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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나만의 영양제 정기구독' 국내 최초 건기식 소분 약국을 가다

약국에서 영양제 추천받아 택배로 배송받는 방식…약국 업계 "대기업이 시장 잠식할 것" 우려

2020.12.29(Tue) 16:17:33

[비즈한국] “코스가 좋은 공이 날아오고 있어요. 온 힘을 다해 휘두르세요.”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스타트업’에 나오는 대사다. AI(인공지능) 스피커인 영실이는 운세·일정·날씨 등 주인공이 원하는 혹은 주인공과 연관된 정보를 막힘없이 얘기한다. 드라마를 넘어 현실에서도 많이 쓰이는 AI 스피커가 “오늘도 왜 영양제를 안 드시죠? 3일째 놓치고 계세요”라고 말해주면 어떨까. 건강기능식품(건기식) 관련 규제의 빗장이 풀리며 ‘개인 맞춤형 건강비서’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인다.

 

지난 4월 정부는 개인별 생활습관·건강 상태·유전자 정보 등을 바탕으로 건기식을 추천하고 소분해 판매하는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2년간 규제 샌드박스 시범사업으로 운영된다. 소비자는 오프라인 매장에 한 번 방문하면 이후에는 온라인으로 정기 구독할 수 있다. 풀무원·한국야쿠르트·녹십자웰빙 등 규제 특례 대상 기업으로 선정된 업체 17곳은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약국 사업 모델도 등장할 것으로 예고되면서 약국 업계 관심도 뜨겁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약국은 시장 초기에만 ‘시범 모델’로 쓰이고 결국 거대한 자본력을 가진 유통 대기업이 시장을 잠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4월 정부는 개인별 생활습관·건강 상태·유전자 정보 등을 바탕으로 건기식을 추천하고 소분해 판매하는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풀무원 ‘퍼팩’ 개인맞춤형 영양제. 사진=김명선 기자


#영양제 상담해주는 약국 공개 직전…약국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신촌 세브란스병원 인근에 있는 독수리약국. 1999년 세워져 문전약국으로 자리를 지켜온 이곳은 곧 ‘건기식 소분 약국’ 모습을 띤 약국으로 변화한다. 12월 말~1월 초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영양제 상담을 담당할 약사를 채용한 상태다. 현재 이 약국에선 처방의약품·일반의약품·건강기능식품으로 구역이 나뉘어 다섯 명의 약사가 소비자를 맞이하고 있다면, 앞으로는 또 다른 약사 한 명이 키오스크를 활용해 개인 영양제 상담을 진행할 예정이다.

 

건기식 소분 약국은 국내 최초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기업 중 스타트업 빅썸과 모노랩스, 온누리H&C(온누리약국 체인)는 각각 100개, 20개, 2개의 약국과 제휴해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인데, 이중 먼저 모노랩스가 독수리약국과 손잡았다. 건기식 소분 시장 확대와 홍보를 위해 모노랩스가 인지도 높은 독수리약국에 먼저 연락을 취했고, 건기식 시장에서 약국의 파이를 키우면 좋겠다는 약국 측의 생각이 일치했다고 한다. 소비자가 독수리약국에서 구매를 결정하면 영양제를 제조하는 콜마비앤에이치에서 택배로 1~2일 이내에 영양제를 받아볼 수 있다(모노랩스는 콜마비앤에이치 지주회사인 한국콜마 홀딩스와 사업제휴를 맺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인근에 있는 독수리약국은 곧 ‘건기식 소분 약국’ 모습을 띤 약국으로 변화한다.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독수리약국. 사진=김명선 기자

 

서비스 개시 전이지만 소비자들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28일 만난 정석문 독수리약국 약사는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며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많다. 특히 영양제 섭취를 관리해주길 원하는 고객이 있을 것 같다. 약국을 방문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 일반의약품 수요도 늘어날 수도 있다”며 “약사 채용에 따른 인건비 외에 서비스 도입에 드는 별다른 경제적 부담은 없었다. 인근 약국은 주로 처방의약품 위주라 고객이 줄어들까 고충을 토로하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나만의 영양제’ 소비자 입장에서 체험해보니…

 

건기식 소분 약국의 모습은 올해 모습을 드러낸 건기식 소분 매장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지난 24일과 28일 기자가 풀무원의 개인 맞춤형 건기식 매장 ‘퍼팩’과, 모노랩스가 이마트에 오픈한 매장 ‘아이엠’을 방문해 서비스를 이용해봤다.

 

두 매장에서는 각각 풀무원건강생활과 모노랩스에 소속된 전문 영양사가 설문조사를 진행해 건기식을 추천한다는 점에서 별반 차이가 없었다. “지금 먹고 있는 약은 있는지”, “음식이나 약 부작용이 있는지”, “최근 집중력이 떨어지는지”, “운동은 주 몇 회 하는지” 등으로 구성된 설문 내용도, 그에 따라 AI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양제도 비슷했다. 두 곳 모두 5~10분가량 진행된 설문보다는 영양사 상담에 방점을 찍었다. 영양사는 기자가 설문하는 동안 화면을 지켜보며 기록했고, 설문 종료 후 “아까 채소를 거의 안 먹는다고 체크했던데 맞냐”고 물어보며 상담을 이어갔다.

