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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향후 소송하지 않겠다"는 합의서, 무조건 통하지 않는 이유

'진정한 의사 합치' 이뤄졌는지가 쟁점…협의 내용 증거로 남기고 같은 양식 재사용 지양해야

2020.01.02(Thu) 13:38:19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아두면 모 있는 즈니스 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법률분쟁이 발생하면 당사자들이 합의서를 작성함으로써 분쟁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합의서에는 보통 향후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조항, 비밀유지 조항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합의서의 문언만 보면 일방 당사자가 합의 내용에 불만이 있더라도 합의를 무효로 돌리거나 새로운 법적 조치에 착수할 수 없다.

 

민·형사 절차에서 합의서는 매우 중요하게 취급된다. 합의서에 향후 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하는 부제소 특약이 규정돼 있다면, 법원은 새로 접수된 사건에서 각하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 또한 피해자의 처벌 의사 없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의 경우, 검사는 합의의 존재를 이유로 새로운 형사고소 건에서 공소권 없음의 처분을 내려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의 규율을 받는 거래는 합의서가 당사자들 간 진정한 의사 합치에 의해 작성됐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한 문서에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직인이 찍힌 문서 사진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이종현 기자


그러나 거래상 지위의 격차가 있는 당사자들 간의 거래, 즉 공정거래법의 규율을 받는 거래는 사정이 다르다. 이러한 거래에서는 현실적으로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상대방의 요구를 수락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합의서가 당사자들 간 진정한 의사 합치에 의해 작성됐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유형의 거래로는 백화점과 납품업자(대규모유통업법 적용),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하도급법 적용), 가맹본부와 점주(가맹사업법 적용), 본사와 대리점(대리점법 적용) 간 거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공정위는 위와 같은 사안에서 경제적 이해관계, 거래 관행, 합의서 작성 경위 등을 고려해 합의서의 효력을 부정하는 경우가 있다. 주요 사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H 사는 대규모유통업법 위반행위 건에서 판촉비용 합의서를 작성했으니 판촉비용 분담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해당 합의서는 사후에 H 사가 일괄적으로 작성해 납품업자들에게 서명날인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체결됐으므로 납품업자와의 사전 협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공정위 2016. 7. 20. 의결 제2016-221호). 

 

또 S 사는 거래상 지위 남용행위 건에서 시공사와 합의서를 작성하였으므로 시공사에 환수 이자를 징수한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위 합의서는 대등한 관계에서 합의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공정위 2017. 3. 15. 의결 제2017-090호).

 

공정위가 제시한 이유는 이렇다. 첫째, 정상적 거래 관행 및 통상 대등한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한 거래라면 일방이 아무런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계약조건을 받아들일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합의서는 환수 당일에서야 작성되어 대등한 관계에서 합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셋째, 시공사와의 합의 내용과 관계없이 이미 자신의 내부 방침에 따라 시공사로부터 합의서를 요구하기로 했다.

 

공정거래법의 규율을 받는 거래로는 백화점과 납품업자,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가맹본부와 점주, 본사와 대리점 간 거래 등이 있다. 한 백화점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고성준 기자


마지막 사례로 N 사는 불공정거래행위 건에서 납품업자와 사전에 조건을 변경하는 계약서를 작성했으므로 판매장려금을 징수한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일반적으로 납품업자들은 대규모 소매업자와의 거래상 지위의 차이로 대규모 소매업자의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납품업자가 스스로 판매장려금 신설에 동의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N 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공정위 2011. 1. 6. 의결 제2011-004호). 

 

합의서가 작성됐는데도 다시 법률분쟁이 발생하는 모습은 이례적이고 어색하다. 그러나 최소한 공정거래법이 적용되는 영역에서는 합의서가 작성됐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는 것이 정당화되지 않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정거래법은 일반 민·형사와 다른 특수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합의서까지 작성해주었음에도 새로운 법률분쟁에 휘말리는 일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에서 본 공정위의 판단 내용과 같이 합의서 작성 전 상대방과 개별적으로 협의한 내용을 증거로 남겨두고, 일방 당사자에게 불리한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합의 문언은 지양해야 한다. 또 여러 상대방과 합의하면서 같은 양식을 활용하는 방식은 피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합의서의 유효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합의서 작성 과정에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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