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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자가격리 끝판왕' 화성탐사 우주인들 이야기

사막, 남극, 화산 등 '오지'에 스스로 격리돼 1년 가까이 생활하며 화성 탐사 준비

2020.05.25(Mon) 10:19:07

[비즈한국] 코로나 19로 혼란스러운 이 시국에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서로 멀찍이 떨어져서 스스로를 격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모든 학교의 수업이 온라인 강의로 진행되고, 학교 교사와 교수는 모두 유투버, 스트리머가 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갑작스런 혼란에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인가.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건국 신화에서조차 시조가 100일간 동굴에서 비건 식단만으로 자가격리를 견뎌낸, 말 그대로 자가격리로 시작된 민족이 아닌가. 물론 동굴을 뛰쳐나간 호랑이처럼 가끔씩 격리 생활의 답답함을 버티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일탈의 대가를 우리는 매번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물론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스스로 집 안에 갇혀 가택연금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꽤 고단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한의 격리 생활과 사회적, 아니 우주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가까운 미래, 또 다른 행성에 인류의 발자국을 남기기 위한 유인 행성 탐사를 준비하며 훈련을 받고 있는 우주인들이다. 

 

화성 유인 우주 탐사를 준비하고 있는 우주인들은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격한 격리 속에서 훈련을 이어오고 있다. 우주인들은 외롭고 고독한 훈련을 어떻게 버텨낼까?

 

#아날로그, 세트장에서 한 달 살기 

 

최근 제주도 한 달 살기, 스위스 한 달 살기처럼 낯선 외국이나 외진 곳에서 한 달 정도 떨어져서 혼자 지내는 것이 유행이다. 피곤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색다른 경험이 되기도 한다. 가까운 미래 인류의 우주 탐사를 준비하고 있는 우주인들도 이런 비슷한 한 달 살기 체험을 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기대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 제주도나 유럽이 아닌, 우주의 극한 환경을 그대로 재현한 사막이나 남극에서 한 달을 살아야한다. 사실 산다기보다는 버텨낸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당연히 모든 우주 탐사 훈련은 우주로 떠나기 전 지구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질학적으로 그나마 우주 환경과 유사한 곳을 지구상에서 찾아가야 한다. 또 그런 유사한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해서, 일종의 세트장을 만들어서 훈련하는 경우도 있다. 달이나 화성 등 가까운 미래, 인류가 탐사를 진행할 천체의 환경을 유사하게 조성하고 그 세트장 안에 우주인들이 몇 개월 동안 지내기도 한다. 이렇게 우주 환경을 인위적으로 모사해서 만든 세트장을 ‘아날로그(Analogue)’라고 부른다.  

 

ESA에서 운용하고 있는 우주인들의 달 탐사를 준비하기 위한 팡게아 달 탐사 기지의 모습. 달 표면처럼 어둡고 거친 용암 지대 위에서 우주인들이 머무르면서 훈련을 받는다. 사진=ESA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에 위치한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는 달의 지질학적 특징을 쏙 빼닮은 란사로테(Lanzarote) 화산섬이 있다. 1730년경부터 지금까지 여섯 번에 걸친 폭발로 형성된 이 화산섬은 그 전체 표면의 3분의 1이 전부 까맣게 용암으로 덮여 ‘불의 섬’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이처럼 표면이 모두 용암이 굳어 형성된 지질학적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달 표면의 환경과 아주 유사하다. 유럽우주국(ESA)에서는 이곳 란사로테 화산섬에 유인 달 탐사 및 달 기지 건설을 위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화산섬에 우주 기지와 유사하게 만든 베이스캠프에서 우주인들이 우주복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암석을 채취하고 활동하는 훈련을 진행한다. 

 

물론 아무리 우주 환경과 유사하게 제작한 훌륭한 아날로그 세트장에서 훈련을 한다 하더라도, 지구상에 건설한 세트장인 이상 우주의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는 없다. 특히 우주에서의 미소중력* 환경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플로리다 해안에 위치한 키 라르고 섬에 위치한 우주 훈련 기지에서는 미소중력을 어느 정도 구현한 대안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서 우주인들은 물속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는다. 물속에서 느끼게 되는 붕 떠오르려고 하는 부력 덕분에 지구의 중력이 훨씬 약하게 느껴지며 마치 우주에 올라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NASA에서도 아폴로 달 착륙 미션이나 허블 우주망원경 수리 미션 등 중요한 우주 미션을 앞두고, 우주인들이 거대한 수영장 속에 들어가서 장비를 다루는 훈련을 진행해왔다. 

