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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약 급여화 한 달, 한의사도 의사도 찬반 양론 '팽팽'

아직 수요는 미미, 수익은 오히려 손해…"안전성·유효성 검증이 먼저" 의료계 반발 여전

2020.12.17(Thu) 10:52:40

[비즈한국] “월경통을 진통제로만 버티는 분들, 이제는 비용 부담 없이 한약으로 치료하세요!” 한의원에서 부쩍 접하게 된 홍보 문구다. 오는 20일이면 ‘첩약(한약) 급여화 시범사업’이 시행된 지 한 달에 접어든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 반대 목소리를 등에 업고 시작됐지만 진료를 보는 한의사들도 의견이 분분하다. 환자들 사이에서도 ‘진료권이 확대됐다’는 주장과 ‘항암제 급여 적용이 더 시급하다’는 입장이 맞선다.

 

#아직 수요는 미미…현장에서도 찬반 의견 분분

 

오는 20일이면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이 시행된 지 한 달에 접어든다. 그러나 ​현장에서도 ​찬반 논란이 분분하다. 사진은 이미지컷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지난 11월 20일, 정부는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증(만 65세 이상) △월경(생리)통 등 세 질환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이 사업은 2023년까지 3년간 우선 실시된다. 환자는 연간 1회 최대 10일까지 시범수가(진찰비 포함 10만 8760원~15만 880원)의 50%만 부담하며 첩약을 복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환자는 기존에 10일(20첩) 기준 16만~38만 원 하던 한약을 5만~7만 원 정도에 먹을 수 있게 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7일 기준 9023개 한의원이 시범사업에 참여 중이다. 전체 한의원의 약 64%다.

 

사업 초기이기는 하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수요가 미미하다는 반응이다. 사업에 참여 중인 경기도의 한 한의원 원장 A 씨는 “급여가 적용됐지만 건수가 그다지 많지 않다. 세 질환 중에서 월경통 때문에 한약을 지어달라는 환자가 그나마 있는 편”이라며 “뇌혈관질환 후유증의 경우는 양의원에서 MRI(자기공명영상법) 검사를 통해 뇌혈관질환으로 진단받은 소견서가 있어야 한다. 한의원에서는 이 질환을 진단하는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 환자 입장에서는 번거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첩약 관련 의료기관의 요양급여비용 청구 접수가 시작되지 않아 지금까지 건강보험 청구 건수는 0건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내년 1월 중 관련된 공고가 뜰 것으로 보인다. 추후 실시 횟수나 진료금액 등 정확한 건수를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고 했다. 의료기관은 환자 진료 대가인 요양급여비(약제비 포함)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하고 심평원이 적정성을 평가해 지급한다.

 

사진=보건복지부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요양기관 설명자료’ 캡처


사업에 참여 중인 한의사들 사이에서는 수익 면에서 오히려 손해라는 말도 나온다. 앞서의 A 원장은 “많은 한의원이 원외탕전실에 첩약 조제와 탕전을 맡긴다. 정해진 수가는 3만 원 정도다. 그런데 환자는 한의원을 통해 원외탕전실을 이용하는 셈이라, 탕전료와 약제비가 한의원 수익으로 잡힌다. 첩약 하나당 세금은 15만 원 정도 내는 꼴”이라며 “한약 판매를 주로 하는 한방부인과 전문 한의원 상황도 좋지 않을 거다. 첩약 급여화가 실시됐지만 약과 침 치료를 병행하는 패키지 상품을 만드는 등 자구책을 찾는 이유”라고 귀띔했다.

 

다만 긍정적인 목소리도 있다. 충청도 병원 한의사 B 씨는 “의료비가 줄고, 급여항목으로 등재돼 실손보험으로 보장을 받을 가능성이 생겼다”며 “​최근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한약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환자들이 부담 없이 한의원을 찾을 수 있다. 침도 처음 ​보험 적용이 됐을 때는 논란이 일었지만 지금은 잘 정착돼 환자와 한의사 모두에게 좋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의사 C 씨도 “환자의 비용부담이 낮아지면 한약 치료를 조기에 받음으로써 한약의 장점인 자연치유력이 강화되고 질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전체 의료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의견을 표했다.

