 섰고, 2017년 5월 인증 및 보안 회사인 모포(Morpho)와 합병해 아이데미아로 재출범했다. 사진=아이데미아 페이스북


이후 90년대를 거치면서 인터넷의 확장과 함께 디지털 보안 기술의 발전을 예측한 사바르는 영국, 스페인, 남아프리카와 스웨덴, 대만의 스마트카드와 보안 칩 개발 업체들을 인수하며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2007년 사명을 ‘오베튀르 테크놀로지’로 변경했을 때에는 이미 스마트카드와 디지털 보안 칩의 글로벌 리더로 우뚝 서 있었다. ​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술도 발명될 당시에는 세상을 바꾸는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 기술을 활용하여 사업을 일으킨 이들은 21세기의 창업자들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혁신가였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는 이러한 기술 창업 붐이 새로운 트렌드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일찍이 산업 기술과 금융업이 발달한 유럽에서는 △혁신적인 기술, △역경에 굴하지 않고 기업을 일으키는 창업가, △가치를 알아보는 벤처 금융 자본의 3박자가 조화를 이루어 위대한 기업을 만들어낸 역사가 수백 년에 달한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한국의 대기업들도 창업 당시에는 모두 스타트업이지 않았겠는가. 

 

다만 어느 기업이든 성공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창업 당시엔 혁신적이던 기술도 보편화되거나 더 나은 기술에 의해 대체되고, 처음에는 유연하고 창의적이던 기업 문화도 경직되어 가게 마련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너무 늦기 전에 버려야 될 사업과 발전시킬 사업을 간파하고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빠르게 대처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의 기업들이 21세기에도 살아남아 혁신을 이끌어 나가는 방식이다. 

 

필자 곽원철은 한국의 ICT 업계에서 12년간 일한 뒤 2009년에 프랑스로 건너갔다. 현재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 담당으로 일하고 있으며, 2018년 한-프랑스 스타트업 서밋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고 기재부 주최로 열린 디지털이코노미포럼에서 유럽의 모빌리티 시장을 소개하는 등 한국-프랑스 스타트업 교류에도 힘쓰고 있다.

곽원철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전략디렉터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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