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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주민 반대로 멈춰선 청년주택, 그럴싸한 명분 뒤 숨은 속내는…

양평동 롯데칠성 부지 개발 올스톱…"대기업 특혜, 사전논의 부족" 비판 배경엔 '님비'

2023.03.24(Fri) 14:00:18

[비즈한국] 9호선 초역세권 한강 뷰 금싸라기 땅. 지역 주민들은 양화한강공원과 인접한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롯데칠성 부지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이 땅에 서울시와 롯데건설이 청년주택 건설을 논의 중이라는 사실이 ​지난해 ​알려지자 후폭풍이 거셌다. 최대 지상 35층, 11개 동, 전용 면적 7평짜리 1400가구 규모 대단지 임대주택이 들어설 것이라는 소식에 인근 아파트와 빌라 단지들은 반대 현수막을 내걸었다. 서울시는 즉각 “롯데 측에서 제안한 청년주택 계획은 내부 검토 단계”라며 “단순히 사업자가 제안하는 것으로 사업추진과 계획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수습에 나섰다.

 

논란이 불거진 지 1년, 현재 서울시와 영등포구청 모두 청년임대주택 건립계획에 대해 “진행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답했다. 청년주택 사업이 주민 반대에 부딪혀 초기 구상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례는 곳곳에서 반복된다. 부지마다 반대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청년주택을 ‘기피 시설’로 보는 인식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영등포구 선유도역 인근 롯데칠성 부지에 건설하려던 ​청년주택 사업은 주민 반발에 부딪혀 사실상 멈췄다​. 사진=강은경 기자


#“소형 평형 누가 원하나”…롯데 ‘배불리기’ 의혹도 제기

 

9호선 선유도역으로부터 한강변 방향 도보 5분 거리에는 넓은 롯데칠성 부지가 있다. 물류센터 등으로 활용하는 평지인데 한강공원과 맞닿아 있고 정면에 선유도가 위치한다. 이 부지는 지난해 4월경만 해도 청년임대주택 건립을 위해 서울시의 통합심의위원회 사전자문 절차를 밟던 곳이다. 롯데건설이 1400여 가구 규모의 청년주택 건립을 추진했는데,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민 반발이 터져나왔다. 당시 설치된 “재벌기업 특혜·쪽방 임대 절대 반대”,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자 특혜” 등의 문구가 담긴 현수막은 현재까지도 부지 인근 아파트와 빌라 곳곳에 걸려 있다.

 

일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모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핵심은 이른바 롯데건설에 대한 ‘용도변경 특혜 의혹’이다. 학교 용지를 포함하고 7층 제한으로 묶인 부지가 2020년 6월 선유도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용적률 250%, 25층까지 올릴 수 있도록 고시된 것에 이어 작년 초 용적률 400%, 최대 35층의 청년주택을 짓는 안이 본격 논의됐다. 이에 8년간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다가 일반 분양으로 전환할 때가 되면 ​​‘​​한강 조망 쪽방’에 공공성이라는 명분도 사라진 채 건설사만 이익을 볼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대기업에 부적절한 혜택을 주는 행정이라는 여론이 형성된 데다 절차 상 주민 논의 과정이 부족했다는 문제 역시 떠올랐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 A 씨는 “조건으로 보면 노른자 땅인 건 맞지만 수십 년간 롯데가 터를 잡고 있던 부지인 데다 일부가 학교 용지라 애초에 개발 기대가 있던 곳이 아니다”라며 “지구단위계획으로 개발 가능성이 커졌지만 당시만 해도 주민 대부분은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했고, 롯데와 서울시가 용도 변경을 해가면서 고층 임대주택을 짓는다고 하니 지자체가 롯데의 편의를 봐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칠성 부지 주변 아파트, 빌라 단지에는 사업 추진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강은경 기자


#배경엔​ 조망권 훼손 우려, 임대주택 혐오가…  

 

