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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이재용 국정농단 재판부 '엉뚱한' 질문에 담긴 뜻

"총수 역할" 이어 "뇌물 피할 방법" '숙제'에 '감형 신호' 해석…법원 내 찬반 엇갈려

2019.12.16(Mon) 15:01:38

[비즈한국] “다른 정치권력으로부터 (뇌물을) 요구받을 때 공여할 것인지 삼성그룹 차원에서의 답을 제시해달라.” (정준영 부장판사, 지난 6일 공판 중)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기자’들이 할 법한 질문을 한 것은, 다름 아닌 파기환송심 재판부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사건 관련, 유무죄를 다투는 차원이 아니라 삼성그룹에 ‘과제’를 준 것. 재판부의 이런 수상한 질문은 6일이 처음이 아니었는데, 자연스레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피해자’ 주장을 받아주려는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사건의 본질이 아닌 것을 재판부가 양형에 반영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오지만, 반대 측에서는 “정경유착의 본질적인 시스템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하는 것도 사법부의 역할일 수 있지 않냐”는 반론도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6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관련 파기환송심 3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두 달 전 이어, 6일에도 또 ‘이색 과제’

 

파기환송심을 맡고 있는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지난 6일 오후 진행된 이 부회장 3회 공판기일에서 “피고인들은 정치권력의 거절할 수 없는 요구에 의한 뇌물 공여라는 주장을 계속 펼치고 있다”며 “향후 또 다른 정치권력에 똑같은 요구를 받을 때 뇌물을 공여할 것인지 아니면 뇌물 요구를 받더라도 기업이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삼성그룹 차원의 답을 다음번 기일까지 재판부에 제시해달라”고 과제를 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요구받은 뇌물을, 다른 정치권력에게는 어떻게 주지 않을 것인지 그룹 차원의 대안을 가져오라 한 것이다.

 

더구나 이번이 처음이 아닌 탓에 법원 내에서는 정준영 부장판사의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두 달 전인 지난 10월 25일 첫 공판 기일 때는 재판 진행 도중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의 이건희 회장은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사업을 질을 높이자는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삼성그룹 총수(이재용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라”고 요구한 바 있다. 

 

당시에는 “국내외 각종 도전으로 엄중한 시기에 총수가 재벌체제 폐해를 시정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라며 “심리기간 중에도 당당하게 기업 총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길 바란다”는 응원 섞인 당부도 덧붙였다.

 

#“재판 결과 가늠할 수 있어 부적절” VS “본질 개선해야” 

 

일반적인 형사 재판에서 판사가 피고인에게 ‘과제’를 제시하는 것은 흔치 않고, 게다가 모두가 주목하는 재계 1위 대기업 집단인 삼성그룹 총수 이재용 부회장을 향한 ‘경영 방침’ 질문에 법원 내에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형사 재판은 지은 범죄 혐의의 사실 관계를 판단한 뒤 고의성 등 죄질을 고려해 양형을 하는 것인데, 이재용 부회장 재판의 경우 재판장이 감형을 위해 삼성에 ‘유리한 요인’을 만들어 오라고 숙제로 내주는 것 같다”며 비판했다. 판사 출신 변호사 역시 “반성문을 써오는데, 구체적으로 대안을 적시한 반성문을 써오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뇌물 제공이라는 본질적인 혐의와 관계없이 이건희 회장을 언급하며 경영 부분을 훈계한 것 역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사법부의 역할을 고민한 것이 아니겠냐는 반론도 적지 않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한 바 있는 한 법조인은 “수십 년 동안 정치권이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아가는 것은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문제였다”며 “적어도 이재용 부회장이, 재계 1위 그룹이 그런 대안을 공개된 법정에서 사법부에 밝힌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깨끗해 질 수 있지 않겠냐”고 평가했다. 하나의 범죄를 통해,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신호(시그널)를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잇따른 재판부의 ‘과제’ 하달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양형에 유리할 것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특수통 검사는 “기업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점, 이 부회장 측 주장대로 기업을 ‘피해자’로 보고 그에 맞는 과제를 제시한 점 등을 감안할 때 ‘향후 뇌물 등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는 개선 의지를 확인했다’는 문장과 함께 감형을 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 

차해인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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