 

독일 예술가 아그네스 메이어-브랜디스(Agnes Meyer-brandis)는 중세시대 소설에 등장하는 달로 날아가는 거위(moon goose)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서, 직접 거위들을 부화할 때부터 키워서 달 탐사를 위해 훈련시키는 과정을 담아 행위예술 작품으로 선보였다. 당시 아그네스 메이어는 거위들에게 닐 암스트롱, 유리 가가린, 버즈 올드린 등 역사 속 유명한 우주인들의 이름을 붙였다. 사진=Agnes Meyer-Brandis


아그네스의 달 거위들의 훈련받는 장면들. 거위들에게 항공 우주역학을 가르치거나, 달 환경을 모사한 아날로그 기지에서 탐사 훈련을 시키는 등 재미있는 시도들이 엿보인다. 사진=Agnes Meyer-Brandis

  

지구에서는 달뿐 아니라 화성도 만나볼 수 있다. 칠레에 위치한 고원, 아타카마 사막이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마션’의 촬영지였던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 역시 화성을 쏙 빼닮은 붉게 메마른 화산 지형이 펼쳐져 있다. 또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에 있는 데스 밸리 국립공원(Death Valley National Park)에서는 화성 탐사를 준비하던 바이킹 화성 탐사선이 실제로 리허설을 진행하기도 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데스 밸리에서 훈련 중이던 바이킹 탐사선과 함께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시리즈를 촬영하던 모습. 데스 밸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하필 다큐멘터리 촬영날에 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그래서 칼 세이건은 데스 밸리와 어울리지 않게 주황색 우비를 걸친 재밌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사진="COSMOS: A PERSONAL VOYAGE"/ Druyan-Sagan Associates, Inc.


특히 그랜드 캐니언의 환경이 얼마나 화성과 유사한지, 영화 ‘마션’을 정말 화성에서 촬영한 줄 아는 친구들 때문에 꽤나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다. 물론 아쉽게도 아직은 영화 촬영은커녕, 우주인도 화성에 직접 방문한 적은 없다. 지금껏 화성 표면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아닌, 사람보다 먼저 간 로봇들의 바퀴자국만이 있을 뿐이다. 

 

놀랍게도 최근 보도에 따르면, 늙지 않는 최고의 액션 배우 톰 크루즈가 NASA와의 협력으로 우주 정거장에 머무르면서 실제 우주 공간에서 역사적인 작품을 촬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조만간 우리는 세트장에서 와이어에 매달린 채 촬영한 가짜 영상이나 CG가 아닌, 정말 우주 공간에서 연기한 톰 크루즈의 멋진 모습을 극장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화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당신도 이런 우주인들이 훈련받는 현장에서 머무르는 기회를 누려볼 수 있다. 미국 유타주에 위치한 일명 ‘소똥길(Cow Dung road)’을 따라 쭉 내려가면 외딴 사막에 하얀 돔 모양의 기지들이 자리한 굉장히 낯선 곳에 도착한다. 이 하얀 돔 기지들은 해브(Hab)라고 부른다. 이곳은 일론 머스크의 SpaceX와 함께 유인 화성 탐사를 준비하고 있는 화성협회(Mars Society)에서 관리하는 곳이다. 가까운 미래 우주인들이 화성에서 머무르는 동안 거주하게 될 미래의 화성 기지를 비슷하게 구현해놓았다. 실제 화성에 지을 예정인 기지와 유사하게, 사막 위에 주황색 기반을 올려놓고 그 위에 거주 지역인 하얀 돔과 함께 식물을 기르는 원통형의 온실, 그리고 화성 사막 천문대 등 탐사 기지도 함께 건설되어 있다. 

 

화성 협회에서는 이곳뿐 아니라 남극의 데본섬(Devon island)에 위치한 플래시라인 화성 북극 연구 기지(FMARS, Flashline Mars Arctic Research Station)라는 이름의 기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지구보다 1.5배 더 태양에서 떨어져 있고 대기권도 아주 옅어서 평균 기온이 훨씬 낮은 화성의 기온은 지구의 남극과 아주 비슷하다. 이런 추운 환경에서 오랫동안 지낼 수 있어야 화성에서도 잘 지낼 수 있다. 이 기지는 과학자나 우주인뿐 아니라, 우주 환경에서 한 달을 살아보는 데 관심 있는 일반 투숙객도 머무를 수 있다. 물론 약간의 숙박료를 내야 한다. 현재 화성협회에서는 자가격리 기간인 2주일 동안 이 기지에서 머무르는 데 (생각보다 저렴한!) 약 1000달러, 120만 원 정도를 받는다. 물론 남극까지 가는 교통비는 제외한 가격이다. 

