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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샤넬 스파, 버버리 노래방은 왜 안될까

부정경쟁방지법상 상표 약화·손상하는 행위 금지…단속 범위에 대한 모호함은 존재

2021.12.20(Mon) 11:19:36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다목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국내에 널리 인식된 타인의 성명, 상호, 그 밖에 타인의 상품 또는 영업임을 표시한 표지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표지(영업표지)의 식별력이나 명성을 손상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보호 대상인 영업표지에는 상품 판매·서비스 제공방법 또는 간판·외관·실내장식 등 영업 제공 장소의 전체적인 외관도 포함된다. 

 

이는 ‘저명상표 희석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인데, 저명상표 희석행위는 △어느 회사가 저명상표를 무단사용함으로써 저명상표가 가지는 구매력, 신용 등을 감소시키는 상표약화(blurring)와 △어린이용품의 저명상표를 음란 사이트의 도메인으로 사용함으로써 저명상표의 이미지나 가치를 손상하는 상표손상(tarnishment)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부정경쟁방지법상 타인의 표지에 식별력이나 명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를 저명상표 희석행위로 볼 것인가에는 사례마다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박정훈 기자


과거에는 명품 브랜드를 따온 식당, 노래방, 유흥주점 등이 있었다. 예를 들어, ‘샤넬 스파’(마사지 가게), ‘샤넬 비즈니스 클럽’(유흥주점) 등의 간판(상호)을 내거는 경우가 있었는데, 법적으로 맞고 틀린 지는 모르겠으나 누구나 이를 보고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샤넬이 마사지 가게, 유흥주점에 브랜드 사용을 허락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마사지 가게, 유흥주점이 샤넬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것은 샤넬의 인기와 고객 흡인력에 편승하려는 목적임이 분명하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상호 사용이 계속된다면 샤넬의 명성은 손상될 것이다. 이에 샤넬은 2000년대 후반부터 부정경쟁행위 금지 청구 소송 등을 다수 제기하여 승소 판결을 받는 등 강력하게 단속한 바가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버버리 노래방’ 사건도 있다. 버버리가 천안시 ‘버버리 노래방’ 업주를 상대로 제기한 부정경쟁행위 금지 등 청구 소송에서 노래방 업주는 “버버리는 벙어리의 경상도 방언이다. 버버리 노래방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속 시원하게 노래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노래방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명품 브랜드 버버리와 버버리 노래방의 업종은 현격히 달라 소비자들이 혼동을 일으킬 가능성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대전고법은 노래방 업주의 주장을 일축하고 “피고(노래방)가 원고의 등록상표 버버리를 중소도시에서 다수인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노래방 업소의 상호에 이용함으로써 국내에서 널리 고급패션 이미지로 알려진 버버리의 명성을 손상했다”라는 이유로 버버리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저명상표 희석행위 금지조항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원칙적으로 상표는 상표권으로 등록돼야만 보호받는다. 또한 지정상품으로 등록된 서비스, 제품 등의 동일·유사한 경우에만 상표권의 효력이 미친다. 앞서의 노래방 업주의 주장은 나름 상표권 법리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그러나 저명상표 희석행위 금지조항은 상표권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더구나 영위하고 있는 업종이 전혀 다름에도 그 브랜드 사용을 금지하므로, 단속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저명상표를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해학적 표현, 패러디까지 단속하는 것은 지나치고, 단속을 철저히 하면 해외 명품 브랜드만 이익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다만 앞서 본 마사지 가게, 유흥주점, 노래방 등의 사례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여 옹호할 기분이 들지 않을 뿐이다. 

 

에르메스와 플레이노모어는 6년간 소송을 펼쳤다. 지난해 9월 파기환송심에서 양사간 합의로 최종 마무리됐다. 사진=박정훈 기자


그렇다면 저명상표 희석 여부가 애매한 사건은 무엇이 있을까? 그 예로 에르메스가 국내 브랜드 플레이노모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있다. 버킨백·켈리백은 에르메스의 대표적인 가방으로, 디자인이나 마케팅은 패션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한다. 

 

플레이노모어는 버킨백·켈리백과 유사한 외관에 자사의 특징적인 문양인 눈알 모양 장식을 부착한 가방을 제작·판매(편의상 ‘눈알 가방’이라고 한다)했다. 이처럼 커다란 눈알 모양 장식이 가방 전면에 부착됨으로써 버킨백·켈리백과 외관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지 판단하기 애매했고, 소비자들이 눈알 모양 장식을 보고 플레이노모어의 가방을 구매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었다. 

 

이 때문에 법원의 판결도 엇갈렸다. 1심에서는 에르메스의 청구가 인용되었으나, 항소심에서 기각됐고, 상고심(2017다217847)에서 다시 뒤집혀 에르메스의 청구가 인용되었다.

 

대법원(상고심)의 판시를 보면, 켈리백·버킨백과 눈알 가방은 전체적·이격적으로 관찰하면 유사해 보이고, 특히 눈알 도안이 부착되지 않은 후면과 측면을 관찰하면 켈리백·버킨백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눈알 가방이 판매되면 켈리백·버킨백의 희소성이 침해되고, 수요를 대체하거나 희소성 및 가치 저하로 잠재적 수요자들이 구매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에르메스의 경제적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특히 플레이노모어는 제일모직, 라네즈, 샘소나이트, 마텔 등과 제휴나 협업을 통해서 플레이노모어라는 브랜드를 사용한 제품을 홍보하였으나, 눈알 가방의 경우에는 이러한 절차 없이 수요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켈리백·버킨백의 외관을 이용하였다는 점에서 공정한 상거래 관행에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대법원의 판시는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가방의 후면·측면을 비교하여 유사성을 판단하는 것은 다소 의아하다. 얼굴을 보고 사람을 구별하듯이 전면을 비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경우 눈알 가방의 전면에는 눈알 장식이 있어 유사성이 부정될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플레이노모어가 다른 브랜드와 협업 절차를 거쳤음에도, 에르메스와는 그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에르메스의 불허를 예상하고 협상을 회피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플레이노모어에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명품 브랜드를 따라 하는 행위를 어느 강도로 단속할 것인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다. 필자는 명품에 대해 별다른 감흥이 없어서 단속을 강화하는 것, 더구나 형사처벌까지 부과하는 것은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명품 브랜드를 지극히 선호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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