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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국제학교 '인터내셔널 데이'에 느낀 진정한 글로벌

외국어 잘하고 많은 나라 다닌다고 되지 않아…소통과 공감 능력이 중요

2019.06.27(Thu) 18:04:24

[비즈한국] 며칠 전 아이 학교에서 ‘인터내셔널 데이’ 행사가 열렸다. 1년에 한 번, 학년 말인 6월 말경에 치르는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의 국적을 가진, 피부색도 모국어도 다른 다양한 문화권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함께 어울리며 국제학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축제다. 

 

그렇다고 학교에 속한 모든 나라 아이들이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행사 당일 누구나 와서 즐길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참여 의사를 밝힌 나라에 한해 부스가 설치되고, 부스에서 나눠주는 음식이며 놀이 및 문화 체험 프로그램, 아이들의 퍼포먼스 무대 등은 각 나라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준비하고 진행해야 한다.

 

학교의 연중 행사인 인터내셔널 데이 전경. 올해는 한국을 비롯해 서른 개가 채 되지 않는 나라의 부스가 설치됐다. 사진=박진영 제공


작년 한국 부모들은 부스를 설치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은 관계로 나는 온전히 행사를 즐길 수 있는 입장이었다. 나라별 부스를 돌아다니며 처음 접하는 전통 음식과 음료를 맛보기도 하고, 그 나라의 정보가 담긴 책자를 선물로 받거나, 아이와 함께 낯선 놀이문화도 체험하며 ‘국제학교’의 다양성을 실감했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밝히기로는 60개 이상 국가의 아이들이 속해 있지만, 작년에도 올해에도 부스를 설치한 나라는 30여 국가가 채 되지 않았다. 올해가 작년보다 약간 규모가 축소된 듯한 느낌이지만, 한국 부스가 설치됐고 준비한 음식이며 문화 체험, 케이팝 댄스를 비롯한 아이들의 퍼포먼스 무대 등이 성황리에 마무리된 덕에 관람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행사를 치르면서 느낀 점은 인터내셔널 데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작년과 올해, 상당히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뭐랄까, 작년엔 문화적으로도 익숙한 아시아의 몇 나라를 제외하곤 각 나라 부스를 돌아보며 약간은 신기하고 한편으로 공부하는 느낌이었다면, 올해는 하나같이 다 익숙했고 마음의 거리감도 사라져 있었다. 

 

각 나라별 부스에는 전통 음식을 포함한 각종 먹거리와 문화 체험, 아이들을 위한 놀이 체험 등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으며, 다 함께 서로의 음식과 문화를 나누며 즐기는 축제다. 사진=박진영 제공​


어느 새 이곳에서 2년의 시간을 보내고 2학년을 마치는 시점이라 나라마다 아는 얼굴도 많고 인사와 안부를 묻는 부모도 많고, 친한 부모도 더러 생긴 탓이리라. 오랜만엔 만난 이와 허그로 외국식 인사를 하고 서로의 음식을 나누고 아이들을 주제로 대화를 하다 보면, 더 이상 서로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고 그저 같은 ‘학부모’라는 공감대만 남을 뿐이다.

 

여전히 서툰 내가 이렇게 큰 차이를 느낄 정도인데 아이는 오죽할까. 올해 행사는 아이에게 그저 친구들을 만나 종일 먹고 뛰어노는 의미가 아니었다. 지난해, 행사 내내 한복을 입고 다니며 나라별 부스를 흥미로워했던 모습 대신,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음식을 골라 먹고,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각종 놀이에 심취했다. 네 나라 내 나라는 아이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다시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이 있었다. 글로벌이란 무엇인가. 

 

나도 그렇고 다른 많은 부모들 역시 아이들을 ‘글로벌 시민’, ‘글로벌 인재’로 키우고 싶어 한다. 한국은 교육 콘텐츠의 질이며, 학부모들의 열정, 아이들의 경험치가 이미 ‘글로벌’ 수준으로 올라섰다. 내 주변만 해도 ‘글로벌 인재’로서 싹이 보이는 아이들이 차고 넘쳤다. 세계 어디 내놔도 경쟁력이 있는 아이, 내가 생각했던 ‘글로벌’이란 아마도 그 수준에 멈춰 있었다. 

 

무대 위 퍼포먼스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순서는 퍼레이드로 아이들은 자기 나라의 전통 의상 등을 입고 국기를 흔들며 입장한다. 사진=박진영 제공​


베를린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자꾸 되묻는다. 세계적 수준의 교육을 받고, 외국어에 능하고, 해외 경험이 많다고 해서 ‘글로벌’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우리 아이는 이제야 비로소 조금 ‘글로벌’해진 게 아닐까. 

 

한국어만큼 영어에 익숙해서도, 초보 수준이지만 독일어를 구사할 줄 알아서도, 또래 한국 아이들에 비해 다양한 나라를 많이 다녀봤기 때문도 아니다. 아이는 본인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지만, 매번 상기할 필요가 없기도 하다. 친구들의 국적은 너무나 다양하지만, 친구는 그저 친구일 뿐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이는 다양한 나라의 친구를 사귀며 자연스레 그 나라에 대해 접하고 배운다.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아이, 내전 중인 나라에서 온 아이, 미국인 엄마와 인도인 아빠를 두었지만 딱 봐도 미국 감성이 강한 아이, 전 세계에서 키가 가장 크다는 네덜란드에서 온 ‘키다리’ 친구…. 수많은 아이들이 있지만 교실 안에는 그 어떤 편견도 이질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반에 16개국에서 모인 24명의 아이가 매일 함께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작은 지구촌’이다.

 

나라별 특색이 드러나는 퍼포먼스를 통해서도 아이들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자연스레 접한다. ​사진=박진영 제공​


아이의 생각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는 일화는 또 있다. 국제학교 특성상 매년 새로 오는 친구, 본국으로 혹은 다른 나라로 떠나는 친구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지난해 친구들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던 아이는 올해 절친들이 대거 떠나는 사태에도 불구하고 슬픔이 덜해졌다. 또 만날 날이 있는 거라고 위로하는 나에게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언제든 연락하면 되잖아. 암스테르담도 부다페스트도 가서 만나면 돼. 일본은 한국에서 가까우니까 진짜 자주 볼 수도 있겠다.”

 

나라와 나라, 대륙과 대륙의 경계가 아이의 마음속에선 사라진 듯했다. 사람도 문화도 ‘공부’로 접하지 않고 삶 속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것, 이런 게 진짜 글로벌 아닐까.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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