 

남극 FMARS 기지에서 우주복을 입고 화성 탐사를 위한 훈련을 받고 있는 우주인들. 우주인과 함께 작은 로버가 울퉁불퉁한 지형을 탐사하는 훈련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사진=Stacy Cusack/mars society


하와이 중앙에 위치한 고도 4200미터의 화산, 마우나 로아 산(Mt. Mauna Loa)에도 인류의 유인 화성 탐사를 준비하는 우주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여섯 명의 우주인은 엔지니어, 우주 생물학자, 의료진, 컴퓨터 공학자, 비행 조종사 등 실제 화성 탐사 시 우주선에 탑승하는 멤버로 구성되었다. 이곳은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서 실제 화성 기지에 머무르는 것과 같은 생활을 하도록 만들었다. 

 

마우나 로아의 기지는 실제 화성에서 살게 될 기지와 마찬가지로 기지 전체의 전력을 오로지 태양 에너지판을 통해서만 얻는다. 기지 바깥의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인터넷을 활용한 통신뿐이다. 그런데 실제 화성과 지구가 교신한다면, 두 행성의 거리가 꽤 멀기 때문에 지구의 관제실과 화성의 기지는 실시간으로 통신을 주고받을 수 없다. 두 행성의 상대적 거리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는 하지만 지구에서 화성까지는 대략 빛의 속도로 9분 정도 걸린다. 만약 화성 기지에서 뭔가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해서 급하게 지구로 SOS 메시지를 보내더라도, 지구에 남아 있는 동료들이 그 메시지를 보게 되는 것은 이미 화성 기지에서 문제가 벌어진 지 9분이 지난 후일 것이다. 또 지구에서 부랴부랴 바로 답을 보내주더라도 지구에서의 답신이 다시 화성으로 수신되는 데까지는 총 18분을 기다려야 한다. 화성 기지에서 지구와 연락을 주고받으려면 반드시 이 통신 딜레이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1] 

 

하와이 화산 지대에 위치한 화성 탐사 훈련 기지(위). NASA의 HI-SEAS 대원들이 무려 8개월 동안 이 기지에서 성공적으로 훈련을 마친 후 우주복을 벗고 행복해하는 모습이다. 사진=HI-SEAS/NASA


그래서 이 마우나 로아 기지에서는 (실제로는 기지가 당연히 지구에 있지만) 인위적으로 기지 바깥 관제실과 기지 사이의 통신이 딜레이되도록 만들어두었다. 그래서 실제 화성에서 메시지를 보내고 기다리는 것처럼, 메시지를 보내고 18분을 기다려야만 관제실에서 보낸 답장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설정했다. 

 

이런 답답하고도 지루할 것 같은 기지에 머무르며 훈련받고 있는 여섯 명의 우주인들은 최대 1년까지 바깥세상과 완전히 고립된 삶을 살아야 한다. 실제 화성에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음식은 기지에 비축한 식량과 온실에서 기른 식물로 자급자족해야 한다. 가끔 기지의 에어로크 밖으로 나와서 화산 지대를 돌아다니며 암석을 줍고, 분석하는 훈련을 받기도 하지만, 역시 이 시간 동안에도 실제 화성에서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두꺼운 우주복을 입고 활동해야 한다. 이 기지에서 머무르는 우주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구인답지 않게, 가장 화성인스럽게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가장 어려운 일,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기 

 

사실 이런 기지에서 1년 가까운 긴 기간 동안 훈련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긴 시간 동안 외부와 차단된 극단적인 격리 생활 속에서 우주인들이 겪는 다양한 심리적, 사회적인 변화를 체크하는 일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겨우 2주일 동안 집 안에 갇혀 있어도 외롭고 무기력해지는 것을 보면, 또 격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혼하는 부부가 늘어났다는 뉴스를 보면, 무려 1년 동안이나 세상과 완벽하게 차단된 비좁은 우주 기지에 갇혀 살아가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처럼 느껴진다. 

