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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베를리너의 '베를린 여행객처럼' 살아보기

익숙함에 밀려난 유럽살이의 설렘…남은 1년을 후회 없이 보내는 방법

2019.08.22(Thu) 11:15:20

[비즈한국] 8월 초를 기점으로, 베를린에서 예정된 시간 중 3분의 2가 지났다. 이변이 없는 한, 내년 이맘때쯤에는 서울에서 이 순간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베를린을 뒤로하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많은 이들이 눈물을 훔치며 떠난다던데, 그게 혹시 내 모습이 되지 않을지. 한국을 떠날 때 “독일 가기 싫다”며 울던 아들이 이제는 “한국은 좋지만 계속 베를린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는 회수가 잦아지는 걸 들을 때면 역설적으로 돌아갈 때가 가까워짐을 느낀다.

 

매일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 들뜬 분위기를 연출하는 박물관 섬. 사진=박진영 제공
매일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 들뜬 분위기를 연출하는 박물관섬. 사진=박진영 제공


7월 초, 베를린에서 1년살이를 끝낸 지인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가며 이런 인사를 남겼다. 

 

“매일 열심히 살았는데도 못한 것만 생각나네요. 시간이 더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베를린에서 남은 시간 소중하게 잘 보내세요.” 

 

귀국하는 사람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듣는 식상한 말이지만, 나도 1년 남짓 남은 시점이라 그 말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이곳의 삶이 원래부터 내 것인 양 편안하고 익숙해져 설레는 감정이 없어진 터였다. 3년 유럽살이를 시작할 때의 흥분과 떨림, 창밖 풍경만 봐도 동네만 걸어도 들뜨던 마음은 어디 갔는지.

 

크고 작은 행사와 이벤트 일정을 체크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참여하거나 구경했다. 사진은 베를린 비어 페스티벌(위)과 한 스포츠 브랜드 주최로 열린 인라인 스케이트 대회 모습. 사진=박진영 제공


주어진 시간이 3년이 아니라 1년이었다면, 아니, 한 달이었다면 어땠을까. 훌쩍 한 달 살기를 하러 떠나는 이들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었는지 떠올리니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이러다가 귀국 시점이 돼서 마음은 급하고 시간이 없는 황당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농담 반 진담 반, 3년 중 1년 6개월은 정착하고 나머지 1년 6개월은 귀국 준비한다는데, 나머지 1년 6개월엔 지난 시간에 대한 점검과 반성, 나머지 시간에 대한 계획도 포함된 것이리라.

 

마침 아이의 여름방학 시작과 맞물리면서 ‘베를린 한 달 살기’를 하러 온 사람의 마음으로 이번 방학을 보내리라 결심했다.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이유로 미뤘던 장소들에 가보는 것은 물론이고, 쇼핑처럼 온라인으로 해결하던 것들을 가능하면 밖에서 그것도 낯선 장소에 가서 경험해보는 것, 관심사 밖이라며 지나쳤던 것들에 눈길을 주고 모험해보는 것, 점찍어둔 동네 레스토랑을 하나하나 찾아가보는 것, 우리 동네부터 골목골목 무엇이 있는지 탐험해보는 것, 언제든 맘 편히 앉아 책 볼 수 있는 아지트 카페를 만드는 것, 매일 다니던 길이며 풍경들도 새로운 눈으로 찬찬히 자주 바라다보는 것, 날이 덥든 비가 오든 베를린의 여름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어떤 식으로든 기록하고 기억하며 늘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 등등. 마음을 달리하고 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로 베를린 생활이 새로워진 듯했다.

 

녹지가 풍부한 베를린에서는 공원이야말로 베를린의 자유분방한 감성을 느끼기에 최적의 장소다. 사진은 박물관섬 인근의 제임스 시몬 파크. 사진=박진영 제공


일주일 단위로 아이와 함께할 장소를 고르고 동네 산책 코스를 정하는 등 하루도 빠짐없이 충실하게 ‘한 달 살기’처럼 살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나의 이런 마음을 도저히 알 길 없는 아이는 방학인데 좀 쉬어야 하지 않느냐고 투덜거리거나, 가는 곳마다 ‘새롭게’ 의미를 달며 설명하는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한 달 살기’로 못 박았지만, 실제로 남은 시간은 한 달이 아닌 탓에 마음이 나태해지는 순간이 오면, 관광객들이 몰리는 장소를 일부러 찾아갔다. 순간을 더없이 소중하게 만끽하는 그들을 보는 것 자체로 감사의 마음이 절로 솟았다. 누군가에겐 평생 한 번일 광경을 매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채찍질했다.

 

동네 투어를 하면서 반드시 끼워 넣었던 아이스크림 가게. 1일 1아이스크림으로 여름을 만끽했다. 사진=박진영 제공


그렇게 아이와 함께 7월부터 지금까지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목표했던 것들을 하나씩 채워나갔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면 자취를 감추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열심히 들락거렸고, ‘다음에’ 가보자던 박물관과 갤러리를 찾아다녔으며, 이런저런 이유로 기피하던 골목이며 동네들을 머뭇거리지 않고 탐험했다. 물건 하나 사러 일부러 먼 길을 돌아 새로운 곳에 가봤고, 동네 레스토랑이며 카페들을 열심히 발굴하며 우리만의 별점도 매겼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1일 1회 동네 산책을 할 땐 가능한 새로운 코스를 돌았고 집 근처 공원에 하염없이 앉아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베를린 한 달 살기’는 미완이다. 주중에 12시부터 4시까지만 문을 연다는 동네 문학카페도 가보지 못했고, 베를린 근교에만도 넘친다는 캠핑장들을 구경도 못해봤고, 관광객도 다 가는 독일 연방의회의사당 유리돔에도 올라가보지 못했다.

 

이곳이 베를린이 아니라 서울이라 해도 ‘한 달 살기’처럼 살아본다면 조금은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사진=박진영 제공


다행인 것은 이제 ‘한 달 살기’처럼 살면 하루가, 일주일이 얼마나 풍요로워지를 깨달았다는 점이다. 1년이 남지 않은 시간이 지난 2년여보다 기대되는 건 그래서다. 더불어, 이곳이 베를린이 아니라 서울이라 해도 ‘한 달 살기’처럼 살아본다면 조금은 다르게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게 가능할지는 돌아가봐야 알겠지만.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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