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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허블 법칙'의 진짜 주인은 허블이 아니다?!

천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법칙에 숨어있는 저작권 논란의 진실 공방

2020.02.18(Tue) 12:00:09

[비즈한국]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으로 비영어권 작품으로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네 개의 상을 휩쓸면서 큰 화제가 됐다. 가장 보수적인 시상식으로 여겨졌던 아카데미의 높은 장벽을 처음 넘어섰다는 데에 많은 이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시상식 직후 이 멋진 작품에 누가 가장 많이 공헌했는지를 두고 소소한 논쟁이 펼쳐졌다. 감독이 아닌 제작자가 수강 소감을 이야기한 것이나, 초대받아 파티에 참석했을 뿐인 출연하지 않은 배우가 등장한 것을 두고 작은 소란이 인 것. 위대한 성취나 발견에는 누가 가장 먼저 발견했는지, 누가 가장 많이 공로를 인정받아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곤 한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법칙에도 이와 같은 저작권 논란이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영화 ‘기생충’에는 감독뿐 아니라 많은 스태프와 연기자, 영화가 국제무대에 소개되도록 도운 실무자들의 공로가 함께 녹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밖에 없는 현대 사회의 거대한 프로젝트에는 서로의 성과 기여도를 두고 소소한 잡음이 나오어지기도 한다. 과학 연구 현장도 마찬가지다.

 

#‘스타 천문학자’ 허블 

 

1929년 우주의 시공간이 팽창함을 암시한 역사적인 논문을 발표하기 전부터 허블은 안드로메다은하까지의 거리를 새롭게 밝혀내어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인물이다. 허블의 놀라운 발견 덕분에 비로소 인류는 안드로메다가 우리 은하 안에 있는 작은 가스 구름이 아니라, 우리 은하 바깥 머나먼 곳에 떨어져 있는 별개의 은하계임을 알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허블의 놀라운 발견이 세상에 발표된 1924년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별개의 항성계를 지칭하는 은하(Galaxy)라는 말이 쉽게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은하라는 표현은 그저 우주 전체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많이 인식되었다. 

 

실제로 안드로메다가 성운이 아닌 별개의 독립된 은하임을 발견한 허블 본인조차 평생 은하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여전히 관용적으로 사용하던 성운이라는 표현을 꾸준히 썼다. 작은 가스 구름 덩어리를 지칭하는 성운이라는 표현과 별개의 항성계를 의미하는 은하라는 표현이 구분되지 않고 한동안 뒤섞여 사용되었던 셈이다. 

 

에드윈 허블은 학자로서의 뛰어난 업적과 함께 미디어 친화적인 사교성으로 인해 유명한 인기 천문학자였다. 1940년 10월 24일 헌팅턴 도서관에서 만화가 월트 디즈니(왼쪽)와 허블(가운데), 생물학자 줄리안 헉슬리(오른쪽)가 함께 공룡 모형을 들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허블은 과학자뿐 아니라 당대 유명했던 연예계 인물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사진=Huntington Digital Library

 

이미 스타 천문학자였던 덕분에 당시 허블이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윌슨산의 후커 망원경(Hooker Telescope)을 가지고 또 다른 새로운 발견을 했다는 소식은 당연히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작 허블보다 먼저 은하들의 후퇴 현상을 이야기한 다른 선구자들의 이름은 기억에서 잊히게 되었다. 

 

그런 탓에 꽤 최근까지 우리는 먼 은하들이 더 빠른 후퇴 속도를 보이며 우주의 팽창을 암시한다는 이 멋진 법칙을 단순히 ‘허블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허블보다 먼저 은하들의 움직임을 발견한 슬라이퍼 

 

1909년 미국 애리조나에 위치한 로웰 천문대(Lowell observatory)에서 근무하던 젊은 천문학자 베스토 슬라이퍼(Vesto Melvin Slipher, 1875~1969)는 밤하늘에서 소용돌이치는 듯한 독특한 모습을 한 나선 성운의 스펙트럼을 관측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당시 그는 천문대에 설치되어 있던 24인치 굴절 망원경에 자신이 직접 만든 최신 장비를 이용해 1912년 9월 가장 선명한 안드로메다 성운의 스펙트럼을 얻었다. 

 

가장 처음으로 은하들의 적색편이를 발견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천문학자 베스토 슬라이퍼.

