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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한국인입니다' 신종 코로나로 맛본 아시아 혐오

아시아인과 친하게 지내는 독일인마저 기피 대상…원래 있던 인종차별이 표면화된 것 아닌가 생각하니 씁쓸

2020.02.06(Thu) 10:54:43

[비즈한국] 요새 한국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잦다. 내용은 공통적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유럽 내 인종차별이 심해지고 있다는데 괜찮냐’는 것. 그렇다. 여기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보다 동양인에 대한 혐오와 인종차별 때문에 불편하고 불쾌하고 공포스럽다. 오죽하면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교민들에게 ‘동양인에 대한 혐오 등으로 신변 위협이 커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공식적인 안내문까지 냈을까.  

 

2월 5일 현재까지 독일 내 감염자는 12명. 그 중 10명이 우한에서 온 부모님과 접촉 뒤 상하이에서 출장을 온 중국인과 비즈니스 차 만났던 같은 회사의 직원 또는 가족들이고 나머지 두 명은 우한에 살다 이번에 귀국한 교민들이다. 지역사회 감염이 없고 상태 또한 위중하지 않은 터여서 유럽 내 감염자 수가 가장 많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표면적으로’ 많이 드러나 있지 않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공항에서도 안내문 하나 붙어있는 게 전부다.

 

베를린의 한 관광지 인근 생활용품 마켓에서 판매되는 마스크. 독일에선 마스크를 쓰면 중증 환자 취급을 당해 마스크를 쓰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온라인 마켓 등에서 마스크가 품절인 걸 보면 다들 눈치 보면서 대비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진=박진영 제공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저기 기사를 통해 보도되는, 진짜 신변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동양인 혐오와 인종차별 뒤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만’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다른 건 몰라도 독일 내에서 꾸준히 세를 확장하는 극우정당의 성장과 무관치 않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극우 세력의 확장은 반(反)난민, 반(反)이슬람을 넘어 반(反)이민으로까지 이어져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있기 전에도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사례가 적잖게 있었기 때문이다. 기저에 깔린 동양인에 대한 무시와 혐오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국면을 맞아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이 불러온 인종차별 얘기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으면서 뒤로는 동양인은 모두 잠재적 바이러스 전파자라도 되는 것처럼 기피하고 경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도 숱하게 있다.

 

친하게 지내는 독일 친구는 우리 가족을 포함한 아시아인과 가깝게 지낸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독일 친구들로부터 만남을 거절당하고 있다고 했고, 한국인 지인들도 버스, 카페, 마트에서 크고 작은 불쾌한 상황을 겪는 중이다. 길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유난히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아진 건 불쾌한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다. 누구 말마따나 ‘나는 중국인이 아닙니다. 한국인입니다’라는 표지라도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인지. 한편으론 한국인인 걸 안다 한들 크게 달라질까 싶기도 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도 불똥이 튀었다. 국제학교에는 적잖은 중국 학생들이 다니는데, 1차적으로 이들이 경계 대상이 되었고 2차적으로는 한국 아이들이, 중국과 가깝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피해를 보고 있다.

 

몇몇 엄마들은 학교에 12월 중순부터 1월 초까지의 3주 방학기간 중 고향인 중국에 다녀왔거나 중국에 있는 가족들이 베를린을 방문했는지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황당해하는 나에게 독일 친구가 말했다. “다들 코로나 바이러스가 무서워서 그래.” 또 다른 독일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독일에서만 매년 독감으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죽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만 무섭나? 그렇게 치면 독일 내 감기 바이러스가 더 위험한데!”

 

얼마 전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 신종 코로나 관련 동양인 혐오 및 인종차별이 심해지고 있어 각별한 주의를 요하는 내용이다. 사진=박진영 제공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 또한 같은 반 동양인에게 바이러스 어쩌고 하면서 놀리거나 경계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한 한국인 부모가 학교 측에 강력히 항의하면서 교사들이 나서 상황을 설명하고 정리하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교내에서 친구를 대하는 차별적 언행이나 태도가 사라지지 않았다. 아이와 같은 반인 독일인 친구는 아이와 마주치자 손을 뒤로 감추는 일도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한국이 중국과 가깝다는 이유로 “너랑 좀 떨어져 앉을게”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때로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강경한 발언도 하는 등 잘 대처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런 일들을 그것도 학교 안에서 겪어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아이들의 그런 행동이 부모의 생각이나 행동에서 비롯됐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그렇다. 학교에서 만나는, 여전히 친절한 많은 외국인 부모들의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들을 만날 때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이런 생각은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꺼려지니 그 또한 문제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가 기침만 해도 불똥이 튈까 조심조심하는 분위기다.

 

열흘 뒤 일주일간의 방학이 시작되는데 대부분의 지인들은 여행 계획을 아예 잡지 않거나 취소를 고민 중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인종차별 사례가 더 심해지는 탓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바꿔버린 일상, 언제쯤 되찾을 수 있을까.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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