 

특히 혼자도 아니고 5~6명이 함께 기지에 갇혀 생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멤버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서로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임무가 끝날 때까지 잘 버티는지, 식량 배급이나 청소 등의 문제로 다투지는 않는지, 기지 바깥에서와 달리 철저하게 강요되는 지루한 생활 패턴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지가 체크된다. 심지어 우주인들이 서로 썸을 타거나, 그것이 멤버들의 불화로 이어지지는 않는지 등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체크한다. 가끔씩 생활 패턴이 미묘하게 다른 룸메이트와 다퉜던 경험이나,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던 아이돌 멤버들의 불화가 이슈가 되는 것을 보면, 1년 동안 갑갑한 우주 기지에서 다른 동료들과 부딪히지 않고 버텨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 모른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마스 500 기지. 러시아, 미국,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우주인들이 훈련을 받는다. 내부는 실제 국제 우주정거장과 비슷하게 꾸며졌으며 실제 우주정거장과는 달리 나무로 지어져 있다. 사진=ESA/NASA


이런 고립된 기지 안에서 동료들과 싸우지 않고 버텨내는 훈련의 시초는 ESA의 그 유명한 마스 500(Mars 500) 미션이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우주생명의학문제연구소(IBMP, Institute for Biomedical Problems) 안에 거대한 지지대를 세워놓고 국제 우주정거장과 똑같은 시설을 만들어서 공중에 띄워놓았다. 마스 500은 다양한 국적의 우주인 여섯 명이 함께 이 지지대 위에 서 있는 기지 안에 들어가서 무려 520일을 생활하는 미션이다. 국적과 문화권이 다른 멤버들은 음력 설날, 크리스마스, 핼러윈 등 다양한 기념일을 함께 보내며 17개월 동안 많은 테스트와 임무를 수행한다. 

 

물론 앞서 소개한 마우나 로아나 남극의 기지와 마찬가지로, 기지 바깥 관제실과 통신을 할 때에는 인위적으로 설정한 딜레이가 걸린다. 실제 우주정거장에 머무를 때와 마찬가지로 한 번의 통신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데이터의 양도 제한되어, 관제실에서는 주기적으로 축구 경기 결과나 연예계 소식 등 가십 거리들을 모아서 우주인들에게 선물로 보내준다. 우주인들은 이 뉴스 선물 꾸러미가 도착할 때가 기지에 머무르는 동안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기지 안에서 훈련을 받는 동안 우주인의 손목에는 스마트 워치와 같은 장비가 채워진다. 이 장비는 멤버들의 건강 상태와 함께 심장 박동, 혈류 등 감정 기복과 변화의 양상도 체크한다. 또 기지 내에서 각 멤버가 어떤 방 안에 들어가 있는지, 방에서 얼마나 머무르다가 나오는지 등 일과 중의 움직임도 체크한다. 그래서 만약 며칠째 한 멤버가 외딴 방에 떨어져 지내는 듯한 낌새가 발견된다면 기지 밖 관제실에서는 멤버 간의 불화나 따돌림 같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도 눈치챌 수 있다.[2] 

 

2010년 당시 마스 500 기지에 머무르던 우주인들은 칠레 산호세 광산의 붕괴 사고 소식을 접했다. 지하 700미터 깊이의 광산에 갇힌 33명의 광부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우주인들은 동병상련의 마음을 담아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란다며 광부들을 위로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는 칠레로 날아가 광산의 통풍구를 통해서 갇혀 있던 광부들에게 전달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순간을 보내던 이들에게, 자신들처럼 고립된 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보내온 따뜻한 위로의 편지였을 것이다. 

 

#우주와 맞닿은 곳 남극 

 

펭수의 고향으로 더 유명해진 남극도 우주 환경을 경험해볼 수 있는 아주 좋은 장소다. 남극에서는 겨울이 지속되는 약 9개월 동안은 태양이 지평선 위로 올라오지 않는 거의 완벽한 어둠이 이어진다. 기온은 거의 화성 표면과 비슷한 섭씨 -100도의 추위가 지속된다. 특히 우주 탐사를 위한 훈련을 하고 싶다면 남극의 산맥A(ridge A)를 추천한다. 지구의 대기권은 자전 때문에 적도 지방으로 갈수록 뚱뚱해지고 극지방으로 갈수록 얇아진다. 그래서 이 산맥에 올라가면 남극에서 가장 낮게 지평선으로 내려앉은 대기권을 만날 수 있다. 