 

슬라이퍼는 자신이 촬영한 안드로메다 성운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아주 놀라운 결과를 확인했다. 아직 안드로메다를 비롯한 이런 천체들은 모두 우리 은하 안에 있는 가스 구름인 성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슬라이퍼가 관측한 안드로메다 성운의 스펙트럼은 파장이 짧은 푸른 쪽으로 아주 뚜렷하게 치우친 청색편이를 보였다. 이는 안드로메다 성운이 지구를 향해 약 300km/s에 달하는 아주 빠른 속도로 돌진해오고 있음을 의미했다.  

 

안드로메다 성운이 우리 은하의 중력에 붙잡혀 있다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없다. 진즉 우리 은하의 중력의 영향에서 멀리 벗어나 있어야 했다. 슬라이퍼는 안드로메다 성운이 어쩌면 우리 은하와는 전혀 상관없는 먼 거리에 떨어진 별개의 우주일지 모른다는 엄청난 상상을 하기에 이른다. 

 

M51 소용돌이 은하의 모습을 과거 천문학자들이 그림으로 기록한 모습. 당시 천문학자들은 이런 독특한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한 은하들이 우리 은하 안에 포함되어 있는 작은 가스 구름인지, 우리 은하 바깥에 떨어진 독립된 개별 천체인지를 두고 긴 논쟁을 펼쳤다. 사진=William Parsons, Observations on the Nebulae,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140, 499-514(1850)

 

그는 자신의 놀라운 관측 결과를 근거로, 당시까지 우리 은하가 우주의 전부라고 여기고 있던 거대한 은하(Big Galaxy) 가설에 의문을 던졌다. 슬라이퍼는 우리 은하 바깥에 또 다른 은하계들이 망망대해의 작은 섬처럼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을 것이라는 섬 우주(Island Universe) 가설에 힘을 실었다. 아쉽게도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를 직접 계산한 것은 아니었지만, 슬라이퍼의 발견은 이후 다른 천문학자들이 섬 우주 가설을 입증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주었다.[1] 

 

“오래전부터 나선 성운들은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별개의 항성계로 의심되었다. 이것을 ‘섬 우주’ 이론이라고 하는데, 이 이론에서 은하수는 우리가 이런 거대한 항성계 안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나는 이 이론이 현재의 관측 결과에 가장 잘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슬라이퍼가 근무하던 직후 로웰 천문대의 모습을 기록한 역사적인 기록 영상. 슬라이퍼의 이름을 딴 ‘슬라이퍼 빌딩’도 영상에 기록되어 있다.

 

#먼 은하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진다

 

안드로메다의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한 이후, 슬라이퍼는 계속해서 다른 나선 성운들의 스펙트럼을 관측했다. 그는 총 25개의 나선 성운을 관측해 그중 네 개를 제외한 다른 21개 성운들이 빛이 더 파장이 길어지는 뚜렷한 적색편이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가 측정한 적색편이의 정도를 보면 이 나선 성운들은 대략 150~1000km/s에 이르는 아주 빠른 속도로 거리가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25개의 은하들의 스펙트럼을 통해 추정한 후퇴속도를 정리해놓은 슬라이퍼의 논문 일부, 표에서 속도가 +로 표시된 은하들이 적색편이를 겪는 은하들이며, 속도가 –로 표시된 4개의 은하들은 그 반대인 청색편이를 겪는 은하들이다.

 

슬라이퍼의 이런 놀라운 관측 이후에도 다른 많은 관측 천문학자들이 뒤이어 주변 나선 성운(은하)들의 스펙트럼을 분석했다. 독일의 천문학자 카를 비츠(Carl Wihelm Wirtz, 1876~1939), 스웨덴의 천문학자 크누트 룬드마크(Knut Lundmakr, 1889~1958)도 각각 1924년과 1925년에 걸쳐 독립적으로 다양한 나선 성운들의 적색편이를 관측했다. 

 

아쉽게도 이들 역시 슬라이퍼처럼 각 나선 성운(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하지는 못했다. 나중에 헨리에타 리빗(Henrietta Swan Leavitt)이 발견하고 에드윈 허블이 활용한 세페이드형 변광성을 이용한 먼 천체까지의 거리를 추정하는 방법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각 은하의 거리와 후퇴속도를 비교해볼 수는 없었다. 그 대신 은하들의 원래 밝기가 모두 비슷하다고 가정하고 하늘에서 상대적으로 더 어둡게 보이는 은하가 더 멀리 있을 것이라 추정하는 정도의 분석을 했다. 이를 통해 당시 룬드마크는 더 먼 은하가 더 강한 적색편이를 보인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남겼다.[2] 

 

“나선 성운까지의 거리가 더 멀어질수록 그 나선 성운의 시선 속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상대적으로 더 먼 성운들이 더 강한 적색편이를 보이며 빠르게 후퇴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그래프. 이미 허블의 논문보다 앞서 세상에 발표되었던 진정한 첫 번째 결과로 여겨지고 있다.

