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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비법] BTS 인기로 촉발된 퍼블리시티권 '예송논쟁'

국내 법에 규정되지 않은 미국 판례일 뿐…부정경쟁행위로 간접 보호 두고 '설왕설래'

2022.01.03(Mon) 14:19:27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연예인 등 유명인의 허락 없이 그 초상, 성명 등을 영리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의문이 없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슨 권리’를 침해하길래 문제가 된다는 것일까? 이는 일반인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나름 법을 좀 안다는 사람들, 그중에서 특히 민법 또는 지적재산권을 전공했다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유명인의 성명, 초상 등을 유명인의 허락 없이 사용할 경우 무슨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일까?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한 한류 열풍으로 퍼블리시티권을 향한 갑론을박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다. 사진=연합뉴스


먼저 ‘퍼블리시티권’이 침해된다는 견해가 있다.

 

유명인은 일반인보다 사생활, 개인정보 등의 공개, 노출을 감수한다고 볼 수 있다. 유명인이 유명세를 얻는 원천은 대중에 대한 노출에 있다. 유명인의 성명, 초상 등이 빈번하게 검색되고 화제가 되면 그로써 인지도와 인기가 상승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명인의 사생활 보호는 일반인에 비해 다소 완화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유명인이 성명, 초상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기회는 보장받아야 한다. 유명인은 성명, 초상, 외양, 독특한 행동 등의 요소로써 인지도를 넓히고 나아가 방송 출연, 광고 등 영리활동을 해야 한다. 

 

이러한 사정에 착안하여, 성명, 초상 등의 경제적 가치를 이용하는 권리로서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을 인정해야 하고, 성명, 초상 등을 무단으로 사용한 자에게는 퍼블리시권 침해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경우 퍼블리시티권은 재산권의 성격을 갖고, 퍼블리시티권 주장은 경제적 손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성격을 갖게 된다. 이러한 견해는 대체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있거나, 지적재산권 전공자, 미국 판례에 밝은 분들이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달리 ‘인격권’이 침해된다는 견해가 있다. 

 

퍼블리시티권은 그 명칭에서 보듯이 미국 판례에서 인정된 권리일 뿐 우리나라의 법률 그 어디에서 규정되지 않은 권리이다. 미국은 판례의 법원성을 인정하는 불문법주의를 취하고 있어 판례만으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법률 없이는 권리가 발생하지 않는 성문법주의, 물권법정주의를 취하고 있어 법률로 규정하지 않은 이상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할 여지가 없다.

 

퍼블리시티권을 부정한다고 해서 연예인의 초상, 성명 등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성명권, 초상권 등은 모두 인격권에 포함되는 권리이므로 성명, 초상 등의 무단사용자에 대해서는 인격권 침해에 따른 책임을 물으면 된다. 단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법률에 따라 규정되지 않은, 그 내용 및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헤친다.

 

이 경우 인격권 침해를 주장하는 것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 즉 위자료를 청구하는 성격을 갖게 된다. 이러한 견해는 대체로 민법을 전공하거나 법조 실무에 있는 분들이 취하는 경우가 많다(민법 교수님 앞에서 퍼블리시티권을 운운할 경우 퍼블리시티권이 법전 어디에 나와 있느냐는 핀잔을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 법원의 태도는 어떠한가? 1심이나 항소심 등 하급심 판결에는 퍼블리시티권 침해를 인정한 사례가 있고, 인격권 침해를 인정한 사례도 있다. 이처럼 하급심 판결이 귀일하지 않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기에,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정리할 만도 한데 아직까지 대법원 판결은 없다. 이를 두고 대법원이 의도적으로 판단을 회피하고 있다는 해석까지 있다.

 

퍼블리시티권에 대한 정의와 인정 여부를 놓고 현업 종사자와 학계 관계자 등 첨예한 대립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영화 해적 : 도깨비 깃발’​ 제작발표회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여기까지 내용을 따라왔으면 자연스럽게 몇 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먼저 “법이 없어서 퍼블리시티권을 인정 못 한다면 법을 제정하면 될 것이 아닌가. 왜 아직도 법을 만들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퍼블리시티권 입법에 소극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될 경우 우리나라가 외국 유명인에게 보상·배상해주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 △우리나라가 법률을 제정하더라도 그 법률의 효력은 우리나라에만 미치므로,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되지 않는 외국에서는 우리나라 유명인이 보호받을 방법이 없다는 점 등이 고려된 것으로 추측된다. 

 

다음으로, “퍼블리시티권이든 인격권이든 보호받는다는 결론은 같기에 더 이상 논의할 실익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인격권으로 보호받으면 된다는 견해는 실제로 위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필자가 보았을 때 법리의 엄밀성을 떠나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해야만 성명, 초상 등이 더 두텁게 보호받는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격권 침해로 구성하면 위자료를 청구하게 되는데, 판례상 인정되는 위자료는 최대 5000만 원을 넘지 않아 배상을 받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격권 침해로 논리를 구성한 하급심 판결은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한 판결에 비해 보호되는 범위도 좁고 인용된 금액도 적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BTS 등 한류가 융성해지자 법률로 보호하자는 견해가 더 세를 얻게 되었다. 그 결과 2021년 12월 7일 개정된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타목은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성명, 초상, 음성, 서명 등 그 타인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법률상 금지되는 부정경쟁행위 중 하나로 규정하였다.

 

개정이유는 위 조항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① “한류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유명인의 초상·성명 등을 사용하는 제품·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관련 불법 상품의 제작·판매 행위도 증가하고 있으나, 유명인 등의 재산적 손실이나 소비자에게 발생한 피해를 적절히 보호하는데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② “이에 일각에서는 유명인의 초상·성명 등에 독자적 권리를 부여하여 보호하자는 논의가 제기되어 왔으나 초상 등의 경우 일신전속적 성격상 권리의 양도·상속이 불가능하여 상표권과 권리충돌이 발생하는 등 그 특성상 복잡한 논란이나 부작용이 야기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③ “따라서 유명인의 초상·성명 등 인적 식별표지를 무단사용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의 유형으로 명확히 규정하여 제재함으로써 건전한 거래 질서를 확립하고, 부당한 피해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즉 한류 연예인을 보호하기는 해야 하는데, 퍼블리시티권을 정면으로 인정하는 법률을 제정할 경우 복잡한 논란이 야기될 수 있으니, 이를 우회하여 성명, 초상 등을 무단 사용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서 금지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본 논의의 전개 과정을 살펴본다면 개정이유의 설명이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한때 학계에서 진지한 논쟁이었고, 지금도 그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위 개정 조항을 두고 퍼블리시티권 논자는 “드디어 퍼블리시티권이 법률로 창설되었다”는 입장이고, 인격권 논자는 “부정경쟁행위의 유형을 추가한 것일 뿐 퍼블리시티권을 창설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퍼블리시티권 논쟁은 마치 ‘예송논쟁’과 같기도 하다. 겉으로 보면 결과에 큰 차이가 없는 설정 놀음 같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현업과 학계, 지적재산권법과 민법학계 등 사이의 자존심을 건 논쟁이기도 하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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