 

이마트 성수점에 입점한 모노랩스 ‘아이엠’. 사진 오른쪽에 있는 공간에서 소비자는 설문조사를 진행한 후 영양사와의 상담을 통해 영양제를 추천받는다. 사진=김명선 기자


영양사가 영양제를 추천해주면 소비자는 원하는 것만 고를 수 있다. 별다른 할인 프로모션이 없으면 영양제 하나를 추가할 때마다 가격이 그대로 합산된다. 이렇게 선택한 영양제를 매달 받아보고 싶으면 전화나 온라인으로 정기구독을 신청하면 된다. 다만 새로운 영양제를 추가하고 싶다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다시 상담을 거쳐야 한다. 소비자가 복용하는 약이나 생활습관에 변동이 생겼을 수 있다는 이유다.

 

영양제를 고르기까지는 20~30분 정도 소요됐다. 그러나 영양제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다소 차이가 있다. 풀무원 퍼팩 본점에서는 매장에서 영양사가 풀무원건강생활이 제조한 영양제를 기계를 이용해 직접 소분한다. 영양제 선택 이후 5~10분만 기다리면 바로 그 자리에서 영양제를 받아 갈 수 있다. 반면 IT 스타트업인 모노랩스의 아이엠 1호점에서는 모노랩스와 제휴한 콜마비앤에이치에서 영양제를 제조하고 포장해 배송하도록 했다. 매장에 영양제 상자와 소분 기계가 따로 필요 없다. 모노랩스와 손잡은 독수리약국에도 소분 기계는 도입되지 않는다. 풀무원은 자사 영양제임을, 모노랩스는 지금까지 신뢰를 쌓아온 건기식 제조업체에서 만든 영양제임을 강조한다.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풀무원 ‘퍼팩’ 본점. 매장에는 영양사와 상담할 수 있는 공간 외에 미닫이문으로 여닫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인바디 기계와 영양제 소분 기계가 각각 설치돼 있다. 사진=김명선 기자


소비자 반응은 어떨까. 모노랩스 관계자는 “24일 오픈 이후 매장을 방문한 분 중 구매결정까지 이어진 사례는 80% 정도다. 주로 마트를 방문하는 분들이 많다”며 “내년에도 이마트와 함께 다른 매장을 열기로 논의 중”이라고 했다. 다만 아직 시장 형성 초기인 데다 코로나19의 영향권에 놓여있다는 점은 마이너스 요소다. 24일 현장에서 만난 풀무원건강생활 영양사는 “7월 오픈 당시에는 하루에 거의 8팀이 방문했다. 그러나 사실 이번 달은 12월 초 상담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모노랩스와 풀무원은 화상 상담 시스템도 준비 중이지만 아직 구현되진 않았다.

 

#시장에 대기업 참여 가능성 높아…약국 업계는 왜 걱정할까

 

향후 이러한 모습을 갖춘 기업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건기식 소분 판매를 전면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자본력과 IT 기술, 유통망을 갖추거나 기존에 건기식 제품을 보유한 제약사와 유통·식품 업계 대기업의 소분 건기식 시장 진출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이유다. 특히 코로나19로 부쩍 건강관리에 신경 쓰는 소비자가 늘어나며 건기식 시장 성장세는 가파르다. 올해 국내 건기식 시장은 2019년보다 6.6% 성장한 5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자본력과 IT 기술, 유통망을 갖추거나 기존에 건기식 제품을 보유한 제약사와 유통·식품 업계 대기업의 소분 건기식 시장 진출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이를 두고 약국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독수리약국 내부. 사진=김명선 기자


이러한 흐름을 두고 약국 업계에서는 걱정 섞인 목소리도 여전하다. 소규모 약국은 키오스크를 들일 공간도 상담을 전담하는 약사를 들일 비용도 없어 건기식 소분 약국 모델이 정착하기는 쉽지 않아, 결국 대기업이 시장을 잠식할 거라는 얘기다. 그럴 경우 약국이 아닌 기업들은 대부분 영양사를 채용하게 될 텐데, 아무리 영양사가 인바디 검사와 설문 검사를 통해 상담을 진행한다 해도 정확한 판단이 어려워 오남용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약사업계에서 “건기식에서도 사망 사례가 발생한 바 있다. 사후 모니터링을 포함한 안전망 구축이 필요한 제품의 경우 약국에서만 판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약국 업계 반대 목소리의 이면엔 일반의약품 대신 영양제 같은 건기식으로 질환을 예방하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약국 수익이 쪼그라든다는 점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또 대기업의 시장 참여로 인해 약국 건기식 매출마저 자연스레 줄어들 거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다만 건기식 소분 사업으로 인해 등장한 ‘개인 맞춤형 영양제’는 소비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도 많다. 소태환 모노랩스 대표는 “개인을 ‘케어’해주는 역량이 부족한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아래에서 개인이 건강한 삶을 지속하는 일을 도와줄 수 있다. 앞으로 복용 알림을 넘어 AI 스피커를 활용해 건강 비서 서비스를 내놓고 싶다”며 “소비자가 처방 약을 받으러 가는 정도로만 약국을 방문하는 행태를 개선하고 싶었다. 상담을 잘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약사를 활용한 약국 제휴 서비스를 생각한 이유다. 유연하게 이해관계자가 상충하는 지점들을 해결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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