 

앞서 이론물리학자들 사이에서 공상처럼 여겨지던 팽창하는 우주 속에서 은하들까지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놀라운 현상이 실제 밤하늘을 바라보던 관측천문학자들에 의해 서서히 목격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실제로 은하들까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우주 시공간의 팽창을 완벽하게 증명하기는 부족했다. 슬라이퍼를 비롯한 당시 선구자들은 은하들까지의 거리를 정확하게 잴 수 있는 노하우가 없었다. 단지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먼 은하들이 하염없이 멀어지며 그들의 스펙트럼이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완벽하게 입증하려면 천문학자들은 각 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해야 했다.

 

#운 좋은 황태자의 등장 

 

은하들의 수상한 적색편이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던 즈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던 세계 최대 천문대에서는 직접 각 은하의 거리와 후퇴속도를 비교하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1919년부터 미국 윌슨산 천문대에서 근무를 시작한 허블은 은하들의 거리를 측정해나갔다. 앞서 은하들의 적색편이를 관측한 슬라이퍼가 사용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규모의 망원경을 사용했다. 허블은 엄청난 장비를 활용해 이전까지는 그럴듯한 추측에 머물러 있던 진짜 우주의 모습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윌슨산 후커 망원경에서 관측을 하고 있는 허블의 설정샷. 허블은 이런 거대한 장비 덕분에 아주 멋진 발견을 해낼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천문학에서는 ‘장비빨’도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허블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세계 최대 최상급의 망원경을 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마침 적당한 천체가 그의 망원경에 모습을 드러내는 ‘우주급’ 천운까지 따라주었다. 1921년 허블은 가을 하늘에서 뿌옇게 보이는 안드로메다 성운을 바라봤다. 성운 속에서 일정한 주기로 밝기가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를 반복하며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Variable star)의 존재를 발견했다. 

 

특히 밝기가 변하는 패턴이, 그 별까지의 거리를 재는 데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세페이드형 변광성(Cepheid variable)의 형태였다. 세페이드형 변광성은 별 자체가 숨 쉬듯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일정한 주기로 밝기가 변하는 별이다. 앞서 1908년 하버드 천문대에서 근무하던 천문학자 헨리에타 리빗(Henrietta Swan Leavitt, 1868~1921)은 우리에게 가까운 마젤란 성운 속 변광성 1777개를 분석해 이 세페이드형 변광성들이 며칠을 간격으로 밝기가 변하는지 그 변광 주기와 별들의 실제 밝기가 아주 깔끔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허블은 변광성을 발견하고 나서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안드로메다 성운이 찍혔던 사진 건판 위에 변광성을 의미하는 약자 알파벳 VAR와 함께 느낌표를 써넣었다. 사진=Carnegie Observatories

 

허블이 발견한 안드로메다 성운 속 세페이드형 변광성까지의 거리는 약 200만 광년이 넘었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빅 갤럭시, 우리 은하의 크기를 한참 뛰어넘는 거리였다. 게다가 이렇게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은 안드로메다도 우리 은하 못지않게 아주 거대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제 확실해졌다. 안드로메다 성운은 우리 은하에 속해 있는 작은 가스 구름 덩어리 수준이 아니었다. 분명 안드로메다 성운, 아니 은하는 우리 은하 바깥에 있는 별개의 우주였다. 이로써 허블은 우주의 진짜 크기를 두고 벌어진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최상급 장비와 함께 우주의 천운이 따라주었던 덕분에 비로소 허블은 인류가 상상하던 우주의 지평선을 우리 은하 바깥까지 넓게 확장시켰다. 

 

“천문학의 역사는 후퇴하는 지평선의 역사다(The history of astronomy is a history of receding horizons).” -에드윈 허블 

 

#허블은 정말 몰랐을까? 

 

사실 허블도 슬라이퍼와 르메트르의 연구를 잘 알고 있었다. 1953년 허블이 슬라이퍼에게 보낸 편지에서 허블은 슬라이퍼의 관측 데이터를 활용했다고 고백한다. 

