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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장희빈의 저주, 사도세자의 비극…영욕의 창경궁

왕족 생활공간으로 지어져 아담…대장금이 중종 진료한 환경전, 정조 운명한 영춘헌 등

2020.04.21(Tue) 11:52:42

[비즈한국]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의 어느 궁궐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창경궁이야말로 조선의 역사, 그 영욕의 세월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보여준다. 인조반정 이후 이괄의 난 때는 반란군의 침입으로 건물들이 불탔고,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으며, 대장금이 중종을 치료했던 곳 또한 바로 여기 창경궁이었다. 담장 하나를 두고 나란히 붙어 있는 창덕궁보다 사람이 덜하니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관람이 가능하다. 

 

창경궁의 중심 건물인 명정전은 경복궁 근정전보다 사뭇 아담한 사이즈다. 명정전 월대에 올라 임금님처럼 홍화문 방향을 바라보면 조정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과 행각이 보인다. 사진=구완회 제공

 

#영조의 균역법, 정조의 장용영 

 

창경궁 관람은 무과시험을 치렀다는 홍화문 앞마당부터 시작된다. 이곳에선 국왕이 백성을 직접 만나기도 했는데, 정조 때에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 때 국왕이 직접 나와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주었다. 특히 영조 때에는 가난한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균역법의 실시를 놓고 이곳에서 백성들을 만나 그들의 의견을 직접 들었다. 백성들은 당연히 찬성했고, 그 결과 신하들이 반대하는 균역법을 시행할 수 있었다고. 

 

창경궁 관람은 무과시험을 치렀다는 홍화문 앞마당부터 시작된다. 이곳에선 국왕이 백성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사진=구완회 제공

 

창경궁의 중심 건물인 명정전은 경복궁 근정전보다 사뭇 아담한 사이즈다. 이는 창경궁이 국왕의 통치공간보다는 왕족의 생활공간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정과 박석, 삼도, 월대 등 정전으로서 갖춰야 할 것은 다 갖췄다. 명정전 월대에 올라 임금님처럼 홍화문 방향을 바라보면 조정을 둘러싸고 있는 회랑과 행각이 보인다. 보통은 창고로 쓰던 행각이지만 정조 임금 때 명정전의 행각은 특별한 용도로 쓰였다. 바로 왕실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이 이곳에 주둔했던 것. 

 

이어지는 문정전은 사도세자의 비극이 일어난 곳이다. 이곳에는 영조의 첫 왕비인 정성왕후 서씨의 위패를 모시고 있었다. 이름도 문정전이 아니라 휘령전이었다. 당시 경희궁에 머물고 있던 영조는 이곳에 자주 들러 창경궁에 있던 사도세자와 함께 참배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조가 휘령전에 들렀을 때 세자가 병을 이유로 늦게 나타나자 화가 난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칼로 자결하라 명령했다. 세자는 주변의 만류로 자결하지 않았고, 영조는 아들을 뒤주 속에 가둬버렸다. 그 뒤의 일은 우리가 아는 바다.

 

사도세자의 비극이 일어난 문정전. 이곳에는 영조의 첫 왕비 정성왕후 서씨의 위패를 모셨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비극을 품고 있는 문정전을 지나면 우울한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드는 넓은 뜰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창덕궁의 낙선재까지는 원래 동궁의 영역으로 왕세자가 머물면서 정무를 보던 곳이다. 일제는 바로 이곳에 동물원을 만들었고,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되면서 창경원은 동물원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대장금과 장희빈의 이야기가 깃든 곳

 

지금 볼 수 있는 궁궐의 뜰이란 원래 건물이 빽빽이 차 있던 곳을 미처 복원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창경궁 함인정의 앞뜰은 성종 때 처음 창경궁을 지었을 때부터 너른 뜰이었단다. 성종이 왕실 여인들을 위해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았던지 가마를 잘못 탄 부인이 도착해 보니 남의 집이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을 정도. 

 

함인정 옆 환경전은 중종이 세상을 뜬 곳이다. 왕조실록에는 중종이 대장금에게 진료를 맡기고 치료에 따른 상을 내린 기록이 여러 차례 나온다. ‘한류스타’ 대장금이 중종을 진료한 곳이 바로 환경전이었다. 

 

경춘전과 환경전(오른쪽). ‘한류스타’ 대장금이 중종을 진료한 곳이 바로 환경전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내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통명전은 숙종 때 인현왕후의 처소였다. 왕비의 자리를 노리던 장희빈은 통명전 주변에 꼭두각시와 죽은 쥐, 새 등을 묻고 인현왕후를 저주했다. 이 일로 장희빈은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뜬다. 사진=구완회 제공

 

내전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통명전은 숙종 때 인현왕후의 처소였다. 왕비의 자리를 노리던 장희빈은 통명전 주변에 꼭두각시와 죽은 쥐, 새 등을 묻어 두었고, 이 일 탓인지 인현왕후는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다. 하지만 결국 장희빈의 이러한 주술행각은 발각되어 그녀 또한 사약을 받고 세상을 뜨게 되었다. 그 유명한 ‘장희빈 사건’의 전말이다. 

 

통명전 동쪽의 영춘헌은 정조가 세상을 뜬 곳이다. 활쏘기 등 무예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혈기왕성한 중년의 정조가 발병 15일 만에 세상을 뜬 것은 당시부터 독살 의혹이 퍼지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십수 년 전에 정조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암살배후로 의심받았던 노론 벽파 영수 심환지와 주고받은 어찰이 공개되면서 ‘정조는 갑자기 죽은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건강이 악화된 것’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자리잡았다. 

 

통명전 동쪽의 영춘헌은 정조가 세상을 뜬 곳이다. 정조는 왕의 거처로는 초라하다 싶을 정도로 검소한 영춘헌에서 투박한 무명베를 입고 하루에 두 끼만 먹으며 나랏일에 매진했다. 사진=구완회 제공

 

독살이건 자연사건 훌륭한 임금의 때 이른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더구나 국왕의 거처로는 초라하다 싶을 정도로 검소한 영춘헌에서 투박한 무명베를 입고 하루에 두 끼만 먹으며 나랏일에 매진했다는 정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여행정보>


창경궁 

△위치: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문의: 02-762-4868

△관람시간: 09:00~21:00, 월요일 휴무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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