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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기업' LG 강 드라이브 속사정

구광모 체제 "성장 동력 절대 놓치지 않겠다" 강한 의지…잇단 소송으로 '내부 결속' 분석도

2019.09.27(Fri) 14:42:09

[비즈한국] LG는 재계에서도 알아주는 ‘양반’ 기업이다. 경쟁사를 헐뜯거나 모략을 사용하기보다, 2위를 지키더라도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 경영 스타일로 잘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재계의 ‘쌈닭’으로 거듭나고 있다. 

 

LG전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를 둘러싸고 삼성전자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고, LG화학은 배터리 영업비밀을 유출했다며 SK하이닉스를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미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LG전자는​ 또 24일(현지시각)에 ‘도어 제빙’ 특허기술을 침해했다며 아르첼릭·베코·그룬디히 등 유럽 가전업체 3곳을 독일 뮌헨 지방법원에 제소했다. 구광모 LG 회장이 취임한 지 1년여 만에 달라진 변화다.

 

구광모 회장(사진) 취임 1년 만에 LG가 ‘싸움닭’으로 변했다. 그 뒤에는 세대 교체와 인적 쇄신 목적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조용했던 LG가 전란을 일으키는 것을 두고 재계 안팎에서는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현재 가장 힘을 얻는 분석은 세대 교체와 인적 쇄신 목적이다. 

 

LG는 지난해 5월 구본무 회장이 갑작스레 타계하면서 경영 리더십에 위기를 맞았다. 구광모 회장은 일찌감치 후계자로 지목됐으나 경영권을 물려받을 만한 성과를 올리지도, 그룹 조직을 장악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사실상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기아차 총괄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맞물려, 자기 시대를 열 가신 그룹을 일제히 발탁했다. 이 과정에서 선대 회장의 측근과 마찰이 불가피했으며, 기존 임원들의 남은 임기와 사업부별로 현재 진행 중인 사업 등과 맞물려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정의선 부회장의 경우 2016년 경영 전면에 등장했는데, 올 초 인사에서야 인적 쇄신을 마무리했다.

 

LG는 올 초 구본준 부회장이 LG전자 등기이사직을 사임하는 등 일선에서 물러나며 구광모 회장으로의 세대 교체 신호탄을 쐈다. 그러나 여전히 LG전자·LG디스플레이 등 핵심 계열사 주요 임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구 회장은 아직 후속 인선의 밑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생존을 위한 내부 혈투가 벌어지며 주요 임원들은 단기 성과주의에 몰입하는 상황이다. 단기 실적에 대한 압박이 하부 조직으로 내려가며, 그룹 전체 분위기가 악화되고 있다. 여러 직장인 커뮤니티의 전자와 석유·화학 게시판에는 경쟁사로 이직을 희망하는 LG 직원들의 게시글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LG는 경쟁사들에 비해 급여는 낮은 편이지만, 업무 압박이 적고 가족적 분위기의 회사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근 상부의 압박이 고조되며 이직 러시가 늘어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LG화학 직원들이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이직한 것도 회사 분위기의 급격한 악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업무 부담이 구조조정 기류와 맞물려 회사의 활력을 더욱 떨어트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권영수 부회장이다. 권 부회장은 구 회장의 측근으로서, 인적 쇄신과 사업체제 개편을 주도하고 있다. 재무통인 권 부회장은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숫자로 경영 실적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인적 쇄신과 사업체제 개편을 주도하는 것은 구광모 회장의 측근 권영수 부회장이다. 2017년 12월 LG유플러스의 'U+우리집AI' 출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권영수 부회장. 사진=박정훈 기자

 

조직이 위기를 맞으면 리더의 장악력이 공고해진다. 내부적 결속을 다지고 인적쇄신을 단행할 힘이 생긴다. LG가 리더십의 전환 속에 전방위 소송전에 나서는 것도 경영난을 명분으로 앞세우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구광모 회장은 후계자로 지목된 뒤에도 경영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으며, 이렇다 할 경영성과를 내지 못했다. 구본무 회장의 타계 이후에야 전면에 등장했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주주와 임직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그에 걸맞은 성과를 올려 명분을 확보해야 한다. 

 

1998년 회장에 오른 최태원 SK 회장도 하이닉스 인수가 성공적 결과로 이어지고 나서야 그룹 내에서 카리스마를 확보했다. 정의선 부회장도 K시리즈 등 기아차에서의 성공을 자산으로 경영권 확보 및 모빌리티 등 미래차로의 전환 동력을 확보했다. 

 

아직 성공담을 쓰지 못한 구광모 회장으로서는 위기의 LG를 구해낸 CEO로서 자신의 역량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최근의 잇단 소송전과 전자·배터리·디스플레이 등 핵심 사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소송 등을 통해 판을 흔드는 한편,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필요가 크다.

 

LG디스플레이 등은 연말 대규모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어 올해 재무적으로 큰 실적 악화가 예상되나, 기저효과 등에 힘입어 내년 실적이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 구광모 회장의 성공 스토리를 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LG는 실제 위기 상황이기도 하다. 그간 배터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했지만, 전기차 시장 확대와 더불어 삼성SDI·SK이노베이션 등 경쟁사들의 추격을 허용했다. 최근에는 히타치케미칼 인수를 선언한 롯데케미칼에게도 뒤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번졌다.

 

TV도 OLED 분야에서 경쟁 우위를 지켜왔으나, 삼성전자의 QLED 등에 시장지배력을 뺏길 가능성이 제기된다. LG디스플레이는 이미 중국 BOE 등에 LCD 패널 세계 1위 자리를 넘겨줬고, 차기 먹거리를 찾는 데 분주하다. 

 

이에 최근 소송전은 자신의 성장 동력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LG는 국내 최초 가전회사이지만, 후발 주자 삼성전자에게 자리를 뺏겼다. 신규 사업을 개척하고도 경쟁사에 뺏기는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며 “요즘 벌어지는 산업 전환 속에 자칫 자리를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과 리더십 변화가 LG의 최근 행보와 맞물려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김서광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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