‘대기업 특혜 논란’, ‘사전 논의 부족’ 등 반대 여론의 이면에는 조망권 훼손 등으로 인한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시선이 있다. 인근 아파트 거주자 B 씨는 “(이 아파트는) 한강과 맞닿은 역세권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아파트와 한강공원 사이에 낀 롯데 부지는 오래되긴 했지만, 화물차나 오가는 낮은 창고 건물이 있던 터라 존재감이 크지 않다. 그런데 이런 곳에 고층 건물이 지어지면 주변 건물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빌라 거주자 C 씨 역시 “현수막에 걸린 문구들이 다 맞는 말 아닌가. 10평도 안 되는 소형 평수로 높게만 짓는 건물은 청년이나 신혼부부도 반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구단위계획으로 특별계획구역이 된 롯데 소유 땅은 롯데칠성음료 물류센터가 있는 부지(8589㎡)와 롯데렌터카 정비공장이 있는 부지(1만 3302㎡) 등이다. 뒤로는 1996년 준공된 양평한신휴플러스아파트(한신아파트)가 위치한다. 이 아파트 전체 부지 면적은 청년주택 단지보다​ 더 넓지만 ​1215세대, 총 10개 동​으로 1400여 세대로 계획한 청년주택 단지보다 규모가 작다. 당연히 이곳에서 반대 여론이 가장 크다.

 

한강변과 아파트 사이 평지에 해당하는 롯데 부지(위)와 롯데 소유 땅이 포함된 특별계획구역 계획안. 사진=서울시 제공


한편으론 조망권 침해가 가져오는 피해보다 단지 대형화의 효과가 더 클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신아파트 단지 배치 상 실내에서 한강변을 조망하는 단지는 일부이고 그마저도 8~9층 이상 세대의 작은 방에서나 볼 수 있다. 양평동 사정에 밝은 부동산 전문가는 “전체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인접한 곳에 또 다른 단지가 생기면 대형화되는 효과가 생긴다. 조망권, 일조권 등 변화는 있겠지만 염려하는 만큼 피해가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렇다면 조망권 훼손, 재산권 침해 우려를 낳은 근본 요인은 무엇일까. 앞선 부동산 전문가는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이미 25층으로 개발될 수 있도록 고시가 다 끝난 상태였는데, 청년주택으로 바꾸려고 하면서 그제서야 주민들이 실상을 알게 됐다. 한강을 가린다는 사실 자체에도 불만이 있었겠지만 갈등이 커진 이유는 전용면적 7평짜리 임대주택을 우리 동네에 건설한다는 사실 때문”이라며 “한때 유도 정비구역 지정으로 9~10평 신축 빌라 붐이 일었던 곳이라 ‘엘리베이터도 없는 소형 빌라’로 골머리 앓던 경험도 부정적인 인식에 한몫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롯데 소유 부지는 실제로 종 상향 단계까지는 진행되지 않은 채 사실상 멈춰 서 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지구단위계획에는 세부개발계획을 수립할 때 3종으로 상향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포함되며, 토지 소유자가 청년주택 등 공공기여를 하는 조건으로 진행하기를 원할 경우 사업 계획에 따라 상향할 수 있다. 최종 결정은 서울시가 심의를 통해 결정한다”며 “서울시로부터 (통합심의위원회) 사전자문까지는 진행했는데 사업주체에서 저희 쪽으로 접수된 게 없다고 전달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전략주택공급과는 “주민 반대가 있어 잠시 보류 중이다”고 밝혔다. 롯데건설 역시 건설 경기 악화 등을 고려해 사업 진행에 미온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서울지방병무청 터에는 2020년부터 500가구 규모 청년주택 건설이 추진됐지만 거센 주민 반발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사진=강은경 기자


지연 혹은 중단 문제를 겪는 청년주택 사업지는 이곳만이 아니다. 2024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지상 26층 규모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의 청년주택 건설 현장 건너편에는 아파트 단지 입주민들의 반대 현수막이 설치됐다. 영등포구 신길동 서울지방병무청 터에 2만 7500㎡ 규모 병무청사와 청년임대주택과 공원을 조성하기로 한 계획은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신길동 삼환아파트 메낙골공원 추진위원회는 병무청 건물 정면에서 볼 수 있도록 “병무청 용지에 공원만 원한다”는 문구를 내걸었다. 공원이나 주차장과 같은 편의시설이 부족한 동네에 500가구 규모 임대주택이 세워지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지역 주민들은 공통적으로 “임대주택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주민 반발의 배경에 임대주택에 대한 님비(NIMBY·지역 이기주의)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갈등이다. 인근 주거지 소유주 입장에서는 재산권 등 이해관계를 우선할 수 있지만 청년들의 주거권 역시 중요한 문제다. 공공임대 주택 400호를 두고 4만 명이 경쟁하는 시대다. ‘작은 평수에 수요가 있겠느냐’, ‘청년주택으로 주변이 슬럼화 될 것’ 등의 시각은 편견이 담긴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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