 

#의료계 “체질마다 효과 다른 한약, 검증이 먼저” vs 한의계 “오래 써온 약 문제없다”

 

지난 8월 전국의사총파업 당시 의협은 첩약 급여화를 △의대 정원 증원 △공공의대 설립 △원격의료와 함께 ‘4대악 의료정책’으로 규정했다. 사진=박정훈 기자


첩약 급여화를 둘러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 대한약사회로 구성된 협의체가 출범했지만, 8일 열릴 예정이던 첫 회의는 무산됐다. “의협이 협의체에 속한 점을 동의할 수 없다”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투쟁할 것”이라 선언한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 반발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지난 8월 전국의사총파업 당시 의협은 첩약 급여화를 △의대 정원 증원 △공공의대 설립 △원격의료와 함께 ‘4대악 의료정책’으로 규정했다. 다만 현재 한의협은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한의협 관계자는 “사업 초기에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데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첩약 급여화 논란의 주요 쟁점은 첩약이 얼마나 안전하고 효과가 있느냐다. 한의계는 ‘일상에서 먹는 음식 중에서도 한약재로 만들어진 게 많고 오래 사용돼왔으므로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의료계는 ‘의약품이 임상시험을 거치는 것처럼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고수한다.

 

김경호 한의협 부회장은 한의협이 9월 자체 제작한 동영상에서 의학 학술기관 코크란 메타분석 결과를 제시하며 “자궁내막증에서 한약은 월경통 감소 효과가 양약보다 뛰어나며 부작용도 적었다. 미국 생식의학회에서도 이 결과를 바탕으로 자궁내막증으로 인한 월경통 치료지침에 한약 치료를 포함했다”고 밝혔다. 각 한약재를 혼합한 한약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김 부회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당뇨약과 혈압약 등을 섞어 주는 약물 인터랙션에 대해 진행된 임상시험이 있느냐”며 “부작용과 관련해선 의약품처럼 한약도 시판 후 조사(PMS) 시스템을 도입하면 된다”고 말했다.

 

첩약 급여화 논란의 주요 쟁점은 첩약이 얼마나 안전하고 효과가 있느냐다.


반대로 김교웅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효과가 아닌 단순한 만족도일 뿐이다. 한약은 체질에 따라 효과가 다른데 표준화가 우선 아니겠느냐”며 “뇌혈관 질환 환자는 의과용 약을 먹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약과 같이 먹었을 때 나타나는 효과에 대한 선 검증이 필요하다”라고 맞받아쳤다. 강석하 과학중심의학연구원 원장은 “2000년 이상 유럽인들이 믿고 사용한 전통의학 치료법인 사혈 요법(피를 뽑아 병을 고치는 치료)은 1800년대에 임상시험 검증 방법이 고안돼 검증해보니 효과가 없고 오히려 해로운 경우가 있어서 퇴출당했다”며 “치료 효과와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플라시보 효과, 질병의 자연 경과, 우연 등 요소를 가려낼 대조군 설계의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원외탕전실과 관련한 논란도 있다. 원외탕전실은 한의원들의 처방에 따라 한약 조제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이다. 전국에 약 100여 곳 있다. 정부는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한다며 2018년 원외탕전실 인증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증을 통과한 원외탕전실은 전국에 5개다. 의료계에선 “5개 중 2개 탕전실은 해당 병·의원 브랜드 약만 제조한다. 결국 전국 9000여 곳의 한약을 3개 원외탕전실에서 관리하는 꼴”이라고 지적한다. 당초 정부는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원외탕전실은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밝히다 11월 공고에선 조건을 완화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의료계는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없어졌다”고 반발한다. 그러나 “해당 제도는 최근 생긴 데다 인증도 아주 까다롭고 시범사업은 원내 탕전실 위주로 진행될 것”이라는 한의계 반론도 나온다.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고가의 ​항암제를 ​복용하는 암 환자 등 중증질환이나 희소 질환 환자를 위해 한정된 재원을 쓰는 게 낫지 않느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다만 앞서의 한의사 B 씨는 “가치판단이 들어가야 해서 정부도 고충이 많을 듯하다. 좀 더 많은 국민이 혜택을 누리게 할지 환자의 생명 유지에 더 도움이 되는 약을 급여 등재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한편 정부는 시범사업이 끝나면 결과를 검토해 급여화를 공식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제4차 한의약 육성발전 종합계획’도 앞두고 있다. 내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시행될​ 예정이다. 종합계획안에는 지역 돌봄체계에서 한의약의 역할을 확대하고, 한약 접근성과 안전성을 개선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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