 

남극의 산맥A는 워낙 낮은 남극의 대기권 덕분에 일명 ‘성층권이 땅에 닿는 곳’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그 덕분에 지구 대기권의 방해를 가장 적게 받으면서 지상에서도 우주 망원경 못지않은 아주 선명한 밤하늘을 즐길 수 있다. 이곳에는 테라헤르츠 고에너지 남극 관측 기지, 원적외선 관측 망원경 등 다양한 우주 관측 기기들이 설치되어 있다. 게다가 남극은 극지방 주변을 빙빙 돌면서 순환하는 극풍의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어서 기상 현상의 방해도 거의 받지 않는다. 지구 대기권이 너무 얇게 깔려 있어서, 대기에 의한 산란이 적다 보니 하늘의 별빛도 마치 우주에서 볼 때와 마찬가지로 아른거리거나 반짝이지 않는다. 그냥 한 자리에 가만히 고정되어 있는 완벽한 점광원으로 별빛을 볼 수 있다. 한겨울에 이곳을 방문한다면, 바닥이 투명한 유리배에서 그 아래 바다 속이 깨끗하게 보이듯, 선명한 우주를 온전하게 볼 수 있다.

 

남극의 사우스폴 망원경(South Pole Telescope)과 다크 섹터 연구실(Dark Sector Lab) 뒤로 아름다운 은하수와 함께 오로라가 아른거리는 그림 같은 장면이 펼쳐져 있다. 남극은 대기권이 가장 낮게 깔려 대기의 방해를 덜 받으면서 우주를 즐길 수 있는 지상 최고의 낙원 중 하나다. 물론 살을 에는 듯한 끔찍한 추위만 견딘다면 말이다. 사진=Keith Vanderlinde/Antarctic Photo Library


우주인은 영어로 어스트로너트(astronaut)라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이렇게 남극에 머무르면서 우주 탐사를 위한 훈련을 준비하는 우주인들을 따로 하이버너트(hibernaut)라고 한다. 남극에서 겨울을 나는 우주인이라는 뜻으로 동면(hibernation)과 우주인(astronaut)을 합친 말이다. 하이버너트들이 머무르는 남극점 부근 기지에서 가장 가까운 다른 기지까지는 거리가 약 600km가 넘는다. 이는 지구 주변을 돌고 있는 국제 우주정거장이 지표면에서 떨어져 있는 거리보다 더 길다. 즉 국제 우주정거장이 남극 기지 위를 지나갈 때, 남극 기지의 하이버너트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지구가 아니라 우주정거장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지구상에서 가장 외롭고 고립된 남극에서의 겨울을 보내면서, 이들은 가까운 미래 인류가 진행하게 될 훨씬 더 외로운 우주로의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지구라는 봉쇄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애석하게도 우주의 광막한 크기 자체가 인류의 우주 탐험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우주가 너무 넓고 다른 행성과 별까지 거리가 너무나 먼 탓에 현재의 기술로는 다른 행성이나 별로 방문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막대한 연료와 에너지가 필요하다. 가까운 미래에 해결 방법이 개발되더라도, 로봇이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이 직접 우주를 여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무리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기본적으로 우주 항해는 몇 개월, 몇 년에 걸친 긴 여행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장기간에 걸친 우주 항해를 유인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 긴 시간 동안 사람이 먹고 자고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긴 시간 동안 우주선 안에서 어떻게 식량을 조달할지, 극단적으로 고립된 우주선, 우주 기지 안에서 정신적으로 버텨낼 수 있을지 등의 문제는 해결하기가 더 어렵다. 

 

최근 NASA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우주 항해를 과연 인간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버텨낼 수 있을지를 테스트하는 위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NASA 역사상 처음으로 쌍둥이 형제가 함께 우주인으로 일하게 된 스콧 켈리(Scott Kelly)와 마크 켈리(Mark Kelly) 형제는 장기간에 걸친 우주 환경에 인간이 노출되었을 때의 변화를 테스트하기에 아주 적합한 실험체였다. 쌍둥이인 덕분에 두 사람의 DNA나 생물학적 특성이 거의 유사하다. 그래서 둘 중 한 사람이 우주에 장기간 머무르고, 남은 한 사람이 지구에 머무르게 하면, 나중에 시간이 지났을 때 두 사람에게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보면 우주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꽤 정확하게 비교 분석할 수 있다. 