 

“당신이 측정한 속도와 내가 측정한 거리를 이용해서 (은하들의) 속도/거리 관계를 얻어낸 것입니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사실 슬라이퍼가 측정한 은하들의 후퇴 속도는 아주 정밀했지만 정작 허블이 휴메이슨과 함께 측정한 은하들까지의 거리 데이터는 굉장히 부정확했다는 점이다. 허블이 1929년 논문을 내면서 사용한 관측 데이터를 보면 굉장히 오차가 크고 퀄리티가 좋지 않다. 슬라이퍼의 훌륭한 관측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에 허블이 우주 팽창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다.[3] 

 

아인슈타인과 함께 서있는 초롱초롱한 눈빛의 르메트르(왼쪽). 그의 복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래 르메트르는 신학교를 졸업한 신부 출신의 물리학자다.

 

허블보다 2년 앞선 1927년에 먼저 수학적 이론과 관측 데이터를 종합해 우주 팽창으로 인한 은하들의 거리와 후퇴 속도 사이 비례 관계를 추측했던 르메트르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르메트르는 관측천문학자는 아니었기에 직접 하늘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이전까지 축적되었던 다른 천문학자들의 데이터를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활용할 줄 알았다. 그래서 오늘날 일부 천문학자들은 최초로 은하들의 거리와 후퇴 속도 사이의 법칙을 통해 우주 팽창을 어림짐작(guesstimate)한 주인공으로 르메트르를 이야기한다. 

 

실제로 1952년 르메트르는 허블에게만 발견의 공이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당연하게도, 앞서 성운(은하)들에 관한 발견과 연구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허블의 법칙을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Naturally, before the discovery and study of the clusters of nebulae, it was not possible to establish Hubble’s law).” 

 

대중의 관심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았던 허블은 부분적으로 다른 연구자들의 선행 관측 결과를 성실하게 인용하지 않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멋진 발견의 저작권을 독차지하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그랬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빵 반죽처럼 팽창하는 우주라는 걸작은 하루아침에 그려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8년 국제천문연맹 회의에서 허블의 법칙을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으로 이름을 바꿨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정치적인 방식으로 과학적 안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2006년 명왕성이 행성의 지위를 잃은 일도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사진=국제천문연맹(IAU)

 

2018년 8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국제천문연맹(IAU, Internatioal Astronomical Union) 회의에 모인 전 세계 천문학자들은 그간 충분한 대접을 받지 못했던 르메트르의 공을 인정해주기 위해 ‘허블의 법칙’을 ‘허블-르메트르의 법칙(Hubble-Lemaître’s law)’으로 이름을 변경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4]​ 이후 10월 26일까지 온라인을 통해 추가로 집계된 결과 총 4060명의 천문학자들 중 78%가 명칭 변경에 찬성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너무나 잘 알려진 상식이 되었다. 지금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한다면 얼마나 빠르게 팽창하고 있는지 그 팽장 속도를 정확히 재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우주의 팽창률을 이야기하는 허블 상수(정확히는 허블 파라미터)에는 여전히 허블의 이름만 붙어 있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여전히 허블의 이름이 먼저 나오고 슬라이퍼의 이름은 빠졌다는 데 불만을 표한다. 아예 허블의 이름을 빼고 르메트르의 법칙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 법칙의 이름이 바뀌었으니, 허블 상수도 허블-르메트르 상수로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문제도 남아 있다. 

 

허블의 법칙이라는 위대한 발견을 두고 과연 허블의 기여도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해서 과학사 연구자들 사이에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주목이나 인정을 받지 못했던 선구자들이 뒤늦게나마 제대로 대접받게 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과학도 결국 사람들이 하는 일이기에 굉장히 정치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으로는 광막한 우주를 이야기하던 천문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극히 인간적인 수준의 소모적인 논쟁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이제야 우리는 거의 한 세기 만에 허블보다 앞서 팽창하는 우주를 상상하고 관측적 증거를 활용했던 르메트르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먼 은하가 더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는 이 아름다운 법칙을 이제 우리는 ‘허블-르메트르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1] https://www.mdpi.com/2073-8994/11/1/35

[2] http://adsabs.harvard.edu/full/2003HisSc..41..141K

[3] https://www.nature.com/articles/129421a0

[4]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8-07234-y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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