 

2015년에서 2016년 사이에 진행된 최초의 쌍둥이 우주인 실험에 참여한 켈리 형제. 왼쪽이 지구에 남은 마크 켈리, 오른쪽이 우주로 올라갔던 스콧 캘리. 아래 사진은 1년간의 외로운 우주 생활을 마치고 지구로 무사히 귀환한 직후 엄지를 치켜세우며 미소를 보이는 스콧 캘리의 모습이다. 사진=NASA

 

쌍둥이 중 스콧 켈리는 국제 우주정거장에 무려 1년에 가까운, 340일 동안 러시아 로스코스모스의 우주인 미카일 코르니엔코와 함께 머물렀다. 지금껏 그 어떤 우주인도 우주정거장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머무른 적은 없었다. 미소중력과 우주 방사능으로 가득한 우주정거장에 머무르면서 캘리는 지구 역사상 가장 지루한 자가격리 생활을 버텨냈다. 흥미로운 변화 중 하나는 우주에 머무르는 동안, 세포의 노화를 이야기해주는 DNA 속 텔로미어의 길이가 더 길어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에 머무르는 동안 스콧 켈리의 노화 속도가 지구에 남아 있는 형제에 비해서 더 느려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쉽게도 지구로 다시 돌아온 후 텔로미어의 길이는 다시 원래 수준으로 돌아와, 우주 여행을 통해 얻었던 안티 에이징 효과는 지구에서까지 지속되지 않았다.[3][4] 

 

최근 스콧 켈리는 자신이 2015년에서 2016년 사이 우주에서 머물렀던 1년간의 자가격리 경험을 통해 배운 교훈을 공유하며, 코로나 사태로 격리 생활을 해야 하는 지구인들에게 지루한 격리 생활을 버틸 수 있는 다양한 팁을 소개했다. 특히 스콧 캘리는 “세상 모든 일이 로켓 과학은 아니지만, 로켓 과학에 대해선 로켓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믿어야 한다”며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보건 전문가들의 지침을 꼭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전례 없는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이 얼마나 비좁은 세계였는지를 실감했다. 지구는 생각보다 그리 넓지 않다. 특히 온갖 교통수단으로 지구 전역을 하루아침이면 방문할 수 있게 된 오늘, 지구는 아주 좁은 세계다. 하루면 구석구석으로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 있는, 지구는 일종의 세균이 번식하는 배지와 같은 좁은 세계일 뿐이다. 우리는 여전히 지구의 중력에 발목이 붙잡힌 채, 바이러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지구라는 하나의 거대한 크루즈 선에 갇힌 꼴인지 모른다. 인류는 지구에 처음 출현한 이후 지금까지, 수십만 년째 지구라는 지역에 봉쇄되어 갇힌 채 우주적인 자가격리 생활을 지속해오고 있다. 

 

보이저1호 탐사선이 약 60억 km 떨어진 지점에서 촬영한 지구. ‘창백한 푸른 점’의 모습을 한 먼지 같은 지구의 모습을 본다면 우리가 얼마나 비좁은 세계 안에 갇혀 살아왔는지를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이 작은 행성 안에 갇힌 긴 격리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5] 사진=NASA/JPL-Caltech

 

흥미롭게도 지구라는 좁은 우리를 벗어나 더 넓은 우주를 항해하기 위해선, 그보다 더 비좁은 우주선 캡슐 안에서 오랜 시간을 버티는 더 끔찍한 격리 생활을 이겨내야 한다. 갑갑한 우주 기지의 외로운 격리 생활은 더 넓은 우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 추진력을 얻기 위해 무릎을 꿇는 과정인 셈이다. 

 

계속 이어지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자가격리 생활은 우리를 지치고 고단하게 만든다. 하지만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잠시 무릎을 굽히고 있을 뿐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고단한 지금의 격리 생활이 끝나고 문 밖으로 나섰을 때, 더 넓게 펼쳐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우주 공간을 무중력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엄밀하게 잘못된 관용적 표현이다. 우주는 중력이 없지 않다. 다만 아주 약할 뿐이다. 따라서 무중력(non-gravity)이 아니라 미소중력(micro gravity)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1] https://earthobservatory.nasa.gov/images/92630/living-the-mars-life-on-mauna-loa

[2] https://www.esa.int/Science_Exploration/Human_and_Robotic_Exploration/Mars500/Mars500_study_overview

[3]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9-01149-y

[4] https://www.nature.com/news/astronaut-twin-study-hints-at-stress-of-space-travel-1.21380

[5] https://www.jpl.nasa.gov/spaceimages/details.php?id=PIA23645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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